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권	정가	4,500원
판매가	4,500원
적립금	0원

안 좋은 일은 언제나 밤에 생겼다.
질리언의 엄마가 산고로 목숨을 잃은 것도 한밤중이었다. 지각없는 하인은 끔찍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고 싶다는 치졸한 생각 하나로, 곤하게 잠이 든 질리언과 크리스틴을 깨웠다. 이틀 뒤,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래눌프라고 부르기로 했던 남동생마저 하늘 나라로 떠나버렸다. 달수를 못 채우고 두 달 먼저 태어난 죄였다.
질리언은 깜깜한 방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유모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잽싸게 침대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차가운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질리언은 언니가 쓰는 방과 통하는 비밀통로로 달려갔다. 통로는 가파른 계단과 이어져 있었고, 계단을 내려가면 주방 아래쪽에 있는 지하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질리언이 함부로 비밀통로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 앞에 궤를 하나 놓았다. 위급한 순간이 아니면 절대로 비밀통로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아버지는 수도 없이 강조했다. 딸들이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목뼈라도 부러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밀통로로 출입하는 게 발각되면 흠씬 때려주겠다고 엄포를 놓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