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닥콩닥 심장이 떨려왔다. 입꼬리를 올리며 환하게 미소 지어 보니 입가가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긴장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를 수도 없이 되새기며 손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홀 서빙 담당인 장 씨 이모가 씩씩한 목소리로 불렀다.'“하나 씨 일로 와 봐요.”'역시 반년이나 더 된 경력답게 장 씨의 손놀림은 빨랐고 준비도 척척 깔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장 씨 옆에 바짝 붙어 다니며 하나는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담아두기 바빴다.'“이렇게 음식들 나오기 전에 뷔페다이에 불을 지펴 줘야 하고요, 제일 먼저 커피를 뽑아야 해요. 그리고 딱히 손님들 오면 알아서 셀프 식으로 하니까 그렇게 어려울 건 없을 거예요.”'“네.”'긴장한 듯 하나의 표정이 얼어 있자 장 씨는 그녀의 입안으로 방울토마토를 쑥 넣어 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요렇게 하나씩 집어 먹어도 되요.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요.”'샐러드로 나올 방울토마토가 입안에서 톡 터지자 상큼한 맛이 가득 메웠다. 그래도 장 씨 덕분에 하나의 긴장감은 제법 풀린 듯 보였다.'“하나 씨!”'대충 홀 세팅을 마치자 이번에는 그녀를 매니저인 상효가 불렀다. 황급히 달려가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상효가 문 앞에 걸려 있는 보드 판을 보여주며 주절주절 설명과 함께 보드 판을 채워가기 시작했다.'“이건 오늘메뉴들을 쓰는 거예요 치킨볶음밥, 야채수프, 토마토샐러드, 양상추샐러드, 감자튀김, 미트소스스파게티, 안심스테이크.”'알아듣기 쉽게 한국말로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것과는 달리 보드 판에는 꼬불꼬불한 영어가 멋스럽게 써졌다. 때마침 상효가 메뉴를 다 쓰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상효의 목소리에서는 그녀의 털털하고 밝은 성격이 한껏 묻어나고 있었다.'“네! 클럽하우스(Club House)입니다.”'그렇다. 이곳은 클럽하우스(Club House)이다. 클럽하우스는 LK 중공업을 다니는 외국인들만을 위한 사택 안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주말을 제외한 점심은 뷔페식으로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양식들이고, 저녁과 주말은 일반 레스토랑처럼 운영된다. 주말 같은 경우는 토요일만 운영되고 일요일은 휴일로 정해져 있다. 1층은 레스토랑, 2층은 바(Bar)로 되어 있으며 이곳 모두를 통칭하여 모두들 클럽하우스라고 부른다. '“하나 씨, 하나 씨가 카운터 좀 맡고 있어요.”'“네?”'“그냥 손님들 오면 인사해 주면 되요.”'“아…….”'“내가 화장을 안 해서요. 아직 손님도 없으니 홀은 이모가 알아서 할 거예요. 후딱 갔다 올게요.”'파우치를 흔들어 보이던 상효는 당황스러움을 내비치는 하나의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다가 이내 재빨리 화장실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그녀는 패닉상태였다. 거기다가 투명한 유리문 사이로 금발머리와 우윳빛갈의 피부를 가진 백인들의 모습들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절부절못하며 두리번거리던 하나는 애써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하, 하이(Hi).”'백인의 외국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oh! hello.(오! 안녕.)”'다행히도 자신의 인사에 반응하는 외국인의 모습에 하나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후로 쏟아져 나오는 외계언어와도 다름없는 영어들로 인해서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져 버렸다. '“아……. What?(뭐라고요?)”'하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그저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또한 되물음과 함께 들려오는 영어에도 아무런 답변을 할 수가 없는 것도 그녀의 현실이었다.'“…….”'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유리문 사이로 몰려오는 낯설고도 익숙지 않는 많은 외국인들의 등장에 하나는 끝내 울상 된 표정으로 대꾸했다.'“Sorry, I don’t know.(미안해요, 잘 모르겠어요.)”'“Um, No Problem.(음, 괜찮아요.)”'괜찮단다. 이거라도 알아들은 게 어디겠는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는 떼거지로 몰려들어오는 외국인들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Hi, Hi.(안녕.)”'생각보다 외국인들의 인사성은 너무나 밝았다. 다만 인사성이 너무 밝은 게 지금 그녀의 입장에선 좋지 않았다. 혹여 무슨 말이라도 걸어올까, 하나는 바짝 긴장한 채 인사를 주문 외우다시피 읊어대고 있었다. 다행히도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구세주가 될 매니저인 상효가 유리문을 밀어젖히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하나 씨, 혹시 고양이 소리 못 들었어요? 