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자, 손 내밀어 봐.”

볼이 통통하고 눈꼬리가 얄밉게도 올라간 여자 아이가 마찬가지로 볼 살이 통통하지만 동글동글 선한 눈동자의 남자 아이에게 말했다. 두 아이 모두 기껏 해봐야 10살 남짓해 보이는 얼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가 손을 내밀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잡아당겼다. 그리고 손가락에 장난감 반지를 끼웠다.

“빨간색이네?”

남자 아이는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제 엄마 졸라서 내 거랑 같이 사왔어. 내 건 파란색이야.”

남자 아이는 자신의 손에 있는 반지와 여자 아이의 손에 있는 반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빨간색은 여자 색깔 아니야? 내가 파란색 낄래.”

그 말을 듣고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의 등을 사정없이 때렸다.

“바보야. 여자 색깔, 남자 색깔이 어딨냐? 나는 파란색이 좋아. 오빠는 빨간색이 잘 어울리고.”

남자 아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그렇게 말하는 여자 아이의 얼굴을 보자 왠지 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손등!”

여자 아이는 이번에도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이미 남자 아이의 손등은 여자 아이의 눈앞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여자 아이는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장난감 도장을 하나 꺼내 남자 아이의 손등에 사정없이 갖다 박았다.

“아파.”

“엄살 부리지 마.”

도장이 찍고 지나간 자리에는 팡파르를 부는 코끼리 모양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여자 아이는 그 도장을 도로 주머니에 넣더니 반대편 주머니에서 다른 도장을 꺼내 남자 아이에게 건넸다.

“자, 이번엔 나한테 찍어 줘.”

남자 아이는 군말 없이 도장을 받아 들고 여자 아이의 손등에 찍었다. 물론 여자 아이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자비하게 찍어 누르지는 않았다. 혹시나 아프다고 할까 무서워 살살 눌렀다.

“그렇게 해서 찍히겠어?”

하지만 여자 아이는 그 깊은 속도 모르고 핀잔을 주었다. 남자 아이도 약이 올랐는지 도장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콱 주었다. 여자 아이는 자신이 뱉은 말이 있어서 아파도 내색을 하지 못했다. 도장이 떨어져 나가고 여자 아이의 손등에는 북을 치는 호랑이가 파란색으로 그려졌다.

“뭐야. 너만 멋있는 거 하고.”

파란색 반지에 파란색 호랑이까지 탐이 났던 남자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 아이는 그런 남자 아이를 달래주기는커녕 심술궂은 얼굴을 해보였다.

“오빠한텐 빨간색이 어울린다니까. 파란색이랑 호랑이는 내 거야. 오빠는 키 크니까 빨간색 코끼리 해.”

“칫. 너랑 결혼 안 해.”

결국 삐쳐 버린 남자 아이가 팔짱을 끼고 등을 돌렸다. 여자 아이는 그제야 당황한 표정이 되었지만 금방 다시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에이 왜 그래. 오빠도 나랑 결혼하고 싶잖아. 삐치지 마.”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에게 팔짱을 끼고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아이는 토라진 얼굴을 펼 줄을 몰랐다. 여자 아이가 살짝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 남자 아이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이래도 싫어?”

남자 아이가 깜짝 놀란 듯 큰 눈을 느릿느릿 끔벅였다. 곧 이어 남자 아이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랑 결혼하면 내가 오빠한테 뽀뽀 맨날 해줄 건데?”

여자 아이는 광대까지 입 꼬리를 쭉 늘리며 웃었다. 하지만 남자 아이는 멍한 상태에서 돌아올 줄을 몰랐다.

“셋 셀 거야. 셋 셀 때까지 좋다고 안 하면 이제 오빠랑 결혼 절대 안 해. 하나, 둘…….”

여자 아이는 셋까지 셀 수 없었다. 벙쪄 있던 남자 아이가 갑자기 입술 박치기를 해 온 것이다. 이번엔 두 아이 모두의 얼굴이 빨간 조명이라도 들이댄 듯 붉어졌다.

“진짜 뽀뽀 맨날 해주는 거지?”

“으, 응.”

여자 아이가 더 빨개져 버린 얼굴로 대답하자 남자 아이가 선한 얼굴과 잘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꼭 나랑 결혼해야 해. 다른 남자 애랑 결혼하면 안 돼.”

남자 아이는 두 주먹까지 불끈 쥐고 말했다.

“뽀뽀도 나한테만 해줘야 돼.”

“알겠어. 반지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이다음에 어른 돼서 딴딴따다 할 때 이거 껴야 되니까.”

“응. 안 잃어버릴게.”

두 아이는 서로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여자 아이가 슬픈 얼굴이 되어 버렸다.

“진짜 잃어버리지 마. 나도 까먹지 말고. 외국 가서도 계속 연락해야 돼.”

어느새 여자 아이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는지 남자 아이도 금세 울상이 되었다.

“울지 마. 나중에 꼭 너랑 결혼하러 다시 올 거야. 편지도 맨날 쓸게.”

“진짜지?”

이제 여자 아이의 씩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국 남자 아이는 어린 아이답지 않게 긴 팔을 뻗어 여자 아이를 끌어안아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