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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과장이 열심히 바람을 넣은 탓에 배 차장이 회식을 제안했다. 즐거운 퇴근 시간을 앞두고 떨어진 회식 소리에 다들 얼굴이 구겨졌지만 누구 하나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다.

“다들 회식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는데! 그래도 간만이잖아.”

“저번에 점심때 다 같이 먹었잖아요.”

“아, 그게 어디 회식이야? 오 대리 왜 그래? 회식이라면 껌뻑껌뻑 죽는 사람이.”

“관리자가 없는 회식에 껌뻑껌뻑 죽습니다만……….”

성빈은 차마 크게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중얼거렸다. 그는 가방을 챙기다 부장실에서 나오는 윤혁을 보고 눈을 번뜩였다.

“그럼 부장님도 같이 가시죠!”

성빈의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윤혁에게로 우수수 쏟아졌다.

“부서 회식인데 부장님 빠지시는 건 말이 안 되죠. 안 그래요, 차장님?”

“그렇긴 한데…….”

“부장님도 회식 같이 가시죠?”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흘렀다. 모두가 윤혁의 입술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죠.”

“와아! 그럼 제가 지금 바로 나가서 요 앞 고깃집으로 예약 해놓겠습니다! 명진 씨! 같이 가죠.”

“예? 아, 예!”

명진을 데리고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성빈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눈치만 살피던 명진이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니, 웃기잖아. 새로운 부장 들어오고 차장 하는 짓이.”

“그런가요?”

통 모르겠다는 듯 명진은 머리만 긁적였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상사니까 불편하겠지. 영 위신도 안 살고. 그러니까 자꾸 부장은 빼놓고 대장질하려고 하잖아. 그래도 그간 잠잠했는데 1그룹에 새 과장 오고 나서 부쩍 심해졌어. 그 얌생이같이 생긴 과장이 옆에서 뭐라고 구슬리는지 모르겠지만.”

“아, 그래서 부장님한테 그러신 거예요?”

“그래. 부장도 상사지만 차장보단 나아. 훨씬 신사적이고 나이로만 봤을 때 우리랑 가깝고. 명진 씨는 아니야?”

“아뇨. 저도 대충 그렇게 생각해요.”

“대충은 뭐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성빈은 어리숙하게 대답하는 명진을 툭 치고 먼저 내렸다.

부서 사람들은 하나둘 성빈이 자리를 잡은 고깃집으로 향했다. 뒤통수가 따끔따끔한 느낌에 재인이 돌아보니 살짝 벌어진 부장실 블라인드 틈으로 윤혁의 얼굴이 보였다. 기다리라는 눈빛을 보내는 윤혁이 우스워 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풋 웃음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온 두 사람은 회식 장소로 함께 걸었다. 누가 약속이라도 한 듯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간직하려 노력했다.

“이렇게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좋으면 미친 건가.”

윤혁의 말에 재인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런걸.”

마지막으로 윤혁과 재인이 도착했다. 몇몇 사람은 요즘 들어 가까워진 두 사람을 아리송한 눈빛으로 바라봤으나 대부분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정 가운데 자리에 윤혁이 앉고 재인은 하나 옆에 자리했다.

윤혁이 회식에 끼인 것이 못마땅한지 병수는 회식 시작부터 연거푸 술을 들이마셨지만 누구 하나 관심 갖는 이가 없었다. 평소와 같이 회식이 진행되었고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다. 재인은 제게 꽂힌 윤혁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하며 주변 사람과 술을 나눴다.

“부장님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어.”

“네?”

“자기한테서 눈을 안 뗀다.”

아영이 웃으며 고갯짓을 했다. 재인은 얼굴을 붉히며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정 과장님이야 알고 계신다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눈치채면 어쩌려고 저리 부주의한 행동을 할까. 재인은 앞자리에 앉은 윤혁을 살짝 노려보며 다리를 쿡 건드렸다.

“아, 뭐지?”

아뿔싸! 현욱이 허리를 숙이며 테이블 밑을 확인하자 재인이 고개를 푹 숙이고 고기를 집어왔다. 윤혁의 다리인 줄 알았는데 현욱의 다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