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

(어느 피아니스트 이야기)





피아노란 존재가 생명과도 같았던 피아니스트 서태후.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피아노 연주가 유일한 밥벌이였고, 성공할 수 있는 연결고리였다.

여러 악 조건 속에서도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그녀는

전 세계의 여러 외신과 평론가들에 의해 '거장'이라는 호칭을 받으면서

피아니스트로써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명성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밟고 일어서야 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 장구하던 태후의 앞에

어느날 장애물처럼 나타난 한 남자! 이한.

태후의 약점을 쥐고 흔들면서 '당신은 나라는 존재가 꼭 필요하게 될 것이다.'라고 고백까지 해버린다.

처음엔 만만하게 본 태후였지만 그는 우습게 여길 상대가 아니었다.

고작 스물 여덟이란 나이에 그녀의 최대 스폰서이자

대한민국의 경제를 뒤 흔들만한 대기업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과격한 방법으로 다가선 이한에게 점점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하는 태후.

그러나 자신의 잊혀졌던 과거가 하나하나씩 떠오르기시작하는데...



과연 피아노연주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이한을 사랑할수 있을까?









<본문중에서>



“저는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순간 그녀는 흠칫했다. 온화한 말투 속 보이지 않는 명령 때문이었다. 뇌에서는 앉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마치 이한에게 지배를 당한 것처럼. 태후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이한의 반대편에 앉았다. 생각 같아선 그에게 찬물을 끼얹어 주고 싶었지만 이한, 그는 괜히 LJ 그룹의 최고경영자가 아니었다. 부드럽고, 자상하고, 남을 존중해 주는 듯한 그의 말투 속에 상대를 강하게 리드하는 무언의 힘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위엄 있는 말투 그리고, 예리한 눈빛에 태후는 초반의 기세를 찾지 못한 채 압도되었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이한은. 그렇게 보아선 안 되는 상대였다. 태후의 어금니가 세게 맞물려졌다.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집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태후가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태후는 자신에게 감당하기조차 힘든 무언의 모욕을 주고 있는 이한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도청기만이라뇨? 그럼 다른 게 더 있다는 겁니까?”



“적어도 폭탄은 아니겠지 않습니까?”



“설마 당신 나한테 관심 있어? 내 관심 끌려고 발악하는 거야?”



“글쎄, 발악까진 아니겠지만 전자 쪽은 맞을 겁니다.”



“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하, 이게 관심을 보이는 방법인가?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걸로도 모자라 도청이라니. 법이 무섭지 않아? 내가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태후의 말에 이한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말에 당황해서가 아니라 불쾌함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순간 태후는 바짝 긴장을 해야 했다. 아무리 심기를 건드려도 사색불변(辭色不變)하던 그의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태후는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 조용히 넘겼다. 듣기 좋은 저음, 그러나 불쾌감이 역력한 어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신이 취하고 있는 태도. 마음에 들지 않군요. LJ 그룹의 임원들을 어떻게 생각하시기에 일개 피아니스트에 불과한 당신과의 법적 싸움을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가택 무단침입, 사생활 유출은 살인미수보다 형량이 가벼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마터면 그녀는 이한의 잘난 면상을 향해 물을 끼얹을 뻔했다. 일개 피아니스트라고? 물 잔을 쥔 그녀의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손아귀에 든 악력이 강해졌다. 그녀가 힘겹게 물 잔을 내려놓았다.

피아노를 살 수 없는 집안 형편 탓에 유일하게 피아노가 있던 성당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걸려 호되게 혼나고, 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피아노로 연습을 하다가 주인에게 매 맞고 쫓겨나면서까지 연습한 수많은 날들의 노력들이 ‘일개 피아니스트’라는 이한의 말에 한순간 짓밟혀 버렸다. 그 노력들을 짓밟아 버리다니 괘씸했다. 분노로 치를 떠는 그녀의 귓가에 이한의 느릿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은 곧 나의 존재를 절실하게 원하게 될 겁니다. 천천히 식사부터 하도록 하죠.”



이번엔 태후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표정이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례하게 행동하는 상대는 없었기에 그녀의 자존심은 구겨지다 못해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한은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순간 그녀가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태후의 행동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걸 예측한 이한의 표정. 태후의 어깨가 분노로 떨렸다. 그가 건넨 메뉴판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당신을 필요로 하게 된다고? 자만하지 마! 일개 피아니스트라고?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당신에게 '일개'라는 소리를 들을 만 큼 하찮지 않아! 하긴 당신 같이 부모덕으로 부자가 된 케이스는 노력이란 단어조차 모르겠지. 그런 당신 같은 사람들, 재수 없어. 엿이나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