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아가씨.”'“오빠, 어디 있어요?”'“저를 따라오십시오.”'창식이 그녀를 안내한 곳은 클럽의 위층이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는 강렬하고 화려했다. 이곳은 클럽의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최고급 VIP룸이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독립된 장소였다.'“이 방입니다.”'창식은 복도 중앙에 위치한 문 앞에 멈춰 서서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다.'“고마워요.”'안으로 들어가자 독한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지욱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원은 숨을 고른 뒤 테이블로 한 발짝 다가갔다.'“멈춰!”'바닥에 낮게 깔리는 지욱의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왜 왔어?”'“…….”'“왜 왔냐고 묻고 있잖아!”'지욱이 난폭하게 테이블을 내리치자 방금 전까지 그가 마시던 술병들이 불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화가 난 사람은 나야! 오빠가 왜 화를 내?”'“왜 화가 났냐고? 내가 왜 화가 났을 것 같아!”'그녀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동요하고 마는 자신이 지욱은 한심스러웠다.'“오빠가 더 잘 알잖아!” '“내가 알고 있다? 후후후.”'야유하는 듯한 말투. 냉정함을 잃는 일이 없는 그의 포커페이스가 흔들리고 있었다. 여태껏 자존심 하나로 버텨왔다. 지금 지욱의 자존심은 상처 입다 못해 너덜너덜 찢겨져 넝마가 되었다. 지욱의 기분은 부둣가에서 돌아온 후 한층 더 침울해져 있었다. 비난 섞인 지원의 시선에 지욱은 고개를 돌렸다.'“뭘 확인하고 싶어서 온 거야?”'“부정하지 않는 거야?”'“부정하면 과연 네가 믿어줄까?”'그녀는 화를 내는 그를 보며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했던 기대감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가슴이 욱신거리고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왜 죄 없는 사람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놔? 아저씨 잘못되면 책임질 수 있어? 오빠가 양아치야! 왜 그랬어? 왜!”'“너와 함께 있는 그 자식이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어!”'혐오감으로 가득한 그녀의 눈동자는 지욱의 가슴을 후벼 팠다. VIP룸은 그들이 뿜어내는 긴장감과 열기로 팽팽하게 당겨졌다.'“오빠.”'“오빠라고 부르지 마. 난 네 오빠가 아니야. 그렇게 불리길 바란 적 없어!”'지원은 그의 말에 강하게 뭔가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그런 말이 어디 있어?”'“그 자식이 병원에 실려 간 모양이군. 그래서 화나 나서 날 찾아온 것 같은데, 그럼 내 기분은 어떨 것 같아? 너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내 기분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절규하는 지욱의 모습에 지원은 어금니를 힘껏 깨물었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을 만큼 그 사람, 오빠에게 잘못한 거 없어. 오빠에게 받은 내 상처, 그 사람이 보듬어 줬어. 그 사람 때문에 힘든 고비 넘길 수 있었다고!”'“잔인하구나, 너.”'“잔인해도 어쩔 수 없어. 나 오빠 변하는 거 싫어.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나에겐 자랑스러운 오빠였어. 제발 부탁이야. 예전에 내가 알던 오빠로 돌아와.”'“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너에게 내 마음을 들켜버린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돼 버렸어.”'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에게서 확실하게 분노가 전해져 왔다. 지원은 지금의 그에게는 어떠한 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술 깨면 다시 얘기해.”'“난 취하지 않았어. 그 어느 때보다 멀쩡해.”'지욱이 팔을 움켜쥐자 마음속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무엇인가가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날 밤의 괴로운 기억들이 스멀스멀 지원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이 손 놔!”'핏빛 눈동자에 어린 것은 분명 공포였다. 지욱은 몸부림치는 그녀를 만지고 싶어 하는 자신을 깨닫고 절망했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지원의 얼굴을 발견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죽도록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해 봤자 그녀에게 자신은 오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놓으라고. 싫어! 싫단 말이야!”'“오빠로서는 좋지만 남자로는 싫은가?”'그의 진지한 물음에 지원은 입을 다물었다.'“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야. 싫은 건 당연해.”'자신을 받아줄 거라고 처음부터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듣게 되자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여자는 너 하나뿐이다.” '그녀는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소리치고 싶었다. 지욱은 손을 뻗어 자꾸만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지원의 허리를 낚아채듯 휘감았다.'“너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너를 잊는다는 것은 나에겐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오빠, 이러지 마!”'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은 지욱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지원의 체취에 흠뻑 젖고 싶었다. 매일 밤 그리워만 하던 익숙하고 그리운 향기였다. '지욱은 허리를 휘감은 손에 힘을 주어 지원과의 거리를 좁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자 그녀는 황급히 몸의 방향을 틀었지만 그에게 붙잡힌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내가 무서워?”'쉰 듯한 그의 목소리였다.'“제발.”'지원의 애원 섞인 눈물에도 지욱은 두려울 만큼 무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