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아파트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동네 언덕 아래, 어린 티가 채 가시진 않았지만 제법 이목구비가 또렷한 남자아이가 아파트 담 벽 아래 주저앉아 있었다. 이내 울리는 낮은 음악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입고 있는 남색 더플코트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어디 십니까? 제가 계신 곳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아직 볼 일 남았어. 내가 알아서 갈게. 신경 꺼!” '‘탁’ 남자아이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 폴더를 닫고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섰다. 뭔가 잔뜩 못 마땅한 듯 짙은 검은 눈동자에 짜증이 서려 있었다.'속 쌍꺼풀이 옅게 낀 작지 않은 눈, 오뚝한 콧날. 보기 좋게 앙 다문 입술.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학교를 일찍 들어간 탓에 13살이란 나이답지 않게 제법 큰 키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남자아이였다.'오늘도 본가에서 가족들 모임이 있다는 상현이 형, 자신의 개인 비서 겸 보디가드의 말에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차를 무시한 채 뒤 문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곤 항상 향하는 체육관으로 달려가서 지금껏 땀을 흘리다가 나왔다.'가족모임. 언제나처럼 친척들은 자신을 보고 측은한 눈빛을 보내거나 못 마땅한 눈빛을 보내고, 증조할머니는 연신 자신을 보고 눈물짓고…… 어미 없이 큰 불쌍한 자식. 그래서 반항만 하고, 쌈질에 사고 만 치는 버릇없는 재벌 집 자식. 이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는 눈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 오만하고 거대한 재력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독신재벌. 항상 신문의 가십 기사 난에 오르내리는 대 그룹 ‘대성’ 의 오너. '그는 그런 아버지를 꺾고 싶었다. 아버지를 화나게 하고 약 올리고 싶지만, 좀처럼 내색하지 않고 무표정과 차가움으로 일관하는 아버지는 항상 자신을 무관심으로 대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비웃음 가득한 아버지의 눈에 애송이, 넌 아직 멀었어…… 를 가득 담고. 반항하고 사고를 치면 칠수록 자신이 아버지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더러운 기분이 드는 건 뭘까? '“후우…….” '그는 생각의 늪에서 깨어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순간 뭐라고 연신 낮게 중얼거리며, 입에 빨대를 물고 걸어오는 여자아이가 보였다.'벽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는 그의 앞으로 여자아이가 스쳐 지나가자, 짙은 딸기향이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다 큰 게, 길에서 우유나 물고 다니고…… 뭐야?'속으로 중얼거리며 어슬렁어슬렁 빠른 걸음으로 걷는 그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는 무심한 눈길로 여자아이의 뒤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며 걸음을 떼고 있었다.'길게 땋은 새까만 머리에 빨간 더플코트…… 한손엔 딸기우유를 들고 남은 한 손엔 쇼핑백과 딸기우유가 가득 찬 하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늦었다…… 를 연신 중얼거리며 다 비운 딸기우유를 빨대로 ‘쭉쭉’ 빨아 대니, 푸르륵, 푸륵, 푸르륵 하고 빈 소음이 났다.'여자아이는 금세 다 비워진 딸기우유팩을 들고 작고 붉은 입술을 오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