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별 볼 일 없는 아트지의, 그저 그런 기자 백해조.

어느 날 그녀에게 미션으로 떨어진,

갤러리 ‘조수(潮水)’의 온시재 관장 인터뷰.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비밀에 싸인 그이기에

적당히 주변을 맴돌며 시간만 때우다 곁가지 기사나 쓸 작정이었는데,

‘당신이었어?

우연히 만나게 된, 이상하게 시선이 가던 그 남자가?’

뜻밖의 인터뷰 수락.

그리고 그에 관한 건 무엇이든 상관없다며 시작된 시재와의 인터뷰에서

해조는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는데…….

“당신 누구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내가 누구야?”

[작가 소개]

라임별

블로그 : http://blog.naver.com/lime_7star

▶ 출간작

[도의 취미]

[어느새,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너와 내가 사랑을 한다는 일]

[손끝의 마호가니]

[갑의 조건]

[본문 중에서]

“자주 오시네요, 여기.”

갑갑한 한숨을 뱉으며 홀로 지겨운 싸움을 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화들짝 놀랄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불쑥 끼어든 이방인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어깨를 흠칫하게 할 만한 경적과도 같았다.

“네, 뭐.”

가벼운 말투와 음성만으로도 충분히 심드렁하다는 느낌이 상대에게 전달되었을 터였다. 그것도 모자라 해조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보는 듯 마는 듯 매우 건성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해조의 속내를 깨우치지 못한 모양인지 성큼 간격을 좁혀 종국엔 맞은편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감상을 할 목적은 아닌 것 같던데. 제가 틀렸나요?”

허스키함이 조금 섞여 있었지만 어쨌든 차분하고 나긋한 투였다. 그렇다고 꼭 저를 떠보는 듯한 물음까지 유쾌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었다. 해조는 잠시 낮게 한숨을 쉬곤 드디어 목소리 주인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굳이 답.”

할 의무는 없죠, 라고 퉁명스레 답을 하려던 게 목구멍 뒤로 쏙 삼켜져 문장이 엉거주춤 끊어졌다. 여차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길 의향 또한 있었다. 하지만 마주한 이의 옅은 갈색 눈동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해조를 마주 보고 있었고, 해조는 그 주위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제 얼굴에 뭐 신기한 게 있기라도 한가요?”

그렇게 한참을 뚫어져라 볼 정도로.

“네? 아, 아니요.”

본인의 얼굴을 어색하게 쓸어 보이며 묻는 남자에 해조는 그제야 멍하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거두고 급히 흐트러진 잔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대답.”

“네?”

“아직 못 들었는데.”

쿵, 쾅, 쿵, 쾅. 뇌의 전달을 거치지 않은 채 심장이 저 혼자 소란스럽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를 앞에 두고 답지 않은 긴장에 온 신경이 쭈뼛 섰다.

“아, 그냥 궁금해서요. 그러니까…… 갤러리 ‘조수’에 관한 것들이요. 여기 인테리어라든지, 관장이라든지.”

5분 전까지만 해도 제게서 나올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수확은 좀 있어요?”

몸의 각도를 낮추어 테이블 위에 양팔을 올린 남자는 해조와 더 가까이 시선을 맞추어왔다. 답을 기다리며 나른하게 올라가는 입매에 드디어 우려했던 대로 해조의 손바닥이 습해지기 시작했다.

“인테리어는 차치하고 관장에 관해서는 글쎄요. 워낙 드러나는 게 없어서.”

그나마 말을 더듬지 않고 있다는 게 크나큰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온시재 관장에 관해선 뭐가 궁금한데요?”

“여기까지 온 배경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런 상승세를 누리게 되었는지 하는 것들 등등 그 사람에 관한 건 무엇이든요. 매체에는 노출을 극히 안 하고 있잖아요, 온시재 관장.”

“그 사람에 관한 건 무엇이든, 이라. 관심이 대단하네요.”

“비단 저 하나만은 아니겠죠.”

“이틀 후에 꼼마 코리아에서 옥션이 있어요. 거기에 온시재 관장도 참석한다죠, 아마?”

재킷 안쪽 주머니를 가볍게 뒤적인 그가 이내 손바닥 안에 들어차는 작은 봉투를 하나 해조 쪽으로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입구에서 그걸 보여 주면 입장할 수 있어요.”

“네? 아, 아니, 이걸 왜 저한테?”

우연한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치고는 꽤 과도하게 느껴졌다.

“궁금하다면서요, 온시재 관장이.”

“네.”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난 그쪽한테 그 기회를 주고 싶고.”

그러니까 대체, 왜.

통성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남자는 별안간 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이만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제멋대로 불쑥 나타나 앉더니 퇴장 또한 역시 본인 마음인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해조는 테이블 위에 있던 봉투에서 일어난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의문스런 눈동자는 거두지 않은 채였다.

[목차]

프롤로그

1. 어떤 표정의 산책

2. 가까운 발치

3. 선명하게 들리는

4. 발열

5. ……와의 시간

6. 벌어지는 틈

7. 점차

8. 쏟아지기 시작하는

9. 날들

10. 해열

11. 또다시 찬란한

12. 구월의 찬미

13. 해조(海潮)

SIDE STORY. 도의 취미(取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