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는 이를 악물고 나무에 등을 붙였다. 거칠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를 안으로 삼키기 위해 그는 죽을힘을 쓰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둘 다 야간 투시경이 없는 상황이라면 소리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된다.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는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불어와 갈대숲을 어지럽히며 그의 청각을 교란시켰다. 어디에 있는 걸까? 그가 D를 놓친 것은 이미 꽤 오래전이다.'피융! '소음기에서 새어 나온 낮은 소음을 포착해 낸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늦었다. 그는 어깨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금세 피 맛이 혀끝에 느껴졌다. '역시 D의 방향은 갈대숲 쪽이었다. 그러나 이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안 걸까?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정확한 탄도 방향. 몸을 숙인 그는 기민하게 몸을 움직여 자리를 벗어났다. '나무에 기대앉은 무타는 습관처럼 탄창을 빼 실탄을 확인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자신의 행동에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었다. 실탄은 다섯 발. 두 시간여의 교전 중 발포 횟수는 단 한 번, 처음 불현듯 날아왔던 총알에 대한 반응 사격 한 발뿐이었다. 총성이 들리지 않는 교전은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피로를 심화시키고 있다.'그는 호흡을 조절하고 어깨를 묶어 지혈했다. 기다린다면, D는 자신의 저격 결과를 확인하러 올 것이다. 이 어둠에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기에, 귀를 기울이며 이쪽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가 노릴 수 있는 것은 그때, 단 한순간이다. 그는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참을성의 싸움이 된다면 그는 적어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코드명 D. 그러나 코드명보다는 누군가 부르기 시작한 애칭 ‘Death(죽음)’로 더 자주 회자되는, 아무도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스나이퍼를 사람들은 진부한 단어, 전설로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를 보았노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한때 실존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의심 많은 자들은 그의 존재 자체가 모든 음모를 무위로 돌리기 위한 거짓이라 했고, 냉소적인 자들은 그것이 드라마를 원하는 우매한 자들의 환상이라 했다. 그 정도로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없었다. 그러나 실물을 본 사람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보면, 죽으니까. 그리하여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딱 한 가지. 보면, 죽는다.''땅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차가운 기가 무타의 의식을 앗아 가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의 상처가 무감각해지기 시작한 것을 깨달으며, 그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그때, 3시 방향에서 그는 약한 향기를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 뇌가 채 인식하기도 전에 훈련받은 반사작용에 의해 그는 몸을 일으키며 그 방향으로 한 발을 갈겼다. '타앙!'총성이 어둠을 찢었다. 동시에 무타의 손이 총을 놓쳐 버렸다. 고통에 입술을 깨물던 그는 칼이 관통한 오른손이 놓쳐 버린 총을 찾기 위해 무릎을 꿇으며 왼손을 뻗었다. 상처가 토해 내는 피 냄새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거칠어지는 심장 박동. '1초가 상황을 바꾸어 버리는 지금, 자신이 이미 D보다 한 템포, 아니, 그 이상 늦어 버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총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손이 총에 가 닿는 것보다 뒤통수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 것이 먼저였다. 등 안의 무언가가 부서져 나갔다.'그의 몸이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듯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온 누군가가 침착하게 그가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었다. D! 무타는 움직이고 싶었으나 고개를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파악한 D는 무심하게 그의 어깨를 발로 밀어 그가 똑바로 눕도록 도와주었다. '어두웠기에 우뚝 서 있는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모든 것이 끝난 그 순간에야 무타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향기의 정체를 파악했고, 경악했다. 옅은, 그러나 선명한 향기는 ‘마제스티 에스테반(Majesty esteban).’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애용하는, 그 사람의 증표.'“어, 어째서!”'그의 목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생명이 새어 나가고 있음이리라. 그의 경악에 아랑곳 않고 D는 무감동하게 그가 방금 집어 든 총을 점검하고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금속성의 소리가 숲의 고요와 대비되어 한층 잔인함을 더했다.'“이, 무슨…….” '이번은 말이라기보다 한탄이었다. 아니, 단념이라고 하는 쪽이 옳은 것일까? 혹은, 슬픔? 무타는 어깨의 통증은 물론 찢겨진 손의 통증도 현재 그가 느끼고 있는 마음의 절망보다 덜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고통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남길 말이 있습니까?”'“…….”'무타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D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잠시 무심하게 그를 내려다보던 D는 몸을 굽혀 무타가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얼굴을 확인한 무타의 표정에 읽기 힘든, 말할 수 없이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상처 입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 커헉!”'무타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와 그의 말을 막았다. D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몸을 들썩이며 괴로워하는 무타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을 인간이라 규정하는 어떤 표정도 그에게 떠올라 있지 않았다. 무기질 같은 건조함.'“늦었습니다.” '문득 생각난 듯 D가 대답했다. 괴로워 헐떡이는 무타의 마지막 말을 무표정하게 기다리던 D는 이제 그가 한 마디도 더 하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죽을 자와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총구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무타의 눈빛이 안타깝게 자신을 향한 총구에 가 꽂혔고, D는 무심히 그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