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우리에게 특별한 사람

서울 한복판 광화문 도로는 아직 퇴근시간도 아닌데 빽빽하게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앞뒤로 막힌 차들 틈에는 고요함을 벗어나 시끄러운 도로 한복판에 놓인 우리가 있었다. 반차까지 쓰고 우리와 동행한 서준도 함께였다.

“형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서준의 얼굴이 지금껏 본 적 없게 굳어졌다. 대리기사에게 차를 인계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설명하던 우리는 서준의 낯선 목소리에 떠들던 입을 얌전히 다물었다.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우리가 찰나의 공백에 당혹스러움을 묻고, 조심스레 물었다.

“대리기사를 불러서 형을 본가에 보내놓고, 뭘 잘못했냐고 묻는 거예요?”

서준의 말투가 한 단계 더 격해졌다. 네가 네 죄를 모르냐고 치도곤을 칠 것만 같았다. 다정다감하던 서준이가 저리 격해진 걸 보면 큰 잘못을 한 거 같긴 한데,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우리는 죄를 고할 수도 없었다. 김우리야, 너 아직 멀었나보다….

시무룩해진 우리의 어깨가 축 쳐졌다. 처음으로 승원이 낸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이 혼자만의 착각이었음에 실망스러웠다. 서준이 다음 말을 뱉을 때까지는 철썩 같이 그런 줄 알았다.

“하… 기가 막혀서… 완전 잘했죠!”

말투와 상반된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단수로 까는 건지, 어이가 없을 만큼 잘했다는 건지, 혼란을 가중시켰다.

“난 듣고도 믿기지가 않네. 형이 순순히 말을 들어요? 아니 그 융통성 없는 고집불통을 어떻게 이겼어요? 대박! 대박! 내가 봤어야 하는 건데.”

한껏 흥분한 서준의 호들갑에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뭔데,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나도 좀 알자고!

*

“그게 그렇게 대박일 일이에요?”

나눠 든 종이가방을 손에 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우리가 아직까지도 흥분에 젖어 있는 서준을 만류하듯 물었다. 필요한 물품을 사고, 계산을 끝내고 돌아가는 지금까지도 서준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행인 건 사람이 드물게 있어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박이죠! 우리 씨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 줄 알아요?”

“제가 칭찬은 안 놓치고 챙겨 먹는 스타일이긴 한데, 이건 도무지….”

이건 아니라는 듯이 우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만치 뭔가를 발견한 서준이가 불쑥 우리의 손목을 잡아채서 끌고 갔다.

중앙 복도 한쪽에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동화 원작과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버전의 책과 dvd가 전시되어 있는 이벤트 코너였다. 그 중, 길고 탐스러운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라푼젤’이 눈에 띄었다.

“라푼젤한테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어땠을 거 같아요?”

서준의 뜬금없는 질문에 우리는 갸우뚱하면서도 대답했다.

“그랬다면… 라푼젤이라는 동화가 있을 수 없었겠죠.”

“그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말투에 우리가 제 생각을 덧붙였다.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원작에서처럼 왕자가 성탑에 올라오지도 못했을 거고.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라푼젤이 밖으로 탈출하지도 못했겠죠. 라푼젤은 늙어 죽을 때까지 평생 성탑에 갇혀 살았어야 할 거예요. 비극이죠.”

“에이! 그런다고 못 나오나.”

“마녀는 라푼젤이 탈출 못하게 밧줄이며 커튼처럼 도구로 쓰일 만 한 건 몽땅 없앴다고요. 뛰어내리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건 처음이자 죽는 순간 마지막으로 겪게 되는 자유일 거예요.”

“어후. 머리카락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아주 큰일이죠.”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를 보며, 서준이 씨익 웃었다.

“거봐요. 그래서 우리 씨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거예요.”

응? 의아하게 올려다보는 우리를 다정하게 보는 서준의 얼굴에 개구진 미소가 번졌다.

“머리카락 없는 대머리 라푼젤에게 머리칼을 빌려 준 셈이거든요, 우리 씨가.”

“제가 그런 훌륭한 일을 했다고요? 형님한테?”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머리 라푼젤이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