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응. 눈부셔…….” '커다란 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바늘만큼이나 따갑게 느껴져 우민은 눈가를 찌푸리며 이불 속으로 고개를 파묻을 수밖에 없었다.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긴 밤의 장막이 속절없이 걷힌 채 찬란한 태양 뒤편에 제 모습을 힘없이 감추고 있었다. '어젯밤, 황홀할 만큼 밤하늘을 수놓았던 별들이 모조리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듯 푸르기만 한 하늘. 그리고 그 푸른 하늘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태양은 우민에게 있어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난 더 자고 싶어, 자고 싶다고! 그러니까 제발 방해하지 마!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따가운 햇살을 따돌리기 위해 푹신푹신한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여 보았지만 월드 스타라 불리는 유명한 가수처럼 아무리 태양이 싫다고 부르짖어 본들 피하는 방법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결국 항복을 표하며 온전히 깨지 않은 멍한 정신으로 커튼을 치기 위해 반쯤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앗!” '허리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반응한 입술이 절로 신음을 토해냈다. '뭐지……? 이 통증은? '마치 위아래가 손쉽게 분리되는 블록인형이라도 된 기분이다. 허벅지 안쪽에서 미미한 전류가 흐르는 듯 이물감이 묻어나는 느낌. '고통이란 단편적인 것으로 표현하기엔 무디고 미묘한 자극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자마자 우민의 눈동자가 빠르게 무언가를 찾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비스듬히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유사의 모습을 보며 숨을 쉬는 것 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으음…….”'순간의 정적 때문인지 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낮은 숨소리가 심장에서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멍하니 유사를 바라보던 우민은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금 침대로 누였다. 겹친 팔 위에 턱을 괸 채 유사에게 고정된 두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신기한 듯 잠든 그를 바라보았다. '새근새근, 낮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는 평소 우민이 알고 있는 존재완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 완전 자존심 강한 남자야, 만만하고는 담쌓은 인간이니 알아서 행동하도록, 이라고 말하는 듯한 평소의 팍팍한 표정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언제나 찌푸리고 있는 미간도 그저 반듯하기만 하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치 아이처럼 순수한 표정으로 잠들어있는 그에게서 지난 밤 쉴 새 없이 우민을 몰아붙이던 뜨거움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헌데 얄궂게도 천진한 표정으로 잠든 남자의 얼굴 위로 지난 밤 자꾸만 농밀하게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졌다. '숨결마저 뜨거웠던 목소리. 자신을 원한다 말하던 흔들림 없던 눈동자. 그에게서 느껴지던 터질 듯한 심장의 울림, 뜨거운 체온까지……모든 감각이 한데 뒤섞였다. 그 모든 것에 반응했던 우민은 자신을 몰아붙이던 그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 안에서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그……. '생생하게 떠오른 지난밤의 기억에 우민은 화르륵 볼을 붉히며 고개를 휘저었지만 한번 떠오른 것은 뇌리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백만 마리 모기에게 습격당해 모조리 피가 빨린 것처럼 새파랗게 질린 채로 우민은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혀끝으로 적시며 중얼거렸다. '“동요하는 게……당연한 거지……?” '난생 처음 경험해본 섹스란 것은 29살의 우민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충격적인 행위로 각인되어 버렸다. 인간의 언어론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 이른 말로 신세계를 노크한 기분. 그건 우민에게 전혀 다른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 신통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유사가 그녀의 안을 가득 채웠을 때, 우민이 맨 처음 느낀 것은 자신의 마음도, 그의 마음도, 모조리 무시해 버리고 그저 눈앞에 있는 그를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던 그 감각이 점점 익숙해지자 저도 모르는 새 자신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남자에게 어린아이처럼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온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절로 비틀리는 야릇한 감각이 그가 신음을 토해내며 격하게 움직일수록 우민을 강하게 내리쳤기 때문에……. '유사가 주는 감각에 하염없이 밑으로,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기분이어서 그저 그에게 자신의 것 같지 않은 이 몸을 매달리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난생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통증과 정반대로 마치 땅 밑으로 꺼질 것 같은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던 절정. '이 전혀 다른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기분을 대체 어떤 말로 표현해야 좋을까? '우민은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유사를 보면서도, 지금 이 순간 통증과 비슷한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마치 새벽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토록 환한 햇살이 온방을 비치고 있으니 그 어둠만이 내려앉았던 밤에 두 사람을 꿰뚫던 열정이 그저 한여름 밤의 꿈처럼 깨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처럼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결국, 잠든 유사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민은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새겨졌다. '지난 