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다시 한 번 들춰보았다.''우수작 이지선 <내 생애 아름다웠던 날들…….>''언젠간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힘들었던 대학시절에도 이것만이 나의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름이 신문에 박혀 있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잡지사로부터 이메일로 소감을 보내달라는 짧은 전화 한 통과 시상식은 따로 하지 않고 상금이백만원은 재세공과금을 떼고 송금하니 계좌번호를 불러 달라는 것 밖에는.''몇몇 문예잡지에서 이메일이 몇 통 와 있었으나 다 열어보지는 못했다. 마감이 코앞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문을 서랍에 밀어 넣고 아까부터 교정 중이던 파일에 다시 눈을 돌렸다.'직원은 9명, 아니 이 사무실 직원은 9명이지만 계열사가 대 여섯 개나 되는 굴지의 건설회사 직원이 된 지 반년, 그러나 그것도 건설회사의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팀 밑에 있는 사보를 만드는 문화부서의 교정아르바이트로 부터 시작해서 정식작가가 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겨우 발령이 난 것이다. 그것도 이런 어려운 시기에 다행이라고는 생각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그것도 200페이지씩 되는 사보를 만들고, 회사의 홍보책자를 발행하며 분양되는 모델하우스의 카탈로그까지 만들어내는 엄청난 일을 하는데 직원이라고는 편집장 밑으로 달랑 8명이 전부여서 사보가 발행되는 날 하루 이틀 빼고는 거의 야근에 주말근무는 기본인 것에 비하면 월급은 정말이지 노동력 착취수준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원금 상환하려면 까마득한, 이자만 물기도 벅찬 아버지의 병원비……. 선배언니한테 거의 빌붙어 살다시피 하지만 회사 근처의 제습기에 물이 한 가득씩 쏟아져 나오는 눅눅한 반지하방의 방세와 생활비를 대기에는 빠듯한 금액이지만 월급을 탈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받을 상금 160만원 남짓한 돈은 정말이지 복권이라도 된 듯 기쁘기만 했다. 전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작가가 되고 한마디로 팔자가 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상금이 더 기쁜 것 보면 사는 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서게 된다.'“이지선 씨 그 기사 꼭지에 사진은 어떡하려고 그래? 김 작가가 당뇨로 쓰려졌다면서? 새로 청탁한 사진작가는 이번 주말이나 국내에 도착한다는데 그 기사 빼버려야 되는 거 아닌가?”'지나가던 실장님이 플라스틱 파일을 산더미같이 들고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 실장님은 나이가 마흔도 안 됐는데 눈 밑에는 벌써 검은 다크 서클이 깊은 골을 이룬 것이 한눈에 봐도 며칠은 야근한 모습이었다.''아마 나의 몰골도 저렇겠지…….'“그래야 될 거 같아요. 다음에 넣을 수도 없고 계절이 안 맞아서 못 써요. 아깝지만 어쩔 수가 없죠 뭐……. 실장님 오늘은 좀 퇴근하세요. 하실 일 있으면 저 시키시구요.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건강 꼭지하고 퀴즈 뒷마감은 제가 할게요. 제 기사 다 편집 끝났어요.”'“아니야……. 특집기사 아직 다 안 끝났어. 내일 아침 일찍 남양주시에 갔다 와야 돼. 모델하우스 완성됐다고 사진 찍어 가래. 어차피 집에 갔다가 가면 더 힘들어. 그냥 여기서 대충 졸다가 새벽에 나가서 아침 일찍 해만 나면 찍어서 차 안에서 편집해서 넘기면 어떻게 시간 다 될 거 같아. 기사는 다써놨는데 사진에 맞춰서 수정해야지.”'“에고 운전까지 하시게요. 정 대리님이 가시는 거 아니에요?”'“몰랐어? 정 대리 마누라가 애 낳았대. 예정일이 마감 지나서인데 미리 나온 걸 어떡해.”'“어머나, 축하할 일인데 축하도 마감 뒤로 미뤄야겠어요.”'“그러자구 빨리해…….” '김 실장은 말하는 시간도 아까운 듯 서둘러 자기자리로 돌아갔다.''지선은 저번 날 내내 준비한 기사를 사진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야 하는 게 마음이 아팠지만 대신 자리를 메울 기사를 찾느라 허둥지둥 바쁘게 웹서핑을 했다. 