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이만 하면 정말 괜찮은 조건이죠? 장남이 아닌 차남에 돈도 잘 벌지, 나이도 시원 씨보다 한 살 어리니 힘은 또 얼마나 장사겠어요. 그러니 속 그만 태우고 나랑 연애하는 거 어때요?”

- 전직 엘리트사원, 현직 농부, 일명 ‘농촌의 떠오르는 샛별’ 서재희.

“……농촌 총각들이 다 이렇게 고백하는 건 아니죠?”

- 전직 의사, 현직 된장회사 CEO, 일명 ‘된장녀’ 장시원.

촉망받는 의사의 길을 뒤로하고 할머니의 뒤를 이어 된장 만들기에 몰두한 시원. 낯선 농촌에서의 생활과 농사는 쉽지 않지만, 그곳에서 시원을 물심양면 도와주는 재희 덕분에 그녀는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과거에 끊어진 인연이 다시금 시원을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농촌 총각들이 다 이렇게 고백하는 건 아니죠?”

고백을 한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밤 줍기에 열중인 재희에게 물었다.

“비슷비슷한 건 너무 식상하지 않아요?”

그 때문에 당황한 시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연애할 거예요, 말 거예요?”

너스레를 떨며 협박하듯 말하는 재희의 귀여운 모습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시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대답하라니까 왜 웃어요?”

“정말 돈도 잘 벌고 힘도 센 거 맞아요?”

2. 작가 소개

차은강

▣ 출간작

미래 소녀와 차도남

섬마을 선생님(ebook)

된장녀의 로맨스

부산 로맨스

그 남자의 수상한 Girl

3. 차례

#프롤로그

#01. 그 여자 장시원

#02. 그 남자 서재희

#03. 재회

#04. 중요한 금, 지금

#05. 그 남자의 고백

#06. 연애의 시작

#07. 황홀의 지옥

#08. 사랑의 불치병

#09. 당신은 나의 푸르메

#10. 이별에 대한 예의

#11. 프러포즈

#12. 아름다운 선물

#13.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14. 즐거운 나의 집

#에필로그

#작가 후기

#참고 도서

4. 미리 보기

가깝다고 했지만 청도는 고령에서 썩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재희의 차로 청도로 가는 길, 감으로 유명한 청도답게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다른 곳과는 다르게 가로수도 감나무여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쓴 재희는 오늘도 시원에게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운전하는 모습은 그렇잖아도 두근거리는 심장에 기름을 쏟아 부었다.

예전에 유명했던 한 개그맨이 한다는 레스토랑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난 후 재희가 데리고 간 곳은 청도의 와인터널이었다. 열차 터널을 카페로 만들어 청도 특산품인 감으로 빚은 와인을 팔고 있는 곳이었다.

“너무 예쁜데요?”

“저도 처음 오는데 볼 만하네요.”

병마다 사연이 적힌 와인 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지만 한쪽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은 그들은 감 와인을 맛보았다. 투명한 잔이 부딪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셨다.

“어때요?”

“맛있어요. 하지만 제 입은 저렴해서인지 소주가 더 맞는 것 같아요.”

솔직한 대답에 재희가 치즈를 건네며 웃었다.

“하하, 솔직해서 좋아요. 감 와인 생각보다 맛있네요.”

“여기 분위기도 있고 참 좋은 것 같아요. 고령에도 뭔가 색다른 이색적인 데이트 장소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동굴 안이어서 조금 춥기는 했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화려한 조명과 예쁜 탁자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작은 와인 잔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맞아요. 대가야의 도읍지라고는 하지만 아직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나 박물관, 주산 외에는 가볼 만한 곳이 없어서 좀 아쉬워요. 그래서 회의를 할 때마다 의견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어서 늘 고민이에요.”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며 고민하는 재희의 모습은 시원을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성산 멜론, 쌍림 딸기, 그린 수박 세 개 중에 하나로 통일한다면 더 좋은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성산 멜론이나 쌍림 딸기는 봄에 출하를 하니까 4월마다 열리는 대가야 축제 때 납품해서 팔 수가 있어 홍보 효과가 있지만 수박은 빨라야 5월 말쯤에 나오니까 축제에서도 홍보를 못 하는 단점이 있죠. 그래서 수박 아가씨라도 해야 하나 형님들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농사도 농사만 열심히 짓는다고 능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재희와 수많은 농민이 있기에 발전하는 농촌이 되는 게 아닐까.

