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된 지 두 달, 익현과 오판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키가 거의 180cm에 다다르는 익현과 겨우 150cm가 될까 말까 하는 오판. 나란히 걷고는 있지만 외관상으론 전혀 동갑내기라 생각하기 힘들다. 새로 맞춘 교복은 똑같건만 풍기는 분위기는 거의 새내기 사회인과 형의 교복을 빌려 입은 초등학생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두 사람이 또래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새로 나온 게임을 어디까지 깼다. 이건 내가 더 잘한다. 열심히 입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입씨름이라기보다 오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익현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오판의 말에 무턱대고 오냐오냐 하는 중이니까……. '남학교 교복. 분명 남자 대 남잔데 어째, 오판을 바라보는 익현의 눈빛이 심히 꺼림칙하다. 형태로 나타내라면 시뻘건 하트들이 눈에서 마구 발사되어 오판의 전신을 수줍게 콕콕 찌르고 있는 모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정작 그 찔림의 당사자는 그 하트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게임에 대한 열변으로 한창이다. 미묘한 동상이몽(同床異夢). '그렇게 나름대로 자연스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모퉁이를 돌아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세 명의 껄렁한 남고생들이 둘을 막아선다. '한산한 골목길, 갑자기 나타난 남고생 무리. 위협하듯 구겨진 인상에, 최대한 삐딱하게 걸쳐 입은 교복. 거기다 껌도 씹고, 다리도 떨고, 간간히 침도 뱉어 주신다. 이쯤대면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날지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녀석들이 소위 ‘삥’이란 걸 뜯기리란 걸 말이다. 하지만 이 고교생들은 돈보다 이성 친구가 더 고팠나 보다. ‘머니’를 외칠 생각은 않고 오판을 둘러싸고 대놓고 호감이라 읽고 찝쩍이라 해석될 감정을 드러낸다. '“요거, 요거, 예쁜데.”'여드름투성이 남고생이 콧등에 낀 개기름처럼 느끼하게 뱉는다. 그러자 옆에서 껌을 질겅이던 남고생이 열렬히 동조한다.'“진짜, 요년 삼삼하네.”'‘요년’이란다. 분명 오판이 입고 있는 교복은 인근 남중의 것.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해대는 걸 보면 인근 학교 학생은 아닌 모양이다. 남은 학생이 그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우리 학교 근처엔 이렇게 빤들빤들한 년 없었는데, 역시 이 동넨 물이 다른가. 진짜 무진장 죽이는데.”'‘무진장’ 그렇다, 오판은 무진장 예쁘다. '“야, 너 몇 학년이냐?”'개기름이 성큼 거리를 좁히며 묻자, 껌과 남은 녀석도 성큼 거리를 좁히며 뱉는다.'“오빠들이랑 놀래? 즐겁게 해 줄게.”'“그래, 이런 녀석이랑 다니지 말고 오빠들이랑 놀자.”'딱딱하게 굳어 있던 ‘이런 녀석(익현)’의 얼굴에 빠직 금이 간다. 하지만 껄렁 3인방은 전혀 아랑곳없이 오판에게만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아, 오빠라고 불러 봐.”'개기름이 오판의 볼로 검지를 뻗으며 느물거린다. 순간 미세하게 꿈틀대던 오판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고, 동시에 익현이 개기름의 손을 매섭게 쳐내며 오판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익현은 눈을 부릅뜨고 탁하게 뱉었다. 고교생들은 ‘이건 또 뭐냐?’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다 일순 흠칫했다. 전혀 연하 같지 않은 녀석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기가 눌린 탓이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추스르고 눈을 부라린다. '“하아! 이 새끼 봐라. 꼴에 남자라고…….” '쪽수로 보나 나이로 보나 자신들이 위인 것이다.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찌그러져 있어라.”'“고럼 안 그럼 너, 처마, 맞는다.”'아까보다 한층 위세가 꺾인 어조, 게다가 마지막 녀석은 아예 더듬기까지 한다. 그만큼 익현의 덩치나 눈빛이 위협적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놀아 본 가락이 있는지라 쏘아보는 눈길은 거두지 않는다. 익현도 지지 않고 녀석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허공에서 마구 불꽃을 튀기는 하나의 시선과 세 개의 시선, 그 사이 오판의 노여움은 끓어오르다 못해 머리뚜껑이 하늘로 솟구치기 직전이다. '오판의 앞에서는 해서는 안 될 금구(禁句)와 금행(禁行)들이 있다. 그것은 ‘오빠야, 오빠라고 불러 봐.’ ‘계집애네, 계집애 같다.’ ‘여성스럽네, 여자다.’ 등의 XX염색체의 향기를 짙게 풍기는 언어들과 오판을 완전히 여자 취급하는 행동들이다. '오판은 간성(間性)의 일부인 남녀중간몸으로 그중에서도 내성기도 남녀의 것을 공유하고 있는 참남녀중간몸이다. 한 몸에 두 성기가 있는 탓에 성기의 모양은 다소 기형이지만, 고환에 난소, 자궁까지 다 갖춘 남성과 여성, 어느 쪽도 될 수 있는 특이한 케이스의 양성(兩性)인 것이다. 