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어휴. 졸려.”'해진이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했다. 아침만 해도 차분했을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서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 반짝거렸을 눈동자 또한 피곤에 지쳐 풀려 있었다.'해진은 안 되겠다 싶어 운전대를 움켜잡은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천근만근 내려앉는 눈꺼풀은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석의 N극과 S극이 붙듯 내려앉고 있었다.'도저히 잠이 깨지 않자 해진은 슬슬 치미는 부아를 삼키며 눈을 연속적으로 비볐다. 다름 아닌 막히는 도로 때문이었다. 해진은 집과 가장 근접한 길이 막혀 다른 길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곳도 마찬가지로 도로가 정체가 되니 어찌 짜증이 나지 않을까. '그나마 해진은 내일은 쉰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끔뻑거리는 눈으로 좌우를 살폈다. 계속 직진하다 보니 생각지 않게 황현민 부장이 사는 곳까지 왔다. 저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만 하면 바로 그가 사는 곳이었다. 그와 결혼한 친구 유림도 보고 싶고 해서 교통체증을 핑계로 집에라도 찾아가볼까 하던 그녀의 눈이 계기판에서 멈췄다. '‘다음에 가지 뭐.’'이미 시간은 밤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남의 집을 방문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해진은 조금 전보다 한산해진 도로를 보며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금세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뀌는 바람에 속력을 줄여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좌측코너에서 유난히 밝은 불빛이 쏟아지듯 비쳤고, 눈이 부셨는지 잔뜩 눈꺼풀을 찌푸리던 해진의 눈이 대번에 휘둥그레졌다. '“저게 뭐야?”'언젠가 황현민 부장의 집을 방문했을 때 들려본 적이 있는 슈퍼마켓이었다. 낮이 아닌 밤이라 다르게 보이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피곤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슈퍼의 의도가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사람을 끌기 위함이라면 성공한 셈이었다. 해진의 시선도 단번에 끌었으니까.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그녀의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환한 불빛으로 인해 유리 너머의 사람들의 행동과 얼굴에 나타난 표정까지 훤하게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 하나같이 들뜨고 설렌 것처럼 보였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기껏해야 슈퍼마켓에 혼자 온 사람들이 뭐가 좋아 저리 방긋거리는지 해진으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간판을 보고서야 알겠다는 듯 씩 웃었다. '‘해피 슈퍼마켓이라…. 어쩐지.’'그래서 사람들이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나 보다. 그러던 와중에 신호가 바뀌었고, 해진은 간판에 이끌리듯 코너에 있는 슈퍼마켓을 향해 유턴을 했다. 주차장을 향해 운전하는 해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마도 사람들의 행복이 유리 너머 그녀에게까지 전해진 듯했다. '해진은 늦은 시간인데도 주차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차들 사이로 능숙하게 운전해 차를 멈춰 세웠다. 시동을 끄는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새로 구입해야 할 생필품 목록으로 가득 차있었다. 자주 밥을 해 먹진 않지만 일주일가량 슈퍼를 가지 않았더니 마실 물조차 없는 상태였다. 오죽하면 오늘 아침엔 수돗물을 다 마셨겠는가.'그녀가 차에서 내려 백을 챙긴 뒤 슈퍼마켓을 향해 걸었다. 입구부터 형형색색의 불빛이 그녀를 먼저 맞이해주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과 함께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언뜻 보아 여자보다 남자가, 그것도 젊은 층이 많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