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시간 맞춰서 점심 싸와］-대마왕'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쪽팔릴 만도 하건만 나 한민영은 그딴 건 태어날 때부터 버린 지가 오래라 얘들이나 들을 법한 소녀시대의 훗에 맞춰 신나게 궁둥짝을 흔들고 있는 중, 아니 그게 바로 일분 전이었다.' “내가 지 매리 쫑쫑이야 뭐야? 오라하면 가고 가라하면 가는 존재인 줄 알아! 아씨……근데 점심 뭐 해가지…….”' 호기롭게 소리 지르던 목소리를 끝으로 메뉴 선택을 하고 있는 이 불쌍한 청춘. 나는 그 한심한 신세에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찍어 누르며 언제나 그렇듯 대마왕 욕을 해댔다. 그러던 중 대마왕이 무지하게 아끼는, 꼭 모양새도 저 같이 뺀질 맞게 생긴 난이 포착되었다. 186cm 이라는 큰 키. 까무잡잡한 얼굴에 참으로 어울리지도 않게 화초 가꾸기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 대마왕. 나는 그 이질감에 온갖 욕을 구시렁거리면서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 위에 걸쳐 두었던 꼬질꼬질한 걸레를 들었다. ' “후후……사랑해 마지않는 네 아가는 지금 이렇게 걸레로 닦이고 있단다.”' 그 치사하고도 옹졸한 작은 복수에 나왔던 입이 들어가고 어느새 행복한 입매가 잡혔다.'아마 당분간은 이 난에서 걸레 썩은 내가 나리라. ' “내친김에 저것들도…….”' 그러던 중 스윽 하고 화분대를 돌려보던 나의 입 꼬리가 한층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주자를 고르던 내 눈에 반짝하고 빛이 어렸다.' “그동안 풀 때기 주제에 사람인 나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아? 에잇, 용서하지 않으…….”' 가혹한 신의 뜻이었을까. 그동안의 한 풀이를 하듯 신나게 문지른 동양난의 줄기가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처참히 대리석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침묵.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이 정지했다. 오로지 드는 생각은 ‘난 이제 죽었다’ 와 신에 대한 원망뿐이랄까.' “허허…….”' 그렇다. 나는 지금 현재 시가 칠백을 달리고 있는, 어쩌면 내 몸값 보다 비쌀지 모르는 이놈을 분지른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돈을 칠갑을 한 이 집안에서 그깟 칠백이 뭔 대수나만 문제는 이 난을 무지하게 아끼는 대마왕이라는 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런 내 상황을 잠시간 위로해 준 뒤 재빨리 고개를 쳐들어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여유는 있었다. 시간을 확인한 즉시 나는 주방으로 뛰어가 선반을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손에 잡힌 이 환희의 생명체는 그 이름도 유명한 국민 만능 본드 일지어다!' “그래! 사람이 곧 죽으라는 법은 없다, 이 말씀이야!”' 노오란 본드의 선명한 색감과 나 본드요, 라고 말하는 듯 짙은 내음이 살짝 걸리긴 했으나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랴. 나는 심혈을 기울여 그것들의 아귀를 맞췄다. 호호 입김을 불어주는 센스도 잊지 않으며 말이다.' “오오! 그럼 그렇지! 아직 신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신 게야!”'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끊어진 난 줄기는 제법 티 안 나게 잘 붙었다. 나는 그런 나를 스스로 대견하다 머리를 쓸어 준 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혼자 지내다 보면 스스로 노는 스킬이 필요한 법.)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현금을 뒤졌다. 손에 잡히는 건 몇 장의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천 원짜리 등의 기타 지폐 몇 장이였지만 그래도 한 끼 밥 싸갈 정도는 되었다. ' 나는 모든 생각을 마친 후 화장이나 옷을 고를 겨를도 없이 달랑 교통카드만 들고 집을 나섰다. 대마왕이 가장 싫어하는 게 ‘지각’이기 때문이다.''2. 내 남편은 대마왕.'' “어, 어머! 사……사모님께서 여기는 또 어쩐 일로…….”' 내가 오든 말든 의자만 빙빙 돌리고 있던 양들이 죄다 벌떡 일어나 나를 맞았다. 그 익숙지 못한 행동도 심히 의아하다만 그들의 표정이 나를 더 의아하게 만들었다. 마치 야동을 보다가 엄마한테 걸린 사춘기 남자애 같은- 그런 표정 들이였으니 말이다.' “안에 있죠?”' “안 돼!”' “……네?”' 이름이 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김 양. 그녀는 갑자기 팔을 양 옆으로 벌리며 내 앞을 막아 세웠다. 그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김 양은 민망해진 손을 파닥거리다 별안간 열심히 흔들어 댔다.' “호……호호호! 팔뚝 살 빼는 데는 이게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러세요.”'그러더니 갑자기 옆을 보고 제 밑의 양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세 명의 여자가 우르르 기어 나와 열심히 팔을 흔들어 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처음에는 헐. 했지만 곧 그녀들을 이해하며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 대마왕 놈과 같은 장소에 있는데 정신이 말짱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일일 테니 말이다. ' “에구……식사들은 하셨어요?”' “네? 