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엠 맴엠 매에엠.'매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간 소녀가 기다란 채집채를 들고 커다란 나무둥치에 앉아 있는 매미를 덮쳤다. '“잡았다.”'새치름히 눈초리를 접으며 웃던 소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나 또 잡았다.”'“와! 나리 또 잡았다.”'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몰려들어 나리의 채집 바구니 안에 든 여러 종류의 곤충들을 구경했다. 고추잠자리와 호랑나비, 거기에 매미까지, 종류도 갖가지에 크기도 제법 큼직했다. 아이들에게 곤충들을 보여 주던 나리는 동네 곳곳에 퍼져 나는 구수한 음식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아, 저녁 시간이다. 오늘도 늦으면 할머니한테 혼나는데.”'땀이 나도록 온 들판을 휘젓고 다니던 나리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난 뒤에 동네가 시작되는 부근의 2층집으로 향했다. 재빠르게 잡아들이던 때와는 달리, 바구니 안의 곤충들이 다칠세라 제법 조심스런 발걸음이었다. '“내일까지 절대 죽으면 안 돼. 영훈이한테 보여 주고 꼭 놓아 줄게.”'2년 동안이나 짝꿍을 했던 영훈이 백혈병으로 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리는 곤충을 유난히 좋아해서 생물학자가 꿈인 영훈에게 힘내라는 뜻으로 곤충을 잡아다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나리 집에 가나?”'“네.”'“어여 가서 밥 먹어라.”'“네.”'나리는 밭일을 하시는 동네 아저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발걸음을 조심하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집 앞에 낯익은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외삼촌의 차였다. 나리는 차를 보면서 양 볼을 빵빵하게 불리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외삼촌은 괜찮지만 외숙모는 나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실 때는 몰라도 아이들만 있을 땐 사촌들이 나리를 괴롭혀도 항상 사촌들의 편을 들어 주었다. 두 살 많은 사촌 오빠 동영과 동갑내기 사촌 동희는 정말 얄미운 존재였다. 동영이야 잘난 척을 하긴 해도 점잖은 편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아역 탤런트로 텔레비전에 나오기 시작하는 동희는 심한 공주병을 앓고 있었다. 동희는 집안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야만 직성에 풀리는 성격을 지녔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외손녀인 나리를 예뻐하는 걸 대놓고 질투해서 나리의 물건을 버리거나 숨기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외삼촌네 가족들이 집에 올 때면 나리는 항상 일부러 밖에서 더 오래 놀다가 들어가곤 했다. '이상훈 내과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리는 이번에도 발걸음을 돌려서 좀 더 곤충 채집을 하기로 했다. 터벅터벅 오던 길을 되돌아가던 나리는 얼마 전에 새로 지어진 산장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작년에 산 중턱에 있던 오두막을 헐고 지어진 집은 동화책에 나올 것처럼 예뻤다. 가끔 사람들이 머물곤 하는데 요즘은 비어 있어서 동네 아이들과 종종 그곳 마당에 앉아 놀곤 했다. 큰길로 가지 않고 지름길로 가던 나리는 헉헉거리면서 산길을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아야.”'무릎이 쓸려 까진 곳에서 피가 났지만 아픔을 꾹 참은 채 채집통을 들고 산장에 도착했다. 집 앞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앉은 나리는 무릎을 접어 올리고 다친 상처를 살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넘어질 때 떨어뜨렸던 채집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았다. 곤충들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얼른 바구니를 열고 날려 주려 했지만 이미 다들 움직임을 멈춘 채였다. 무릎도 아프고 곤충들은 다 죽어 가고, 평소 잘 울지 않는 나리인데도 오늘따라 울음이 북받쳤다. '“흑흑. 어어엉, 할머니. 어엉.”'다른 아이들은 울면서 엄마를 불렀지만 나리에겐 엄마보다 할머니가 먼저였다. 고개를 숙인 채 서럽게 울고 있는데 나리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자 하얗고 곱상한 얼굴의 중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얼굴은 비슷하지만 안경을 쓰고 덩치가 좀 더 큰 남학생 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둘 중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이 말을 걸었다.'“꼬마, 왜 우냐?”'“흑흑.”'나리가 울음을 그치지 않은 채 흐느끼고 있는데, 안경을 낀 남학생이 손수건을 꺼내 들곤 눈물과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 주었다. 안경 속에 가려진 암갈색 눈동자가 나리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곱상한 남학생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물었다.'“나는 은찬휘이고 이 안경 쓴 녀석은 은찬란인데, 꼬마 이름은 뭐야?”'“나리요.”'“성이 나고 이름이 리야?”'“아니요, 빈나리요.”'“빈나리?”'“예.”'“하하하. 부모님이 빛나라고 그렇게 지어 주신 거니? 너네 부모님도 우리 아버지만큼 특이하시구나. 하하하하.”'찬휘는 교양과 위엄을 갖춘 왕자님의 이미지를 확 깰 정도로 경박하고도 크게 웃었다.'“빈나라는 우리 오빠 이름이고요, 저는 빈나리예요. 그리고 울 외할아버지가 지어 주셨어요.”'“하하하. 귀여워.”'찬휘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다가 나리의 머리를 흩뜨려 놓았다. '“아, 녀석 참 귀엽네.”'“그만 웃어, 싫어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