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느는 마을 끝에 서서 황무지 너머로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자리한 키 작은 풀들이 점차 사라지고 그 뒤로 붉은 모래밭이 아스라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죽음의 땅, 탄탄 사막이다. 사막엔 아직 한 발도 내딛지 않았는데, 날은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삐이익!'하늘에 떠 있던 매 한 마리가 공중을 크게 선회해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매는 불안한지 부리를 달싹거렸다. 앤느는 손을 들어 매의 깃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괜찮아, 나트. 괜찮을 거야.’'“저길 건너가려고?”'등 뒤에서 잔뜩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앤느는 고개를 돌려 흙벽으로 지은 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파를 보았다. '“아서. 처자가 가기엔 너무 험한 길이야. 목숨을 걸어야 할걸?”'노파는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로 이가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겔겔 웃었다.'“사막이 왜 무서운지 알아? 아무것도 남겨 두질 않기 때문이야. 사람도 길도 그대로 남겨 두는 법이 없거든.”'앤느는 노파 앞으로 걸어가 몸을 낮추고 앉았다. 노파는 그녀가 쓰고 있는 두건 안쪽을 들여다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노파의 눈이 이내 커졌다.'앤느가 매와 함께 마을 어귀에 나타났을 때부터 노파는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두툼한 망토를 둘러 몸매를 감추고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투박한 망토 아래로 여실히 드러나는 실루엣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내라면 충분히 알아채리라.'“그래도 갈 거라면, 마적 떼를 조심해.”'노파는 손을 내밀어 두건 아래로 살짝 빠져나온 앤느의 머리카락을 안으로 집어 넣었다.'“아가씨 머리카락 하나라도 그놈들 눈에 띄었다간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거야. 특히나 아칸 패거리는 절대 만나선 안 돼. 그놈들은 여자들을 가만 두지 않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앤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노파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혀를 찼다. '“아가씨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노파가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앤느는 남루한 마을을 돌아보았다. 사막을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자리한 마을이었다. 생명과 같은 물을 구할 곳도 이곳뿐이었다. '그녀처럼 사막이 처음인 여행자들은 북쪽에서 내려온 상단이 출발하길 기다리며 한쪽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정식으로 아틴 왕국의 국경을 통과할 만한 형편이 안 되는 도망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검문을 피해 북쪽으로 올라와 목숨을 걸고 산을 넘었다. '앤느 역시 지난해 겨울 산을 넘어 이 마을로 왔다. 여자 혼자서 하는 여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험한 길을,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 시간이 배는 더 걸렸다. 그녀가 산에서 마주칠까 봐 두려웠던 건 짐승이 아니라 바로 사내들이었다.'“목숨을 걸어야 할걸?”'노파의 말이 떠올라 그녀는 두건 아래로 자조하듯 웃었다. 목숨이라면 이미 걸었다. 아니, 그 외 가진 것은 모두.'여기까지 오는 데 5년이 걸렸다. 꿈에서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앤느는 고개를 들어 사막을 쳐다보았다. 사막 저 너머에 삼하르, ‘여섯 부족의 나라’가 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 가야 했다. 그러니 마적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 있다고 해도 사막을 건너야 했다.''* * *''탄탄 사막의 동쪽,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면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방벽과 만나게 된다. 높이 5미터에 달하는 방벽은 마치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을 가르는 문처럼 굳건하게 서 있었다. '처음 사막의 모래 폭풍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그 벽은 적의 침입을 막는 데도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그 방벽 위, 푸른 전사들로 불리는 라우족의 사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파른 상단이 출발했다고 하는군.”'“누가 제일 먼저 나타날까?”'“아칸 쪽이겠지.”'“그 마적 떼가 아틴 왕국의 국경수비대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진짤까?”'“설마.”'친구의 얘기에 얼굴을 찡그리던 토레스는 한쪽에 홀로 떨어져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그들 중 누구보다 큰 키에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청색 스탄 자락이 감싸고 있었다. '사내의 짧게 자른 검은 머리가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약하게 휘날렸다.'“카르, 뭘 그리 보고 계십니까?”'라우 부족의 족장, 여섯 부족의 대표자, 그들의 왕 사이스는 아까부터 조용히 사막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