두 페이지짜리 자리이지만 원고는 반 페이지도 안 되고 사진으로 채워야 하는데 사진이 없으니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신춘문예 당선이고 뭐고 혼이 나갈 지경으로 바빠서 점심 먹은 지 8시간이나 지났다는 사실도 아예 생각이 나지 않았다.''''“지선아 언니가 한 잔 쏠게.”'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글은 대충 다 마감이 끝난 듯하고 내일 김 실장의 기사하고 사진만 올라오면 대충정리가 될 듯 했으니 한잔쯤 나 자신을 위한 축하도 될 듯한데.'“난 정말 네가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몰랐어. 너 정말 대단하다 근데 어떡하니 치킨 집 문 닫은 거 같아. 씻고 있어, 언니가 얼른 편의점 가서 맥주 캔이라도 사올게. 안주 뭐 먹고 싶니, 다 말해!”'“고마워, 언니 근데 나 낼 아침에 일찍 나가야 되니까 아무거나 간단하게.”'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타일바닥을 못 본 척하고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하고 나오니 벌써 한시가 넘은 듯했다.'그러나 오늘 아니 이미 어제이지만 그래도 축하해야만 하는 날이 아닌가?''''“신춘문예라니 어떻게 그런 거에 다 당선이 되는 거야? 이제 진짜 작가되는 거지? 상금은 많아?”'같이 사는 효선 언니가 얼굴에 팩을 붙인 채로 맥주를 조심스럽게 마시면서 칭찬 반 궁금증 반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거의 공짜로 살게 해주면서도 항상 잘 챙겨주는 효선 언니를 대체 언제 만난 건지도 기억도 안 날 정도다.''자신이 아르바이트생으로 대신 건설에 취직했을 때 회계 팀의 언니는 3년이 지났지만 다른 남자동기들이 다 승진을 했어도 여전히 카피 걸로 커피 걸로 사는 게 별 불평도 없는 낙천적으로 사는 맘 좋은 언니다. 내일도 일찍 출근해야 하지만 얼굴이 붓는 걸 마다하고 이 늦은 밤까지 자신을 기다려주면서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는 이 착한 선배언니는 아마 복 받겠지.'“요즘은 신춘문예당선 된다고 작가 되지도 않아. 책도 뭐 많이 안 보는데 그냥 상금도 200만원이고. 사실 될 줄 몰랐는데 돼서 기분은 좋네. 게다가 언니가 이렇게 밤늦게까지 파티도 열어주고……. 상금 타면 내가 근사하게 저녁 쏠게.”'“그래라! 하하 신문 좀 보자. 진짜 있나 보고 싶다. 낮에는 나도 바빠서 제대로 못 봤어.”'사실 제대로 못 본건 지선도 마찬가지였다.''내 생애 아름다웠던 날들……. 제목은 그렇지만 내용은 아름다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었다. 그전에도 몇 번 대학시절부터 신춘문예에 도전했었지만 항상 돌아오는 평들은 아직 학생인 듯한데 내용이 너무 허황되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가식적이다, 하는 내용뿐이었다. 결국 이제 포기해야지 하면서 쓴 마지막 내용은 사실 생각하기도 싫은 지선의 어린시절이야기였다. 자신의 이야기이었기에 그 무엇보다 진실했기 때문에 그것이 통했었나 하는걸 보면 쓴웃음이 나기도 하고……. 중편소설이라 신문 두 장에 걸쳐서 빽빽하게 활자화 된 자신의 글의 보니 좀 멋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사보의 기사거리가 아닌 순수한 자신의 글이 이렇게 글자가 되어 살아서 수 만 명의 미지의 사람들에게 보여 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와, 평들이 대단해. 이것 봐 나이 어리고 신인인 작가에게서 정말이지 고통스런 땀방울 하나하나가 느껴지도록 생생한 소설이다. 음, 또 이 사람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등장인물의 묘사가 충격적이고 새롭다. 오, 나 난독증 있어서 못 읽는데 읽어봐야겠다. 정말 이런 내용인가. 어, 근데 이건 누구냐, 이 사람은 뭐 이래…….”'“뭐래요? 원래 신춘문예는 비난기사도 많아요. 뭐 당연한 건데.”'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는 했지만 궁금해진 지선이 슬쩍 신문을 당겨보니 짤막한 비평문들 가운데 좀 긴 듯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