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왔군.”'해유는 언제부터인지 늘 그의 집 앞에서 얼쩡거리는 땅꼬마를 관찰하는 하는 것으로 아침을 맞았다. 얼마 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집으로 돌아온 해유는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피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새벽부터 땅꼬마가 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가는 것이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해서 지나쳤던 것이 이젠 매일 땅꼬마를 관찰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꼬마가 가고 나면 어김없이 집 앞엔 ‘이상한 물건’이 있었다.'‘오늘은 대체 뭐가 있을 런지……. 쯧.’'해유는 어슬렁거리며 밖에 나가 물건을 들고 들어왔다. 마침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나오던 이 집안 실세인 최 여사는 아들이 들고 온 물건을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우아함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그녀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도 왔니? 오늘은 뭐니?”'“글쎄요…….” '해유는 말끝을 흐리며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물건을 풀었다. '“어머나…… 세상에 도시락이네. 어쩜 이렇게 색깔배열이 멋지니. 어디 맛 좀 보자.”'살짝 맛을 본 최 여사는 그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너무 맛있다. 어쩜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대체 누구지? 정말 해희한테 이렇게나 갸륵한 순정을 바치는 남자가 있을 줄 몰랐네. 이 시대의 마지막 순정남이지 않겠니? 이런 남자가 해희에게 온다면 정말 좋을 텐데 말이야. 아무것도 안보고 그저 데릴사위로 얼씨구나하고 업어서라도 데려올 텐데. 우리 희야가 게으른 만큼 남자가 부지런해야 하잖아. 정말 이런 데릴사위라면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 할 텐데……, 해희는 아직 자지?”'“네 그런데 이거 정말 남자가 했을까요? 밑에 달린 거 확인하고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 마녀가 부실한 남자는 또 경멸하잖아요.”'해유는 어머니 눈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들의 상스런 말에 한마디라도 할 법도 한데 그녀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긴 희야 고게 날 닮아서 조금 밝히긴 하지. 그래도 이런 사위라면 살짝 포기해도 되지 않겠니?”'마침 해희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하품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아함…… 뭐니 오늘은? 어머 도시락이네. 예쁘게 쌌다. 맛은 어때?”'“먹어봐.”'“음…… 굉장하네. 우리 최 여사가 하는 것보다 훨씬 맛있네. 매일 이런 맛난 도시락이나 주고 갔으면 좋겠다. 이상한 화분이나 책 말고, 읽지도 않는 책을 가지고 오면 정말 짜증난다고. 그런데 정말 맛있네.”'뻔뻔한 작태에 남자 갈아 치우는데 도사고, 성격도 지랄 맞은 그녀는 이 집안의 장녀이자 애물단지였다. 일명 마녀. 그는 어릴 때부터 그의 누이를 마녀라 칭했다. 정말 누가 지은 별명인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오늘까지 몇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렇게 선물이 배달된다고 하니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정말 지극정성이 따로 없었다. 아마 조선시대의 아낙으로 태어났다면 임금께서 상이라도 내렸을 것이다.'“마녀, 정말 누군지 몰라? 웬만하면 누군지 기억하는 척이라도 할 수 없어? 고마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 그러니까 니가 마녀일 수밖에 없는 거야.”'“글쎄…… 정말 몰라. 내가 만난 인간들은 하나같이 지 잘난 것들인데 이런 예쁜 짓을 하겠니?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마녀란 말 무지 좋아 한단다. 동생아.”'“아…… 정말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나저나 저거 신경 쓰인다고.”'“니가 왜에. 별꼴이야 정말.”'괜히 귀여운 척 말끝을 흐리는 마녀의 모습에 역겨워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작은 스토커 같은 녀석 때문에 마녀의 존재는 그의 머릿속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해유는 정말 그 스토커가 신경 쓰였다. 분명 남자일 것이 확실한데 자꾸 눈에 거슬렸다. 해유의 가슴 저 밑바닥부터 솟아나는 악마적인 심술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입술을 비틀며 해유는 조만간 그 스토커 같은 땅꼬마 자식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해유 그가 괜히 마녀의 동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뭐 그 꼬마를 잡고 나면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가라앉겠지.’''“헤헤…… 오늘도 해희님한테 갔다 왔다. 가서 일기 써야지. 도시락이 입에 맞아야 하는데…….”'한산한 아침 골목길을 걷던 작은 인영이 중얼거리며 웃고 있었다. 출근길을 재촉하던 사람들도 그 음산한 분위기를 뿜으며 걷고 있는 작은 인영을 의심스런 눈길로 쳐다봤다. 덥수룩한 짙은 갈색머리가 어깨까지 흩어지고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뿔테 안경은 마음의 창이라고 불리는 눈을 모조리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옷은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르는 큰 옷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할 정도 답답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인영은 실없이 실실거리며 가볍게 길을 걸었다.'“다녀왔습니다.”'“은석아, 아침부터 어디 다녀 오는 길이니? 혹시, 오늘도 갔다 왔니? 그렇게 좋으니?”'은석은 안방 문을 열며 우아하게 걸어 나오시는 그녀의 아름다운 엄마를 바라보며 샐쭉 웃었다. '“응 엄마 오늘도 해희님 집에 갔다 왔어 너무 좋아…… 해희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그 분은 나의 수호천사님이야.”'“그래, 언젠가는 제대로 볼 날이 오지 않겠니?”'“응. 그럴 거야! 어휴…… 내가 엄마를 닮았다면 당당하게 해희님을 보러 갈 텐데…… 이렇게 생긴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어.”'은석은 툴툴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딸의 뒷모습을 보며 윤 여사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딸아이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너무 과한 것도 좋지 않다고 하더니, 그것이 은석이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너무나 빼어난 외모가 오히려 딸아이에게 해가 되었다. 같은 또래 아이들에게 딸의 외모는 시기의 대상이요,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였지만 정작 딸아이는 그 어떤 것보다 원했던 친구는 사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따돌림은 은석이를 학교에서 내몰리는 결과를 초래 했다. 세상과의 단절. 그때 이후 은석은 현실과 한참 먼 곳에 서 있어야만 했다. 특히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부모조차도 고쳐 줄 수 없었다. 누구보다 딸아이가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그녀로서는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언제쯤이면 딸이 깨달을까……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어서 빨리 딸아이의 나쁜 마법을 풀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길 그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아가, 너를 아름답게 피워 줄 왕자님이 곧 나타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