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매 중 둘째로 살아가는 건 엿 같은 일이다.'첫째는 첫 번째 얻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막내는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사랑을 듬뿍 받는다. 세 자매 사이에 끼어 홀로 남자인 셋째 또한 성별부터 축복을 받았다.'하지만 둘째는 아무리 기웃거려도 사랑을 받을 만한 틈바구니를 찾을 수가 없다. 뭘 해도 천덕꾸러기 신세다.'첫째인 32살 시연 언니는 똑 부러진 아이였다.'어릴 적부터 자기 할 일을 잘 찾아서 하고, 동생들도 잘 챙겼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유치원 선생을 시작하더니, 치아 교정 때문에 다니던 치과의 의사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부모님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좋은 집안,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둘째 아이까지 임신한 시연 언니는 집안의 복덩어리. 부모님은 어디에만 나가면 시연 언니와 사위 칭찬으로 입술이 닳을 정도였다.'셋째인 27살 싸가지 남동생 시혁은 훤칠하니 인물도 좋은데다가 머리가 오라지게 잘 굴러가는 놈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받아오고, 친구도 많았다. 게다가 줄을 잘 서는 놈이라서, 시연 언니에게는 사근사근 착한 남동생, 막내 시아에게는 듬직한 오빠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하지만 둘째인 시원에게는 달랐다.'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정중하게 대하지만, 둘만 있을 때는,'“두 살 차이는 그냥 맞먹어도 돼.”'라며 이름을 찍찍 불러대기, 발로 등을 툭툭 쳐서 이것저것 시켜대기, 가끔씩 몰래 지갑을 털어가기는 일상다반사.'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급속도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 때 C컵을 넘어선 시원에게,'“여자가 가슴 크면 멍청해 보여. 너, 따먹히기지 않게 조심해라.”'라는 충고를 지극히 싸가지 없는 표정으로 지껄인 것도 시혁이었다.'24살 막내인 시아는 애교가 철철 넘쳤다.'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공부도 못해서 삼수 만에 지방 대학에 간신히 합격. 그나마 들어간 대학에서도 성적 유지를 못해서 재수강은 기본이거니와, 저번 학기에는 학사 경고까지 받았다.'그래도 부모님은 시아의 콧소리 한 번이면 허허 웃으며 “오냐, 오냐.”를 연발해댔고, 시혁은 “우리 막내 공주님”이라며 시아를 예뻐해 주었다.'그런 형제들 사이에서 둘째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던가.'첫째 시연처럼 열심히 공부를 했더니,'“그래, 네 언니도 너네 챙겨 주면서 그렇게 공부를 잘했는데. 하는 거 없는 너도 그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이 돌아왔고, 셋째 시혁처럼 남자가 될 수는 없으니 셋째는 패스. 막내처럼 애교를 부렸더니 다들 오만상을 찌푸리며,'“애가 뭐 잘못 먹었나?”'하는 소리만 들었다.'시원은 일찌감치 세상 사는 법을 깨달았다.'‘그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거야.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아. 두고 봐. 아무도 안 도와줘도 멋지게 성공할 거야.’''' + + +'''“1팀 하시원 씨 있잖아. 저번에 대리님이 가슴 수술한 거냐고 물어봤었대.”'“아, 진짜? 뭐라고 했대?”'“수술 아니라고 했대.”'“에이, 그거 너무 뻥이다.”'“그치?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큰 가슴이 나올 리가 없잖아. 한국인 체형이 아닌데, 뭐.”'“맞아. 완전 뚱뚱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몸은 날씬한데 가슴 크면, 그건 말 다한 거지, 뭐.”'“좀 징그럽지 않아?”'“한 C컵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그 정도는 좀… 하시원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거지. 티 안 나게 적당히 수술하지, 왜 그렇게 크게 했지? 누가 봐도 수술한 티가 확 나는데?”'“멍청해서 그랬겠지. 딱 봐도 머리 나빠 보이잖아.”'“아하하. 도대체 우리 회사에는 어떻게 입사했나 몰라.”'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바지를 올리려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들었다는 걸 들킬까 봐, 바지도 채 못 올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숨을 삼켰다.'시원은 바지를 잡은 자세 그대로 자기 가슴을 내려다봤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커지기 시작한 가슴은 자꾸, 자꾸 부풀어 이제는 E컵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었다.'수술했냐는 질문을 받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사회에서까지 뒤에서 수군거리는 무리가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게다가 머리 나빠 보인다는, 가슴 큰 여자들을 싸잡아서 중상하는 말까지.'이런 말을 들었다는 걸 알면, 시혁은 킬킬 웃으며,'“사실이 그렇잖아.”'라고 할 게 틀림없었다.'‘이놈의 가슴이 문제야, 정말!’'가슴 축소 수술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대학교 3학년 때쯤에는 의심만 받는 것도 너무 서러워서 수술을 해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수술 부작용이 걱정이 돼서 그만뒀다.'‘진짜로 축소 수술을 해야 하나?’'잠시 덮어 뒀던 생각이 밀려나왔다.'오해도 많이 받고, 성추행도 많이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