쿨한 노숙인 여자와 ‘기계인간’이라 불리는 큰 회사의 회장님! 글의 제목처럼 이 두 주인공도 극과 극입니다. 서로의 위치도 그렇고, 그들의 정서도 그렇고…….
그들은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너무도 다른 극과 극은, 결국은 서로 만나게 되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출발을 했습니다.
비록 어두운 과거일지라도, 밝고 명랑하게!
아픔 있는 여자주인공이 그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담았습니다.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과격한 대응도 보복도 없습니다. 오로지,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그녀의 내면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아픔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로 시선을 돌릴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들여다봐야한다는 메시지도 주고 싶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저게 뭐지?”
깔끔한 실내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커다란 걸레자루가 놓여 있는 듯 잔뜩 웅크린 그것은, 휴게실의 커다란 실내 조경수 아래 놓여 있었다.
“뭘 말입니까?”
말하고 있던 한 이사를 포함한 두세 명의 간부들이 내가 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저거 말입니다. 저게 뭔 거 같습니까?”
아주 불결하게 놓인 그것을 향해 손짓을 하자, 웅성거리는 우리를 눈치 챈 프런트 직원이 얼른 달려와 고개를 수그렸다.
“죄송합니다. 점심시간 경계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노숙자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얼른 내보내겠습니다.”
방금 식사를 마치고 달려온 듯, 나이 지긋한 경비와 깔끔한 제복을 입은 프런트 여직원은 고개를 조아린 뒤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문제의 그것을 향해 달려갔다.
“이봐,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여기는…….”
사람이 맞는 듯했다. 경비실 직원이 살짝 건드리자, 문제의 그것은 거짓말인 듯 옆으로 폭 쓰러졌다. 그나저나 어디가 아픈가 보다. 하도 굶어서 힘이 없거나, 아님 지병이 있는데 제때 치료를 못 받아서 몸이 저지경일지도 모른다.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얼른 내보내게.”
옆에서 내 눈치를 살피던 한 이사가 경비직원을 재촉하듯 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그래도 회사 내에 저런 사람이 들어왔는데 이제껏 저리 있었다는 자체가…….”
솔직히 말하면, 한껏 불만을 터트리는 한 이사의 말이 더 듣기 싫었다. 이 사람은 나이도 나보다 서너 살밖에 안 많고, 일을 잘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너무 내 눈치를 살핀다는 게 단점이었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딸랑이 스타일! 본인을 절대 모를 테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저런 말로 내 비위를 맞추려 드는 게, 오히려 더 눈에 거슬리는 그런 타입이었다.
“이봐! 어? 여자잖아?”
픽 쓰러진 문제의 그 사람을 건드리던 경비직원이 놀라서 소리를 높였다. 여자란 말에, 프런트 여직원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 사람 앞에 가 섰다.
“이봐요. 이봐요. 일어나 봐요.”
여직원의 말에도 문제의 그 여자는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 아침까지만 해도 일이 잘 진행된다고 좋았던 기분에 슬슬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만일 죽은 거라면, 찝찝하기도 하거니와 문제가 또 복잡해질 거 같아, 급한 마음에 얼른 그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상이 구겨진다. 커다란 군용재킷을 입은 꼬질꼬질 꾀죄죄한 여자는,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아예 옷 속에 파묻혔단 말이 맞을 만큼 너무나 작았다. 마찬가지로 카키색의 더러운 바지 밑으로 툭 삐져나온 발목에는 얼룩덜룩한 먼지도 묻어있었지만,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피부도 딱딱하고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참 대책이 없군.”
찌푸려진 인상을 펼 생각도 없이, 그 얼굴을 관찰하는데, 흠칫 놀라고 말았다. 너무도 작은 두상을 가진 그녀는, 짧게 커트 친 머릿속에, 제법 오밀조밀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예상 밖으로 흡사 청소년이라 해도 믿을 만큼 어려 보였던 것이다. 전혀 뜻밖이었다.
‘완전 애기군. 이런 어린애가 어쩌다가……. 쯧쯧.’