밤, 충만함으로 가득했던 마음 한 켠에 어쩐 일인지 외로움과 쓸쓸함과 비슷한 진한 허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 자리한 남자와의 거리는 고작 한 뼘. '다른 때라면 너무도 가까운 그와의 거리에 혈압이 상승하는 걸로 모자라 피가 역류하는 소리가 귓가를 내리치고,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인해 숨쉬기도 힘들 것 같은 그 거리가 지금은 어째서인지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지금 자신이 이런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는……아마도 ‘남녀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거리’ 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서로 다른, 완벽한 타인인 두 사람이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주는 감각을 알게 돼서일까? '우민은 어째서 사람들이 그렇게 섹스에 집착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연인으로 이어진 남자와 여자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 혈연이란 틀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를 실로 묶여 있는 이들에게 섹스는 순간적이지만 어떠한 것보다 끈끈하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을 이을 수 있고, 그들이 나눌 수 있는 가장 열정적이고 완벽한 사랑의 행위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순간만큼 두 사람은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무엇도 그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 수 없었다. 하나가 되는 듯한 그 기분은 육체적인 것을 떠나, 그와 마주하는 순간 우민의 마음속에 오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견고한 둑 하나가 무너지는 느낌을 선사하게 만들었다. '‘당신을 원해…….’ '그 입술을 통해 직접 전해들은 그 말, 유사가 내뱉은 자신을 원한다는 선명한 그 말을 우민은 저를 바라보던 눈빛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눈빛으로 끊임없이 저를 원한다고 속삭였다. 그 순간, 말하지 않았어도 느껴지는 남자의 진심에 제 안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온 기분이 들었다. 분명 지우를 좋아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제 깊은 곳에서 고개를 숙인 채 숨어있는 비겁한 감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우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유사에게 집중했던 자신 또한 분명히 있었다. '이 커다란 남자가 자신의 품에 안기듯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던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유사의 눈빛에 담긴 그것이 처음 보는 종류의 절박함이란 것을 알았을 때, 보듬어 주고 싶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그의 상처받은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의 얼굴에서 저 표정을 지울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필사적이 되었던 이 마음의 정체가 무얼까? 난, 이 사람을……좋아하게 된 걸까? '날 원한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나올 것만큼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필사적으로 그 마음에 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 건.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됐기 때문일까?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자신은 어느 물음에도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너는 스스로의 마음도 모르는 거니?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은 거니?’'이런 자신을 답답하다 여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의 비겁함을 책망하며 유사를 살피듯 바라보는 우민의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다. '화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는 진한 두 눈썹, 여자보다 길고 숱이 많은 속눈썹, 날렵한 콧날, 붉은 입술을 이토록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는 남자의 얼굴 위를 닿지 않게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듯 덧그리며 우민은 저도 모르게 낮게 중얼거렸다. '“무슨……의미였어요?” '날 원한다는 그 말은? '제 부정확한 마음처럼 당신의 마음도 혹시 그런 것일까? 자신의 마음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 당신의 마음을 확신을 가지고 싶다는 건 내 이기적인 욕심이겠지? '절 원한다는 당신의 그 말은 무슨 의미였냐고, 혹여 그가 자신에게 묻는다면 답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저 혼자만 이리 물으며 궁금해 하는 건 너무도 이기적인 거겠지? 하지만……. '‘날 원한다는 그 말이……. 날 좋아한다는 의미인 건가요?’ '우민은 형체를 띠지 못한 채 입 안에서 모래알처럼 낱낱이 흩어지는 말들을 간신히 그러담으며 유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공기 중에 숨기듯이 그 물음에 답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다시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난……당신을 좋아하는 걸까……요?” '“그게 궁금하십니까?” '순간 귓가를 가르는 목소리에 우민은 두 눈을 똥그랗게 뜬 채 유사를 바라보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윽’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며 유사가 우민을 바라보았다. 마주한 유사의 눈빛은 생기가 넘쳤다. 그건 절대 방금 잠에서 깬 사람의 얼굴도 목소리도 아니었다. 우민은 여태 제가 혼잣말처럼 주절거린 말들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람……, 설마 계속 깨어있었던 건 아니겠지? '부끄러운 마음에 그리 여기고 싶었지만 원래 불안함을 담은 예측일수록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아마도 그녀의 예상은 적중한 듯싶었다. 유사는 진즉 깨어있었다. 그럼 중요한 것은 언제부터이냐는 것인데……. '“대체 언, 언제 일어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