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언제나 변화무쌍하다.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줄을 지어 일어난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슈퍼컴퓨터라고 할지라도 모든 종류의 상황을 예측하는 일은 분명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다.'입추를 코앞에 둔 하늘은 마치 누군가가 풀어 놓은 실타래에 꽁꽁 묶여져 버린 것처럼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다. 그것은 특정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가 또 아무런 의미를 내포하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잔디는 누군가 공을 들여 가꾸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짓밟히고 뭉개진 듯이 보였다. 모든 흔적들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흐르는 바람결에 묻은 시간의 때들이 주위를 에워쌌다. 시선을 드넓은 들판으로 돌렸다. 조그마한 나무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조금은 더 자라야 만족을 하려는 모양인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서 있었다. 그 중간 중간에 틈 사이를 따라 개미들이 줄을 지어서 바쁘게 움직였다. 각각 조그마한 먹이를 운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숨을 마시었다. 더운 공기가 코의 깊은 속까지 스며들어왔다. 가은이 진우를 응시했다. 얼굴선을 따라 길게 내려온 옆머리를 귀의 뒤에 꼽으며 가은이 몸을 기울였다.'“왜 이렇게 혀가 건조한 것 같지? 좀 봐줄래요?”'“정말요? 어디 봐요.”'아이를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조그마한 손바닥이 둥글게 말아졌다. 가은의 몸은 최대한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기다란 혀가 턱 밑에까지 닿을 듯이 길게 늘여졌다.'“침이 모자라는 것 같아요.”'“정말요? 그러면 곤란한데.”'길게 늘어진 혀를 집어넣으며 혀 밑에 차올라 있던 침을 빠른 속도로 삼켜 버렸다. 가은의 아주 작은 보조개가 드러났다.'“아저씨가 좀 채워 줄래요?”'가은이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였다. 가을을 드러내고 있는 하늘은 오늘따라 더욱더 높고 푸르렀다. 하늘 정중앙에 걸린 태양의 크기는 그것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였으며 평소보다 더 깊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마음의 준비는 모두 끝을 냈다. 아침부터 모든 계획들이 차근차근히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대사를 끝마쳤고 모든 것은 가은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한 번씩 눈동자를 깜박일 때마다 가은의 시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상대의 뒷모습뿐이었다. 어딘가를 바쁘게 뛰어가는 진우의 발걸음의 끝자락마다 잔디밭에 묻은 모래들이 바람에 여리게 날리었다. 그 정도로 많은 양의 모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매워질 지경이었다. 괜히 가은은 하늘 위의 태양이 얄미워졌다. 하지만, 자외선을 내뿜으며 내리쬐고 있는 하늘을 피해 달아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커다란 챙의 모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늘을 만들 만한 크기의 나무도 주위에는 없었다. 그저 몇몇 커플들이 달라붙어 앉아서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는 그림들이 반복될 뿐이었다. 이게 아니었다. 이것은 정말 아닌 것이다. 가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키스의 명당이라고 했다. 대낮에도 마치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남녀가 달라붙어 앉아 여름에도 더운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인지 온몸을 부대끼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 말이다. 진한 프렌치의 기운과 여운을 모두 느낄 수 있다고, 분명히 잡지가 그렇게 명명했던 것이었다. ‘키스의 명당’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