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 커튼이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것을 침대에 누워있던 세유는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알몸인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시선이 참혹하기도 하고, 일견 기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짙은 남색의 실크 침대보를 헤치고 나서는 그녀의 매끈하고 윤기 있는 몸은 대리석처럼 희게 빛났다. 부드럽게 목뒤로 물결치듯 내려온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등 중간에서 까맣게 윤기를 발한다. 탄탄한 몸에 어린 태가 남아있는 얼굴로 움직이다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갑자기 이런 자신의 모습과 그루피들이 겹쳐 보인다. 유명 가수들의 뒤를 쫓아 섹스를 한 것을 무슨 기념품이나 트로피처럼 여긴다는 여자애들. 별반 다를 것도 없어서 얼굴이 붉어졌다. '“아주 잠깐, 당신의 아내였던 것만 제외하면요.”'그녀의 시선이 그제야 부드러운 새벽빛에 드러난 남자에게 닿았다. 갸름한 턱 선과 여자보다 긴 속눈썹, 짙은 눈썹을 덮은 새카만 머리카락. 날카로운 콧날 아내로 자리 잡은 붉은 입술. 쌍꺼풀 없이 단정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나는 그의 검은 눈은 마치 소년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마지막이니까.” '그랬다. 그는 정말 아름다운 남자였다. 소년처럼 웃을 줄 알고,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감성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세유는 발치 아래로 핏방울이 떨어지자 다시 우울하게 웃었다. 샤워 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와선 잠든 그를 바라보다 걸레로 닦아냈다. 검붉은 색이 연한 분홍빛으로 바래졌다. 그것도 이내 깔끔하게 닦여버렸다. '세유는 옷을 갈아입고, 트렁크를 들었다. 그다지 묵직하진 않았다. 금방이라도 떠날 사람처럼 짐이 늘어나도, 금방 그것을 줄여나가곤 했었다. '그을린 피부를 가진 그의 뺨을 쓰다듬던 세유는 매끈하게 드러난 허리선에 얼굴을 붉혔다. 간밤에 조금도 쉬지 않고 몰아치던 열정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소년처럼 웃던 웃음 대신, 거기엔 남자가 있었다. 섹시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타오르는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줄 아는.'“당신은 누구에게나 그래요? 아니면, 어차피 지나면 보지 않아도 될 여자라서?”'소용없는 물음이다. 그는 간밤에 보낸 여자가 누군지도 모를 테니까. 자신은 운명이라고 여기는 수많은 여자 팬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온 조금 특이한 사람일 뿐이다.'뒤척거리는 남자는 피로한 모습으로 술 냄새를 풍겼다. 아주 조금 망설였다. 북어 국을 끓어주고 싶다는 마음에.'“팬심이란, 정말 대단한 모양이에요. 조금이라도 더 당신 보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제 그만할래요. 더는 당신한테 맞출 수가 없어. 웃는 얼굴도 싫으니까. 나 없이도 잘 지낼 당신이란 남자가, 너무 야속하거든.”''- 유유.''약간 쉰듯한 목소리. 그의 부름 한 번에 자신의 이름은 특별해졌었다. 뭔가 굉장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 다가왔다. 그저 웃음 한 번에 가슴이 떨렸다. 가녀린 몸집에 165에 약간 못 미치는 세유는, 슬림하지만 185에 달하는 그에 비하면 아이처럼 느껴졌었다. 보호받고 있는 느낌을 주는 따뜻한 포옹과 미소까지 모든 것이 그립겠지.'“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만할래. 힘들어.”'밖으로 나가려던 그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푸른색을 유난히 좋아하던 그답게 주변은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냄새가 났다. 세유는 무심해진 얼굴로 트렁크를 들고 나갔다. 그러다 멈칫했다. '‘이제 마지막이야. 다시는 못 봐.’'가슴이 무너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세유는 다시 몸을 돌렸다. 하얀색 주름치마가 허벅지에서 휘감겼다. 그녀가 잠든 그의 입술을 훔쳤다. 당연하게 반응해오는 따뜻한 온기가 너무 싫다. '눈물이 흘렀다. 그의 앞에선 단 한 번도 흘려본 일이 없던 울음이 뺨에 떨어졌다. 부디, 그가 나를 조금이나마 오랫동안 기억하기를. '“잘 있어요. 뤼안.”'그녀가 방문을 닫고 현관문에 섰다. 신문이 보였다. 그걸 보고 웃고 만다. 심장이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뤼안이 싫어하고, 자신은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의 냄새가 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샤샤가 달려와 그녀를 반겼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집을 지키는 데는 부실한 이 녀석은 셰퍼드 종답지 않던 수컷 개였다. 누구에게나 정을 주는 나쁜 녀석이 그녀의 마지막을 반겼다. '“너, 다른 사람한테도 마음 줄 거니? 모두를 좋아한다는 건 하나도 좋지 않아. 그러니까 이젠 너도 뤼안만 좋아하도록 노력해 봐. 그는 널 위해 방범 카메라도 달았잖아. 집도 못 지키는 개면서도 사랑 받는 샤샤. 아주 가끔은 내가 너였으면…… 좋겠어.”'샤샤가 애처로운 울음소릴 냈다. 세유는 한참을 쓰다듬어 주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이 여느 때처럼 무심하고 평안하기만 했다. 언제 슬퍼했냐는 듯이 서늘한 세유의 얼굴을 보며 사람의 감정에 민감한 샤샤만이 애처롭게 까만 눈을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잘 있어. 샤샤. 뤼안을 부탁할게.”'마지막이다. 그녀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샤샤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녀의 첫사랑은, 영원히 마음에 묻혀 버렸다. '내 이름은, 한세유. 중국의 톱스타이자, 가수인 뤼안의 1달짜리 아내였고 그것이 오늘 끝나버렸다. '그녀가 본 신문에는 뤼안과 여배우이자 가수로 유명한 시훼이안의 사진이 다정하게 실려 있다. 헤드라인엔 '뤼안, 드디어 3년간의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는가!'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