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끌려갔다. 말 그대로 질질, 가기 싫어 걸음을 멈추고 안 움직여 보기도 하고 엉뚱한 걸로 화제를 돌려 다른 곳으로 생각이 옮겨가도록 유도도 해보고 우는 척 불쌍하게 보이려고도 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저씨는 나한테 속아 주는 척 하더니 어느새 나를 치과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정말 싫은 간판이 보이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나 진짜 무서운데, 사랑니를 뽑는 것도 무섭고……. 아프잖아요. 아시잖아요.”'“안 뽑으면 더 아파요. 내가 손 꽉 잡아 주고 집에 갈 땐 업고 갈게. 가서 죽도 만들어 주고 약도 잘 챙겨 주고.”'결국 나는 치과의사 앞에서 입을 벌렸다. 마취주사를 맞고 마취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아저씨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생글생글 웃었다.'“신나세요?”'“응.”'“대체, 뭐가요?”'욱했다. 아픔을 코앞에 둔 나를 보고 신난다고 답하다니.'“뽑아내고 아물었을 때의 그 기쁨. 넌, 몰라?”'“그런 거 몰라요. 다신 사랑니가 나지 않기만을 원해서.”'“또 날 수도 있어.”'“지금 악담해요?”'발음이 점점 새고 있었다. 한쪽에 마취가 되는 느낌이 들자 혀의 반쪽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무서워하면 더 무서워지는 법이야.”'“그게 무슨 말이에요?”'“무서워하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고.”'뭔가 그럴 듯했지만 이해되지는 않았다. 난 굉장히 큰일을 앞둔 사람이 아닌가. 옆에서 진료 받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치과에 울렸다. 나도 울어 버리고 싶었다. '“또 나면 또 뽑으러 올 때, 내가 여기서 손잡아 줄게. 그럼 하나도 안 아플걸?”'“손은 손이고 아픈 건 아픈 거예요.”'“그럼 나, 나가 있을까?”'“그래 주세요. 나도 따라 나가게.”'“그건 안 되고.”'“뭐가 그렇게 좋아요?”'“다.”'“다, 뭐요!”'“내가, 여기, 이 자리에서, 네 손을, 잡아 줄 수 있다는 것이.”'“피.”'이유 한 번 간단하시기도 하다. 아까부터 입이 너무 헤벌쭉 벌어져 있어서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내가 아픈 것이 기쁜 것처럼. '“그만 웃어요.”'“싫어.”'심지어 이젠 나를 놀리기까지 한다. 저린 볼을 붙들고 사랑니 발치 거부 의사나 밝혀 볼까, 생각하는데 의사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자, 누워 보세요.”'눈을 감고 젖혀지는 의자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잡힌 손을 더 꼭 쥐었다.'“찌르는 거 느껴져요?”'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금방 끝나요.”'거짓말 같은 의사의 말을 속으로 읊었다. 금방 끝날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누르는 느낌 납니다.”'내 얼굴은 보기 좋지 않을 것이다. 온갖 주름이 모두 패여 있을 테니. 이럴 땐 얼굴에 덮어주는 이 초록색 헝겊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치익, 치익 소리가 나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귀로 흘러들 때마다 가슴이 요동쳤다. 그러다 잡은 손이 빠져 나가고 내 손이 펴졌다. 손바닥에 글씨가 써지기 시작했다. '자 이 곳 에 집 중 해.'저절로 움찔거리는 손을 따뜻하게 감싸 주고는 다시 한 번 같은 글씨가 쓰인다. 마취를 해 느낌이 없는, 한창 집중이 될 그곳이 아니라 알아차리지 못한 손 글씨에 온 신경이 몰렸다. 놀랍도록 나는 손바닥만 집중했다. '선 물 이 야.'아저씨는 같은 글씨를 두 번씩 적었다. 혹, 알아듣지 못할까 봐.'두 번째 문장이 끝나자 내 손은 뒤집혔고 네 번째 손가락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