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촬영이 끝이 나고, 헤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시카를 따라다니면서 수습 수업에 열을 올렸다. 첫 번째 VIP 고객을 성공적으로 맞이한 헤나는 그 뒤로 다른 몇몇 고객 분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적극적인 실습을 하였다. '“저쪽 로비로 나가시면 프런트에서 고객님의 열쇠를 맡아 주실 겁니다. 거기서 나머지 짐도 부치실 수 있습니다.”'갑작스럽게 아들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에 노부인이 당황스러워하며 안절부절못하자 이것저것 차례대로 절차를 얘기해 주며 헤나는 노부인을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그, 병원으로 바로 보내 줄 수 있나요?”'“물론입니다. 주소만 적어 주시면 병실로도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고마워요.”'“항구까지 모실 차가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서두르세요. 그리고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요 분명 괜찮으실 거예요. 나중엔 아드님과 함께 호텔에 와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고마워요. 기억하고 있을게요.”'그렇게 헤나는 노부인이 떠나는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런 상황에 함께 긴장했던 그녀는 어느 순간 힘이 빠지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한 그녀를 뒤에서 에드워드가 잡아 주었다.'“괜찮나?”'“아, 괜찮아요. 조금 놀라서 그런 거예요.”'“그래도 제법 잘하던데?”'“아니에요, 많이 당황했는걸요. 아직 멀었어요.”'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여 버린 헤나의 모습을 에드워드는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날, 키스를 했던 일을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뭔가 기억이 날듯 말듯 하면서도 나지 않아 답답했는지 미안함을 무릅쓰고 물어오긴 했지만.'‘저기, 제가 그날 무슨 실수라도 한 거 아니에요?’'‘아니, 그런 건 없었어, 단지 뻗어서 데려오는 게 힘들었지.’'에드워드는 키스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차라리 그녀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감사했다. 그는 그녀에 대한 제 마음을 다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두렵기도 했고, 조심스러워지고 싶었다. 로빈과의 일그러진 관계에서 분명 제 자신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 문제를 다시금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직 로빈과의 감정도 완전히 마무리 지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확실히 매듭을 짓고 헤나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이 문제로 인해 헤나가 상처받는 것은 원치 않았으니까.'“이번 주에 아마 런던으로 갈 것 같아.”'“런던이요? 왜요?”'“흠, 좀 심각한 일이 있지.”'심각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 헤나는 내심 뭔가가 수상하다 여겨 입을 열려는 순간, 저만치서 다가오는 다니엘을 보고선 에드워드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에게로 가 버렸다. '“역시나 뭔가가 수상해.”'왠지 뭔가를 숨기는 듯한 어색한 말투와 태도. 하지만 헤나는 곧, 제시카의 호출을 받고서 서둘러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이번 주에 런던에 가는 건 알고 있지?”'“예, 왕실 만찬에 초대받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흐음, 공식적으론 그렇지. 아무튼 자네는 남아서 나머지 일을 좀 처리했으면 좋겠어.”'에드워드와 다니엘은 호텔의 안전 문제를 점검하면서 런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다니엘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저기, 저도 런던에 갈 수 없을까요?”'“응? 무슨 일이 있나?”'“저번에 런던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는데, 제대로 전하지를 못했습니다.”'“그래? 그렇담 함께 가도록 하지.”'“감사합니다.”'에드워드는 마지막 점검을 끝내고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의 눈에 런던에서 온 초대장이 보였고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다시금 들어 올렸다. 왕실 만찬에 초대한다는 초대장. 사실, 이번 만찬은 해리 왕자가 직접 그를 초대한 것이었다. 물론 만찬이라는 것도 핑계에 불과했지만. 예전에 왕궁으로 한번 놀러 오라는 그의 편지를 본의 아니게 잊어버리고, 헤나와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그것을 직접 듣지 못한 그가 서운하면서도 삐친 마음에 그를 억지로 런던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원래 이런 공식 자리엔 잘 참석하지 않는 그였지만, 헤나를 위해서 그는 런던으로 갈 준비를 했다. 촬영이 끝난 후, 헤나는 정말이지 몸을 굴릴 정도로 쉬지 않고 일을 했으며, 휴일에도 그녀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고 몇 번 만날라치면 얼굴빛이 정말 말이 아니게 망가져있어 에드워드의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니 이 김에 헤나를 좀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해리 왕자도 겸사겸사 만나고.'