“수박은 수박 그대로 잘라 먹는 것 외에는 수박화채로 먹는 일반적인 방법밖에는 없잖아요. 말려서 먹기도 힘든 과일이고, 잼으로도 만들지 않는 걸 보면 썩 맛있지는 않은 것 같고, 또 즙을 내거나 엑기스로 만들기도 힘든 과일이라 수박 자체만으로 홍보 효과를 높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네요.”

어느덧 재희의 고민에 시원까지 물들어 있었다.

“맞아요. 그래서 형과 함께 실험적으로 속이 노란 수박이나 씨 없는 수박을 심었는데 씨 없는 수박이 인기가 많더라고요. 애들이 먹기에도 좋고 말이죠. 노란 수박은 노란 수박대로 인기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선입관을 깨기는 힘든 단점이 있죠.”

그저 농사를 지어 돈을 벌자는 목적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품종의 수박을 개발하고 홍보하려는 재희의 생각이 묻어났다.

“형님도 수박 농사를 하세요?”

“아뇨. 전에 말했듯이 형은 농업기술센터에서 연구개발을 맡고 있죠. 형이 연구하고 개발한 품종들을 함께 키우고 있어요. 성공한 적보다 실패한 적이 더 많지만 그런 과정들이 꽤 재미있어요.”

다정한 형제가 함께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럼 씨 없는 대가야 그린 수박으로 밀고 나가는 건 어때요?”

“하하, 시원 씨가 그린 수박의 홍보 담당을 맡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자문위원 어때요?”

“여기까지가 제 한계예요.”

“겸손하시기까지? 역시 제가 보는 눈은 있네요.”

이젠 제법 능청스러워지기까지 하는 재희를 보며 시원은 픽 웃고 말았다.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웃노? 니 요새 내 몰래 연애하나?”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는지 경선의 말에 시원은 표정 관리를 하며 헛기침을 했다. 퇴근을 하기 위해 정리하는 중에 재희의 문자가 들어왔다.

[내일 오후에 데이트해요.]

금요일 오후, 내일이 쉬는 날이라는 걸 안 재희가 여지없이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다.

[어디에서요?]

[산에 밤이 주렁주렁 열렸어요. 밤 주우며 데이트, 완전 낭만적이죠? 집으로 데리러 갈 테니 장화 신고 나와요.]

이런 재희의 문자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밤을 주우며 데이트를 하는 커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마는 그 색다름이 오히려 좋았다.

“아직 연애는 아니고.”

혼자 휴대전화를 보고 실실 웃는 모습을 미쳤냐는 듯이 바라보는 경선에게 시원이 애매모호한 대답을 남기자 경선은 대번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연애 아니면 뭔데? 니 수상쩍데이.”

“연애하면 바로 너한테 알릴 테니 걱정 마. 준비 다 했으면 빨리 가봐. 민준이 올 시간 다 됐잖아.”

시계를 확인한 경선이 쏜살같이 사무실을 나갔다.

“엄마야, 늦었다. 내 먼저 간데이.”

민준이가 올 시간이 다 된 이유로 오늘은 경선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월요일 출근 후에는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듯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재희와의 일은 경선에게 제일 먼저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들이 밤을 주우러 간 곳은 덕곡에 있는 산이었다. 물감을 찍어놓은 듯 노랗게 물든 가을 산에 벌써 누군가가 다녀갔는지 밤을 따 간 흔적이 보였다.

장화를 신고 바구니를 들고 재희를 뒤따라 오솔길로 올라가려니 가시와 삐죽이 나온 나뭇가지들이 그들이 가는 길을 방해했다.

“조심해요. 가시에 찔리면 약도 없어요.”

“네.”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에 재희는 삐죽이 뻗어 나온 가시나무가 보일 때마다 낫으로 치며 시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주었다.

“아, 저기 완전 많은데요?”

오래 지나지 않아 재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바닥에 떨어진 밤들이 수북했다.

“우와! 정말이네요.”

노다지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며 시원은 달려가 떨어진 밤을 정신없이 줍기 시작했다.

