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불빛만이 간간히 있는 지하주차장의 음침함에 재희는 진우에게 바짝 붙은 채 뒤를 따르고 있었다. 오늘처럼 진우나 현성의 차를 얻어 탈 때면 이렇게 앞 사람에게 바짝 붙어 주위를 살피며 걷곤 했다.'“차비는 나중에 청구한다.”'운전석의 문을 열던 진우가 움직임을 멈추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젖히는 재희를 향해 건조한 말투로 이야기 했다. 분명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의 차로 움직이자고 한 것도 그였건만, 마치 그녀가 태워달라고 졸라서 억지로 태워주는 것 마냥 생색내고 있었다. 조수석의 문을 열어 놓은 채 진우를 바라보던 재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는 그가 듣지 못할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욕하려면 대놓고 하던지…….”'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착용한 진우는 피식 웃으며 차키를 꽂아 앞으로 돌렸다.'“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대놓고 욕을 해요?”'“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욕을 하긴 했군.”'욕을 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재희는 더 이상 진우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를 바쁘게 오가던 말들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자 어색한 분위기가 생겼다. 시선을 정면에 둔 채 운전에 집중하던 진우는 오른손을 뻗어 내비게이션을 만지작거렸다. 진우의 손이 몇 번 화면을 두드리자 낮은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이거 별로다. 다른 곡으로 넘겨봐.”'고개를 숙여 내비게이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음악 목록이 들어왔다. 지금 나오는 곡을 포함하여 목록에 표시된 모든 곡들이 일전에 그녀가 좋아한다고 했던 것들이었다. 하물며 클래식까지……. 이게 뭔가 싶은 마음에 목록과 진우를 번갈아 보았다. 잠깐 동안 둘을 번갈아보던 재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재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하자 그제야 진우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재희는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듯 검지로 창을 두드리며 고개를 아래위로 가볍게 흔들었다. 환한 미소를 짓던 진우는 행여나 재희가 알아차릴까 얼른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리고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