아……그……그게 팔뚝 살을 빼느라!”' “저……저희들도 팔뚝 살을 빼느라!”' 나는 여전히 팔뚝을 열라 흔들고 있는 김 양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싸온 도시락 중 유부 초밥을 낱개로 포장한 몇 개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쯧쯧. 젊은 아가씨가 그러면 못써요. 아무리 팔뚝 살을 빼고 싶어도 그렇지 끼니를 거르다니요. 이런 거라도 식사는 꼭꼭 챙겨 먹어야 이사님 밑에서 버티지.”' 내 말이 전혀 뜻밖의 말이었는지 모두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가, 이내 감동의 눈으로 변했다. 그리고 대마왕을 아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무언의 무언가가 오고갔다. 김 양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에 화답하듯 다시 한 번 손을 꼭 잡아주고 이사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지만 어쩐지 마주할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역시 대마왕. 나는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그리고 그대로 매끄러운 마찰음을 내는 문을 밀고 나서 쩍 하고 굳고 말았다.' “아! 아, 은헌 씨! 아아…….”'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여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워낙에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대마왕은 애초에 내가 온 걸 알고 있는 눈치인 것 같았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여자의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있는 그의 손을 쳐다보며 이거 나가야되나 들어가야 되나 고민했다. 그런데 다시 나갔다 들어오는 것도 귀찮고 그냥 놓고라도 와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에게 씨익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최대한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소파 앞 테이블에 싸온 도시락 꾸러미들을 놓았다. 그 순간 서늘한 그의 시선과 함께 꿈틀하고 미간을 찌푸려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아마도 그것이 좋은 시간을 방해해 버린 나에 대한 분노라 생각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해요.’' 열기 가득한 여자의 교성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얼른 나가고 싶었으나, 어지간히 대마왕이 무서웠던 나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 허리를 굽실거리며 그렇게 입모양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거기 서.”' 그런데 그때 내가 있든 말든 풍만한 여체만 주무르고 있던 그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응?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대마왕의 표정이 이상했다. ' “네?”' 부름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는 그렇게 반문했다. 그런데 그는 내 대답에 이상한 표정으로 또다시 한동안 뚫어져라 내 얼굴을 살폈다. 그러다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의 손길이 놓이자 교성을 지르던 여자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한 소리 하려다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저 코딱지는? 야! 너 뭔데 여기 막 들어와?”' 그들이 방금을 무엇을 했는지 여실 없이 들어내 주는 듯 여자의 앞섬은 다 헤쳐져있었고 붉은 립스틱은 턱 주변으로 뭉개져 있었다. 나는 머리를 확하고 쓸며 대마왕의 옆에서 팔짱을 끼며 나를 위아래로 훑는 여자를 같이 마주보았다.' “너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니? 너 뭐냐고 이 계집애야!”' “네? 아, 전 한민영이예요.”' 나의 친절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좀 더 대마왕의 팔에 찰싹 몸을 붙였다.' “은헌 씨 이 여자 좀 정신이 나갔나봐. 누가 너 따위 이름이 궁금하데? 내가 물어 본 건 그쪽이 은헌 씨랑 어떻게 아는 사이이기에 여기 막.들.어.오.는.거.냐.고.”' 이어지는 여자의 말에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딱하고 쳤다. 그리고 말하기 약간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아아 그걸 물어 보신 거예요? 서류상으로 아내랍니다. 그렇다면 그 쪽은 애인? 와우 이사님 능력 좋으시네요. 이사님 보다 한 십 년은 어려 보이는데요? 그럼 좋은 시간들 보내세요. 저는 그만 사라져 드릴게요.”' “……나가.”' “나가라잖아!”' “예, 예.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요.”' “꺄악!”' 등을 돌리며 나가려는 내 손을 대마왕이 콱 하고 뒤에서 움켜잡았다. 그리고 여자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너 말고 쟤 나가라고.”' 여전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와중, 여자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