“이렇게 줍다 주인한테 들키는 거 아니에요?”

애처럼 신나게 밤을 줍던 시원의 갑작스런 물음에 재희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들키기 전에 도망가야죠.”

“네?”

농촌이 인심이 좋다고 하지만 요즘은 농작물을 훔쳐 가는 도둑들이 많아서 그 말도 옛말이 된 지 오래였다. 남의 산에서 밤을 줍다가 경찰에 잡혀 가는 건 아닐까 문득 걱정이 된 시원은 신나게 밤을 줍다 말고 허리를 들었다.

“우리 그냥 가요. 이거 줍다 경찰서에 가는 것보다 그냥 사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걱정스런 시원의 말에 재희는 태연하게 웃으며 밤을 줍기만 했다.

“그냥 가요.”

재희가 너무 태연하기만 해서 시원은 더 걱정스러웠다.

“여기 주인이 우리 형이에요. 선산 물려받았거든요. 우리 형이 설마 우리를 경찰서에 넘기기야 하겠어요?”

“네?”

진작 그렇다고 할 일이지, 꼭 이렇게 시원을 놀리는 재희였다.

“이만 하면 정말 괜찮은 조건이죠? 장남이 아닌 차남이죠, 어른들 모실 필요도 없지, 돈도 잘 벌지, 나이도 시원 씨보다 한 살 어리니 힘은 또 얼마나 장사겠어요. 그러니 속 그만 태우고 나랑 연애하는 거 어때요?”

놀란 시원의 가슴을 더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재희의 고백에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밤을 주우며 하는 고백이라니! 전혀 속 태우고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태연자약했다. 그러니 더 황당할 수밖에.

“농촌 총각들이 다 이렇게 고백하는 건 아니죠?”

고백을 한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밤 줍기에 열중인 재희에게 물었다.

“비슷비슷한 건 너무 식상하지 않아요?”

그제야 밤 줍기를 멈추고 시원과 눈을 마주친 재희가 집게와 바구니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그 때문에 당황한 시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연애할 거예요, 말 거예요?”

너스레를 떨며 협박하듯 말하는 재희의 귀여운 모습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시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대답하라니까 왜 웃어요?”

“정말 돈도 잘 벌고 힘도 센 거 맞아요?”

놀리는 듯한 시원의 말에 함께 웃던 두 사람이 웃음을 멈출 무렵, 마주치고 있던 두 눈동자에서 잠시 어색함이 묻어났다. 그 어색함에 시원이 눈길을 피하려는 찰나. 시원의 뒷덜미를 잡은 재희가 시원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내렸다.

느닷없는 키스에 시원의 몸이 잠시 경직되는 듯했지만 시원은 곧 재희의 따뜻한 혀를 받아들였다. 살짝 입술을 핥던 부드러운 입맞춤은 재희가 시원의 허리를 똑바로 안자 깊은 키스로 바뀌었다.

“내가 더 애탔으면 좋겠어요?”

입술을 떼고 열망 가득한 눈동자로 말하는 재희를 바라보며 시원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저었다.

“연애할 거죠?”

부끄러움으로 재희와 얼굴을 마주치지 못한 채 시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턱을 들며 재희가 눈을 마주쳐 왔다.

“확신이 선 거예요?”

그를 만날 때마다 하나 둘씩 심장을 간질이는 느낌들은 늘 시원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재희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가슴을 두드렸다.

“제가 마음을 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떠난 후 지독한 상실감과 패배감을 가져다주었어요. 그래서 두려웠어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또 받아들인다는 게. 하지만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당신이 주는 믿음과 신뢰를 믿어보기로 했어요.”

그래, 재희라면 마음을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이미 재희에게로 뛰어가고 있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을 멈추지 않기로 결정했다.

“상처 주지 않을게요. 제가 잘할게요.”

시원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재희의 낮은 목소리.

“저도 잘할게요. 노력할게요.”

부끄러운 듯 새빨개진 얼굴로 재희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 말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재희는 시원을 그대로 안아 올리며 소리쳤다.

“야호! 야호!”

빨갛게 물든 산중에서 재희가 시원을 안아 들고 소리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밤나무 위에 앉아 밤을 갉아 먹던 다람쥐가 깜짝 놀라 저 멀리 줄달음질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