내 눈길을 의식한 직원들이 그 애를 처리하기 위해 경찰에 전화를 걸까말까 서로 논의를 하는 그 시점에, 그 애만 쳐다보던 내 눈이 더욱 커져버렸다. 시끄러운 주위 때문인지, 그 애가 살짝 눈을 뜬 것이다.
‘오! 이런!’
죽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눈뜨자마자, 제일 가까이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서있는 내게 살포시 웃음을 짓고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나 배고파.”
씩 웃는 그 웃음에 완전 얼이 나가 버렸다.

< 미리보기 >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뭐냐! 이렇게 아이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차갑고,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차갑게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넌,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여자다.’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지만, 솔직히 26살에 노숙까지 하는 넌 결코 뻔해질 수가 없는 여자야. 안 그래? 우리 얘긴 결코 뻔하지 않을 테니까 잠자코 날 따라와.”
“…….”
“정 그러면 우리 집 마당에서 자든지. 텐트 쳐줄 테니까!”
“…….”
“길에서 노숙하는 거랑, 우리 집 정원에서 노숙하는 거랑 대체 틀린 게 뭐야? 그냥 나 좀 따라오면 안 돼? 넌 매사가 왜 그리 어렵냐?”
“…….”
“대답 안 해?”
“꼭 그래야 돼? 난 여기가 좋은데…….”
“몰랐다면 모를까, 이젠 안심이 안 돼. 얼른 일어나.”
그렇게 그녀는 못이기는 척, 나를 따라나섰다.

노란 초승달이 떴던 그 밤.
내 손길 닿는 것도 겁내하던 미순이를 생각하면, 손잡아 주는 것마저도 맘대로 할 수 없어 불안했지만, 우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가며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조심해.”
근데,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어둡고 낯선 길에 분간 못하는 나도 나지만, 내가 사준 초밥도시락 하나로 오늘하루를 버텼을지도 모를 그녀는 너무 힘에 겨워 보였다. 넘어질듯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를 보다 못해 물었다.
“그냥 내 등에 업힐래?”
“싫어.”
역시 최미순. 위태위태하게 겨우 걷는 주제에, 곧 죽어도 그 대답이 먼저 나온다.
“아직 한참 남았을 텐데, 어쩌려고 그러냐?”
“갈 수 있어. 보통은 자는 시간인데, 오늘은 또다시 걸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업어준다고.”
“됐다니까.”
“고집 좀 그만 부려라. 어차피 너 쓰러져도 내가 업고가긴 마찬가지야.”
“…….”
“나 믿는다했으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지. 이건 날 믿는 게 아니잖아.”
“…….”
달빛에 비쳐, 고민하는 그 얼굴이 어슴푸레 다 보인다. 말없이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등을 내밀었다.
“넌 너무 작아서 업은 줄도 모를 거야, 얼른.”
“…….”
“그냥 업혀도 돼. 네가 업혔단 거, 비밀로 해줄게.”
“누구한테?”
“세상사람 모두한테…….”
“그런 게 어디 있어?”
“얼른!”
그러고 몇 분가량을 더 쭈그리고 앉아 있었나 보다. 어두운 골목길에 그런 자세로 한참을 대치중인 우리도 우스웠지만, 그래도 최미순에게 있어서, 고민을 한다는 자체는 이미 넘어온 거라는 걸 알았기에, 묵묵히 기다릴 수 있었다. 가만가만히…… 살포시 등에 작은 촉감이 와 닿는다.
“…….”
“잘했어.”
너무도 작은 그녀를 훌쩍 업어서 일어섰다. 생각했던 대로 너무도 가볍다. 대체 너에겐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두 손 깍지 껴서, 나한테 꼭 붙어.”
앞에 축 쳐진 그녀의 두 팔이, 마치 세상을 향한 그녀의 의지라도 되는 듯 안쓰러워, 나도 몰래 그렇게 말해버렸다.
“기꺼이…….”
의외로 꼭 붙어오던 그녀의 작은 몸이 왜 그리도 안쓰럽고, 포근하기만 하던지! 달빛아래, 그 아름답던 우리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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