어디서 자꾸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안 그래요?”'“고양이 소리요?”'“내 귀가 이상한가? 참 내 립스틱이 어디 갔지?”'자신의 가방을 꺼내 막 뒤지던 상효는 또다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봐봐! 고양이 소리 맞죠?”'“아……. 하하, 제 인사 소린데요.”'“인사?”'“하이, 하이…….”'하나의 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고양이 소리가 아닌 그녀의 자신감이 결여된 영어 인사 목소리를 우습게도 상효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착각하였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듯 양 볼을 붉히는 하나의 모습이 귀여우면서 우스운지 끝내 상효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식사를 하는 몇몇 외국인들이 상효의 웃음소리에 카운터 쪽으로 점점 시선을 주목하고 있었다.'“She is a new part time. isn’t she cute?(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이에요. 귀엽지 않아요?)”'쥐구멍에라도 숨어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외국인들은 너도나도 하나를 쳐다보며 상효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효는 쿨 하게 그들의 질문들을 깡그리 씹어 먹으며 단호하게 대꾸해 주었다.'“don’t worry. enjoy your meal.(신경 쓰지 말고 즐거운 식사하세요.)”'“저기…….”'“하나 씨 나 입술 좀 바르고 올게요. 자신감 있게 파이팅! 크크크.”'매니저의 웃음소리에 남아 있었던 자신감이 바닥으로 더 푹 꺼지고 말았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외국인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나는 상효가 했던 말을 기억하며 식사 중인 사람들에게 속삭이듯 말을 내뱉었다.'“don’t worry. enjoy your meal.(신경 쓰지 말고 즐거운 식사하세요.)”'이건 뭐 국어책을 읽는 것보다 더 딱딱해진 한국식 영어 발음이었다. 이들이 알아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클럽하우스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Hi보단 hello라는 인사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다시 밝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아닌 제법 자연스러운 영어를 말이다.'“Hello!(안녕!)”'그렇게 몇 명의 외국인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그녀는 외국인들 사이에 단연 돋보이는 동양인의 모습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기다가 이 사람 젊었다. 외국인 사택에서 묵는 이들 대부분이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서 장기 출장을 온 뛰어난 엔지니어들이나 감독들이었기에 중년층이 반을 차지했다. 그러니 젊은 층의 등장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이 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동양인인 한국 사람이니 얼마나 반갑겠는가?'“안녕하세요.”'자동적으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한국말이 이렇게 달자지근하고 사랑스러운 말이었던가? 그러나 인사성이 밝은 외국인들과는 다르게 반가웠던 한국인은 하나의 인사를 무시한 채 지나쳐 버렸다.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레스토랑이었고 상대방은 손님이지 않는가?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단지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뭐야, 중국인인가? 인사를 무시하다니 재수 없어.”'“what?(뭐?)”'하나를 지나쳐가던 동양인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섰다. 갑작스럽게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순간 얼어 버렸다. 거기다가 이 사람 가던 길을 멈춘 것도 모자라 이제는 다가오기까지 한다. '“아……, 니하오.”'이곳에는 국적이 제각각인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백인들뿐만 아니라 동양인 그리고 흑인까지 인종이 다양했기에 언어 또한 제각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들 기본적인 언어로 영어를 구사하고 있긴 하지만 영어에 미약한 이들 또한 있었다. 하나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동양인의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또다시 어색하게 짝이 없는 중국 인사와 손을 흔들어 보였다.'“니, 니하오.”'“안녕?”'그녀의 인사에 대한 답변은 동양인이 아닌 그를 따라 들어온 또 다른 외국인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어색하지만 반갑게 들려오는 한국말에 하나는 동양인이 아닌 연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Hello.(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