이런 경우 어릴 때 부모가 한 성을 선택해 수술하기도 하지만, 오판처럼 신체의 성장이나 본인의 성향(性向)을 고려하기 위해 수술을 미루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무튼 오판은 현재, 다소 미묘하긴 하나 남성이자 여성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결과이고 정신적인 면에서는 분명 남자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본인은 극구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무의식은 의식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등등의 이유로 오판은 여성을 상기시키는 말과 행동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침 좀 뱉으신 형님들께서 친절하게도 적나라한 금구과 경악스런 금행들을 녀석의 면전에 쌍으로 퍼부어 주셨으니, 성질 급한 오판이 이성을 붙들고 있을 리 만무하다. '뚝, 소리도 없이 이성의 끈이 끊어지자 오판은 빳빳이 굳은 얼굴로 익현의 몸을 옆으로 밀치고 고딩들에게 던졌다. '“여자?”'입술이 비틀린다. '“내가 여자로 보여?”'말이 짧다.'“네놈들은 눈이 삐었냐?” '부릅뜬 눈꺼풀마저 바르르 떨리는 양이 장난 아니게 열 받은 모양이다. 오판은 허리춤으로 손을 내리며 스산하게 내깔았다.'“이 동태 눈깔들아. 잘 봐라! 내가 여잔지.”'순간, 익현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익현은 번개같이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안 돼!”'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오판의 바지는 어느새 아래로 쑥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빨라도 잡기는 역부족. 익현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그대로 손을 옮겨 녀석의 중심을 덥석 잡았다. '“자 봐라, 봐. 내 이 우람한 아들놈을.”'오판은 아랫배를 앞으로 내밀며 주장했다. 자신이 항상 우람하다 우기는 그 아들놈이 익현의 손에 잡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익현은 훌쩍 오판의 뒤로 이동해 녀석의 어깨 위로 고교생들을 맹렬히 노려보며 위협했다. '“꺼져, 보지 마!” '여전히 오판의 중심을 가볍게 잡은 채로 말이다. '“이건 내 거야.”'빨갛게 상기된 뺨이 노여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보지 마, 보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네놈들의 거시기를 뭉개 버릴 테다.”'“어, 이 자식. 이거 안 놔.”'그제야 상황을 인식한 오판이 뒤늦게 화를 낸다. 참, 무디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집중력이 강하다 해야 할까? 아무튼……. '“이게 왜 네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거 놔.”'마구 침을 튀기며 익현의 손을 잡아당기다 뜻대로 되지 않자 손끝으로 마구 꼬집는다. 하지만 그 공격도 녀석의 손을 떼어내기는 역부족이다. 오판은 시뻘게진 얼굴로 녀석의 팔마저 마구 꼬집었다. '“당장 손 안 떼. 내 우람한 아들놈 놔, 안 놔? 얼른 놔, 인마.”'익현의 손에 가려 터래기 하나도 보이지 않건만, 그 와중에도 ‘우람한’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 참으로 오판답다. 뭐 터래기가 나기나 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지금은 따지지 말자. 설령 오판의 ‘우람한’ 아들놈에 터래기가 났다하더라도 차익현, 우리의 집념의 사나이가 타인에게 그 모양을 보여줄 리 만무하니 말이다. '“야, 야 쟤들 뭐하냐?”'“글쎄.”'“이게 무슨 생쇼도 아니고.”'껄렁 3인방, 노골적으로 황당해한다. 무심결에 뒤로 두어 발씩 물러난 걸로 보아 두 녀석의 모습이 상당히 엽기적이었나 보다. 하긴 왜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눈에는 영락없는 계집애로 보이는 녀석이 사내들 앞에서 바지를 훌렁 내리질 않나. 남자애는 뒤에서 그 여자애의 중심을 덥석 잡질 않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봤다면, 뻘건 대낮에 이게 무슨 상스런 짓이냐고 뒷머리를 부여잡고 벌렁 나자빠질 일이다. '하지만 정작 그 민망하고 상스러운 생쇼의 당사자들은 주위의 시선에 전혀 아랑곳없이 너무도 진지하게 놔라, 못 놓는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더니, 결국 익현이 오판을 번쩍 들어 곧추 안고 골목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껄렁 3인방은 ‘저런 미친 것들을 봤나.’ 하는 표정으로 멀어지는 녀석들을 바라볼 뿐 굳이 쫓아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래 배우자의 은밀한 부위를 타인이 볼까, 마음이 급했던 익현이 바지를 내린 오판의 허벅지를 정면으로 번쩍 안았고, 그로 인해 익현의 얼굴이 정통으로 오판의 다리 사이에 박혔었다는 점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또한 열 받은 오판이 골목이 떠나가라 고래고함을 지르고, 짧디 짧은 익현의 머리카락을 죄다 뽑을 듯 쥐어뜯었음에도 익현의 얼굴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도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부자유한 손을 대신해 얼굴로라도 사랑해마지않는 미래 배우자의 은밀한 부위를 지키고자 한 익현의 노고에 그저 기립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짝짝짝……. '그대는 집념의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