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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무신 역시 도망을 갔다. 6년 동안 사랑했던 여자 친구에게서 이별의 선물이라고 받은 것은 고작 청첩장, 펑펑 쏟아지는 눈뭉치에 부르튼 손등이 아려왔다. 때 아닌 빛을 보고 찾아온 불나방이 펄럭이며 형광등에 매달렸다. 매달릴까

친구도 아니었고, 끝이 난 연인 사이라 치기엔 애매모호한 우리, 고균과 황노미 우리들의 두 번째 재회는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너 사람 빨리 질려 하지 않았나?”
“…….”
“냉장고에 우유 줄 세워 놓듯, 남자들 세워놓고 얘는 하루가 지났니. 쟤는 꼬박 이틀이 지났니, 갈아엎는 거, 그게 황노미 주특기였잖아, 안 그래?”
“취했다니까, 그만 마셔.”
“나는 유통기한 6년 짜리 우유.”
“그만 해.”
“6년, 아! 질릴 만도 했겠다. 아주 곰팡이가 슬었겠구만.”

이 나쁜 계집애.

-본문 중에서-

“내가 운전대를 못 잡겠다.”
“…….”
“그러니까 네가 운전 좀 해줘라.”

잘 지냈냐. 라는 안부인사도 없던 첫 대화지만. 우린 서로가 서로를 당장에라도 울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예전 동네로 가면 되지.”
“어.”

별 다른 대화는 오고가지 않았다. 균이 너는 옆에서 지친 듯 창가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말 없이 운전만 했을 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새벽 밤에 알맞은 잔잔한 선율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사람도 차도 없는 거리, 나는 빨간불에 걸려 정지선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자는 줄만 알고 있었던 네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다시 만나도 꼭 이런 데서 만나네. 거지같게.”
“…….”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여전히 현실에 만족을 못해. 늘 그랬듯.”
“…….”
“그렇지?”

너에 대한 나의 오해, 그리고 한심한 눈초리. 하지만 구차하게 변명할 필요도 없다. 나는 마른 침만을 꿀꺽 삼킨 채, 너의 말에 대꾸 없이 초록 불 신호가 오자마자 차를 출발 시켰다.

“이혼녀? 아니면 바람 중.”
아주 비아냥거리는 네 목소리에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미워, 당장에라도 차를 내버리고 뛰쳐나오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럴 자격도 없다. 너를 미워할 자격도 너를 욕할 자격도 없다. 우리 사이에서 먼저 등을 돌린 것도 나고 관계를 배신했던 것도 나다. 그리고

뻔뻔한 것도 나다. 어느 새 차는 균이의 옛날 집 앞에 와 있었고 나는 계속 말없이 있다가 차키를 뽑고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좋을 대로, 난 뭘 선택해도 너한테 비웃음거린데.”
그렇게 차문을 닫았다. 뒤이어 나오는 너의 마지막 말을 내 가슴을 찌른다. 애정도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는 네 눈동자가 나를 시큰둥하게 바라본다.

“아주 꼴좋다.”
“…….”
“이제 바닥을 치는 구나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