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과방에라도 들어가야 하나?”'학교 내 벤치에 주저앉아 우유를 마시며 유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사흘째 집을 구하러 돌아다녔지만 죄다 허탕이었다. 대학가 일대가 재개발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몇 달 사이 집값이 엄청나게 올라 현재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반지하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며 이것저것 고려해서 지금보다 더 먼 곳으로 방을 구할 수도 없었다. '가난한 학생에게 전세금과 등록금이 오르는 일만큼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이번 학기만 월세를 내며 지내볼까 싶지만 당장 한 달에 30만원이 넘는 월세를 내가며 지낼 자신이 없었다. 이럴 때 손을 벌릴 수 있는 부모님이라도 있으면 좀 나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결국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제 자식을 버릴 정도로 매정한 부모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 한들 도움을 줄까 싶었던 것이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라고 이해를 하며 살아왔지만 이렇게 세상에서마저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을 느낄 때면 그런 부모라도 조금쯤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아자! 기운 내자, 민유이! 죽더라도 집은 찾고 죽어야지!”'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 먹은 우유 곽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우유곽이 쓰레기통 모서리에 맞고 튕겨나갔다. '“아깝다. 들어갈 수 있었는데.”'유이가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리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 거리에서도 못 넣으면 어쩌자는 거야?”'“거의 들어갔거든?”'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 다시 가볍게 던지자 이번에는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제야 유이가 개운하다는 듯 손을 탁탁 털었다. '“얼굴 보기 힘든 민유이가 이 시간에 왜 학교에 있어?”'“누가 할 소릴? 너야말로 여기 왜 있어? 아직 개강하려면 멀었는데?”'“설마 개강 날짜도 모를까 봐?”'준석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픽 웃었다. '“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학교에서 네 얼굴 본 게 언제 적인지 기억도 잘 안 나거든.”'“음, 부정할 수 없군.”'준석이 피식 웃으며 동감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학교엔 온 거야?”'유이가 정문 쪽으로 걸어가자 준석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따라붙었다. '“너 방 구하고 있다며?”'준석이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알았어?”'유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바쁜 녀석이 이 얘긴 또 어디서 들었나 싶었다. '“다 아는 수가 있지. 갑자기 방은 왜 구하는 거야? 너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잖아?”'지난 번 집으로 이사할 때 이삿짐 나르는 걸 도와줬던 게 준석이었다. '“그렇게 됐어.”'“왜? 주인아줌마가 못살게 굴어?”'“그런 거 아냐.”'“그럼 뭐가 문제야?”'준석이 툭 내던진 질문에 유이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전세금을 올려 달라잖아.”'“얼마나?”'“천만 원.”'유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올려주면 되잖아?”'준석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 정도까지 올려줄 여유 없어.”'“너 그렇게 알바 뛴 돈 다 어쨌냐?”'“이번 학기 등록금 냈다, 왜?”'다시 생각해도 속이 쓰렸다. '“등록금? 네가 장학금을 놓쳤단 말이야?”'학교 다니는 내내 장학금에 거의 목숨 걸다시피 하며 살았던 유이를 아는지라 준석이 정말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됐어.”'“민유이가 장학금 안 받으면 대체 누가 받는단 거야? 어디서 까였어?”'“심리학개론.”'“그 노인네 꼬장꼬장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파 죽어가면서도 시험 치러 온 그 정성이 갸륵해서 나라면 A+주겠다. 그러게 왜 넌 그런 과목을 들어? 점수 짜기로 유명한 과목인 거 알았으면 다른 걸로 했어야지.”'“나라고 듣고 싶어서 들은 거 아니거든? 시간표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거란 말이야.”'점수 짜게 주기로 유명한 교수님 수업을 일부러 듣는 학생이 대체 어디 있다고. '“그래서, 집은 구했어?”'준석이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구했으면 내가 이 시간에 이러고 있겠어? 며칠째 허탕이야. 아줌마는 당장 어쩔 거냐고 난리고, 들어갈 집은 없고. 로또라도 사야 하나.”'“로또는 사서 뭐하게?”'“하늘에서 돈 좀 뚝 떨어지라고 빌어보게. 혹시 알아? 그냥 샀는데 진짜 당첨될지.”'“민유이 입에서 로또 산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진짜 급하긴 급하구나. 얼굴은 그게 뭐냐. 쯧. 밥도 안 먹고 다녀?”'“좀 전에 우유 마셨어.”'“가자.”'“어딜?”'“밥 먹으러.”'“지금 그럴 시간 없어. 알바 가기 전까지 좀 더 알아봐야 돼.”'“여태 안 구해진 게 지금 당장 구해지겠냐. 일단 뭐라도 좀 먹고 생각하자고.”'준석의 손에 이끌려 식당에 들어간 유이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준석이 유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내가 돈 안 들고 이번 학기 지낼 수 있는 방법 알려줄까?”'“말도 안 되는 소리할 거면 지금 스톱하자. 나 네 장난에 손발 맞춰줄 기운 없어.”'“방도 넓고 웬만한 건 다 있어서 그냥 몸만 들어가면 돼. 사생활 터치 일절 없고, 밥도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고. 물론 네가 챙겨 먹어야 하지만 기본 반찬은 다 냉장고에 있으니까 꺼내서 먹기만 하면 돼.”'“그런 데가 어디 있어?”'“있어.”'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당장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가 어딘데?”'준석이 워낙에 자신만만하게 말했던지라 유이 역시 그 페이스에 말려 물었다. '“내 방.”'“뭐? 야, 네 방 나주면 넌 길바닥에 나앉을래?”'유이가 반쯤 앞으로 끌어당긴 몸을 의자에 기대며 허탈한 얼굴로 대꾸했다. '“나 내일 아침 비행기로 여기 뜬다.”'준석이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뜬다고? 어디로?”'“일단은 아프리카로 갈 생각이야.”'“아프리카?”'유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얘가 지금 비행기 타고 열일곱 시간을 넘게 날아가야 하는 그 아프리카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프리카 횡단하는 게 내 꿈 중에 하나거든.”'준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학교는?”'“방금 휴학계 내고 왔지. 그것 때문에 학교 온 거야.”'“너 졸업할 생각 있긴 한 거야?”'“어떻게든 되겠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어때, 생각 있어?”'“너 하숙집 산다고 했잖아? 근데 뭐가 공짜야?”'“거기가 일 년 치 계약금을 미리 내고 사는 데라서 어차피 유월까지는 돈 안 내도 돼. 일 년 계약이라 남은 돈 돌려받지도 못하고.” '“거기, 아무나 들어가서 살아도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