이틀이 지나고, 레베카는 무척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런던으로 떠날 준비를 했고, 헤나는 지금까지도 왜 런던으로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듣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배에 오른 그 순간에도 대답 대신 자꾸만 웃음으로 넘기려는 그의 태도에 헤나는 이번엔 반드시 들어야겠다는 비장한 태도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이제 말해 주세요. 왜 런던에 가는 거예요? 정말 심각한 일이에요?”'“글쎄, 생각하기 나름이지.”'“정말 이러기에요? 치사하게!”'그의 장난에 점점 말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어 헤나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토라진 듯 등을 돌려 버리는 그녀의 행동에 에드워드는 웃음이 나면서도 꽤나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결국, 헤나에게 지고 만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만찬에 가는 거야.”'“만찬이요?”'헤나는 이제야 진실을 토해내는 그를 살짝 바라보며 되물었다.'“하지만 그런 자리 싫어하잖아요.”'“그렇긴 한데, 부른 사람이 워낙 대단해야지.”'“누군데요?”'“왕자님.”'“에?”'“동화 속 왕자님 말이야.”'처음엔 그가 또다시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하곤 이번엔 단단히 틀어져서 결코 화를 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런던에 도착해서 점점 버킹엄 궁으로 향하게 되자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고서 헤나의 표정은 극도의 흥분과 긴장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창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헤나의 모습이 귀여워 작게 속삭였다.'“그러다 창문 뚫어지겠어.”'“정말로 저 궁으로 가는 거예요? 새삼스럽게 백작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네요.”'“새삼 또 느껴 줘서 고맙군.”'“왕자님은 정말 잘생겼어요? 듣기론 되게 훈남이라고 하던데. 사진이라도 찍어서 자랑이라도 해야 하나.”'평소와는 달리 들뜬 헤나의 모습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던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져 버렸다.'“뭐?”'“정말로 얼마나 잘생기셨어요?”'“미스 헤나, 언제 그런데 흥미가 있었나? 이거 몰랐는데.”'“에이, 어느 여자가 잘생긴 남자 마다하겠어요?”'“하지만 왕자 전하는 이미 결혼을 하셨어.”'“그냥 눈요기를 하는 거죠. 제가 진심인 것도 아니고.”'그렇게 말하면서 거울을 찾아보는 그녀의 행동에 에드워드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약간 화가 나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왕자라고 다 잘생긴 건 아니야. 공주라고 다 예쁜 게 아닌 것처럼.”'“그럼 못생겼어요?”'“…….”'차마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에드워드의 행동에 헤나는 피식 웃으면서 거울을 보는 척 했다. 물론, 헤나는 왕자가 잘생겼든 잘생기지 않았든 상관은 없었다. 그저 그를 살짝 자극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근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는 그의 반응에 왠지 재미가 있어 더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제 마음속에 가장 잘생긴 왕자님은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저 귀여운 백작님이었으니까. '어느새, 그들을 태운 차는 원형 광장을 넘어 익숙한 근위병을 지나 버킹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헤나는 새삼 긴장한 태도로 에드워드의 손을 잡은 채 밖으로 나왔고, 너무나도 거대하고 웅장한 기백에 기가 눌려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와도 괜찮을까요?”'“무슨 말이지?”'“이러다가, 들킬 것 같아서요.”'원래는 이런 곳에 올 수도 오지도 못할 신분인데. 이러다 괜히 에드워드와 자신의 관계가 들통 날 것 같아 헤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러한 헤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키듯 강하게.'“걱정하지 마. 미스 헤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에드워드의 하나뿐인 약혼녀니까.”'헤나는 그의 한마디에 조금씩 진정되는 기분을 느끼면서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부인, 왕궁에서 만찬에 초대한다는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두고 가세요.”'“예.”'짙은 어둠, 빛이 보이지 않는 방 안에 로빈이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다 집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곤 집사가 두고 간 초대장을 펼쳐 보았다. 왕실을 상징하는 금색 휘장과 만찬에 초대한다는 해리 왕자의 친필서. 그가 주최하는 만찬이라면 어쩌면 에드워드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해리 왕자와 에드워드는 언론에서도 꽤 유명한 친구 사이였다. 같은 대학에서 동문수학했던 둘은 런던과 포츠머스를 오가며 서로 곧잘 어울렸지만 서로의 일이 바빠 어느새 그 왕래가 드물어졌다고 들었다. 그러니 이번 만찬은 에드워드를 불러들이기 위한 핑계일지도 몰랐다.'“무슨 일이지?”'“아, 아무것도 아니에요.”'로빈은 엷은 램프 빛 아래서 힘겹게 누워 있는 후작의 목소리에 표정을 숨기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에게 다가갔다.'“제가 깨운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