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 롤 로 그''''쨍그랑!'안 그래도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부분인 듯싶은 여자의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믿기지 않는 말을 들은 여자의 머릿속은 고장 난 양수기가 들어앉은 듯 털털거리고 윙윙거렸다.'“무, 무슨 말이야 그게? 파혼…… 파혼이라니?”'제 힘껏 소리를 밀어 낸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희연의 음성은 앞에 앉아 시선을 외면하고 있는 남자의 귀에까지 닿지도 못할 만큼 작았다.'“저, 그게……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서 나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 너도 잘 알잖아. 물론 나야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함없지만…… 그 왜 그런 거 있잖니? 세상은 사랑만 가지고는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고. 또 조금 있다가 괜찮은 프로젝트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두 내 앞으루 떨어져야 내꺼다 할 수 있는 거잖니? 희연이 너 지금까지 부모님 그렇게 잃고 고생한 것도 안쓰러운데 나까지 보탤 수는 없겠다 싶어서 말이지…….” '그렇게 기특 방퉁한 생각이면 삐질삐질 땀은 왜 흘리고 말은 왜 더듬는 걸까?'“하, 하지만 왜 갑자기…….”'말을 잇지 못하는 희연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사내란 모름지기 어떤 배경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앞날이 바뀌는 법이지. 암만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해도 어디 남자만 하겠니? 아무리 능력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배경으로 든든한 집안이 둘러싸고 있다면 아무래도 남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한 일이구. 에휴! 우리 진헌이는 그것도 다 틀렸으니 어쩌면 좋으니?』''워낙 단순해 보일 만큼 솔직 담백하신 분이 진헌의 어머니였다.'아버지들 간의 교제가 가족 간의 교제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덩달아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별 다툼 없이 잘 자라주어 나름대로 집안 어른들끼리 욕심을 낸 것이 희연과 진헌의 약혼이었다.'아마 희연의 아버지가 경영하시던 회사가 그렇게 허망하게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 시간 진헌과 희연의 대화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졸지에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희연을 대하는 진헌 어머니의 살갑고 다정하던 태도가 달라졌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어머님이…… 도저히 나 같은 며느리는 맞아들일 수 없다고 하셔? 아니면 진헌 씨 당신도 마찬가지 생각인 거야?”'아까 보다는 희연의 음성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달그락거리는 얼음물을 죽 들이켜고 나니 어느 정도 정신이 수습되었다.'더한 일도 겪었다. '한날한시에 부모님도 잃었는데, 오갈 데 없이 맨몸으로도 집에서 쫓겨났는데…… 이것보다 더한 일도 겪어냈는데…….'지난 여러 날 동안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한때는 약혼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경멸감이 맑고 투명한 희연의 눈에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럼. 어머님 말씀대로 당신 출세시킬 수 있는, 당신한테 걸 맞는 여자 만나서 살아.”'희연의 입에서 나오는 독기 어린 말에 진헌은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