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의사가 종이를 내밀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지만 준수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반쯤 감긴 그녀의 눈초리에 달린 눈물 한 방울이 계속 마음에 차오르고 있었다. '다행이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자해를 한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던 그녀는 일반 병동이 아닌 정신병동으로 병실을 옮기게 되었다. 목의 상처가 어느 정도 호전이 되던 어느 날 그녀는 간호사 몰래 빼돌린 눈썹 칼로 손목을 그어버렸다. 이번엔 좀 더 일찍 발견했고 출혈도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울퉁불퉁한 칼로 그은 손목에는 보기 흉한 흉터가 생겨버렸다. 병실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은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준수는 의자를 당겨 그녀 가까이에 앉았다. 사람이 들어와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무슨 말을 물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죽은 사람 같았다. '“예나야.”'“…….”'“널 어찌해야 할까? 그냥 죽게 놔둘까? 아니면 또 살려낼까?”'“…….”'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곱던 얼굴은 까칠하게 변했고 눈동자에 반짝거림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숨만 쉬고 있을 뿐 그녀는 예나의 껍질을 쓰고 있는 송장처럼 보였다. 준수는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꽉 감았다. 이러려고 그녀를 빼내온 것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을 보자고 강도휘에게서 빼앗아온 것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뱃속을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아팠다. '“강도휘……곁에서 살고 싶니?”'“…….”'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목구멍으로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강도휘가 살아 있다면……너도 살 거야?”'“…….”'벽에 기댄 그녀의 머리가 움찔 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그녀에게 눈을 고정한 준수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그가 살아 있다면 너도 살 거지?”'예나가 입을 벌렸지만 지난번에 다친 목의 상처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커진 눈이, 반쯤 일으킨 몸이 그녀의 대답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준수는 건조한 눈으로 신음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퇴원하자.”'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준수는 예나와 함께 차에 올랐다. 서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면서 준수는 한마디 없이 운전만 했다. 예나 역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차창만 보고 있었다. 대여섯 시간을 달린 차는 산속에 있는 요양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