꽥꽥꽥꽥 꽥꽥꽥!'위이이잉 위이이잉.'경박한 오리 자명종이 요란하게 울어 대는 시간 AM 10:30.'들어도, 들어도 절대 적응되지 않는 오리 울음소리도 부족해 오늘은 휴대전화까지 머리맡에서 정신없이 제 몸을 떨어 대자, 사야는 결국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처럼 밤새 지직거렸을 TV와 재생이 끝난 테이프를 토해 내지 못한 채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비디오 전원을 차례로 끈 다음 자명종까지 마저 끄고 휴대전화를 쳐다보니, 발신인은 역시…….'“뭐야아, 송 마담.”'[얘는! 그 마담 소리 좀 그만 못 해? 남들이 들으면 무슨 마담뚜라도 되는 줄 알겠다!]'“마담뚜 맞잖우? 말이 좋아 커플 매니저지 그게 결국 마담뚜 아냐? 하암…….”'[어이구, 입 찢어지겠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대체 서른이나 먹은 기집애가 여태 잠이나 자고 뭐 하는 거니, 그게?]'어쩌면 맑은 날을 싫어하게 된 이유가 다 어머니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아침부터 전화를 해 그녀에게 노처녀네, 어쩌네 잔소리를 늘어놓는 하이 톤 목소리의 어머니.'사야는 익숙한 일이란 듯 전화기를 귀에서 저만치 떼 놓으며 우유라도 마실 참으로 어기적어기적 부엌으로 걸어가는데, 에취! 기침이 터져 나왔다.'[사야, 너 어제도 찬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잤구나!]'“송 마담 참. 말로만 CEO, CEO 하지 말고 교양 있는 어휘 선택 좀 하고 살자, 엉? 널브러져가 뭐니, 널브러져가! 그러니 나한테 만날 마담뚜 소리 듣는 거 아냐.”'[윤사야아!]'“어우, 목소리 쌩쌩한 거 봐. 우리 송 마담은 오래 살 거야, 암.”'어머니의 잔소리를 단숨에 제압해 버린 사야는 승리의 미소를 머금으며 머그컵에 우유를 쪼르르 따라 냈다.'[기침도 하는데 우유는 좀 따뜻하게 데워 먹어, 못된 것아.]'“어머. 엄마 귀신이다, 나 우유 마실 건지 어떻게 알았어?”'[눈에 봐야지만 아는 줄 알어? 잔소리 말고 오늘 점심때 시간 비워, 엄마랑 밥 한 끼 하게. 대체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얼굴 한번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말은 똑바로 하셔야지요. 그게 뭐 나 때문인가? 잘나가는 결혼정보회사 대표이사님께서 일하랴, 연애하랴, 바쁘셔서 그렇지?”'[얘 좀 봐, 얘 좀 봐! 여, 연애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이 나이에 노망났니? 한 번 더 그런 소리 했단 봐, 그냥.]'그녀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는 송 대표의 반응에 사야의 입에서 절로 킥킥 웃음이 새어 나왔다.'“아, 그게 연애가 아니셨어? 그럼 지난달에 같이 제주도 갔다 왔던 그 박 사장님은 뭐고 엊그제 오페라 공연 같이 보러 갔다던 그…… 누구시더라? 김 대표든가, 최 사장이든가?”'[얘! 사야!]'안 봐도 훤히 그려진다. 지금 송 마담의 얼굴이 얼마나 벌겋게 달아올라 있을지.'“아니, 상대가 너무 자주 바뀌시니까, 우리 어머님은. 다 기억해 드리지 못하는 불민한 여식을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소서, 마마. 큭큭큭!”'[그만 못 해? 그건 다 비즈니스차!]'“아하! 비즈니스?”'친구에게 하듯 엄마를 놀려 대면서도 그녀의 염려를 덜어 드리기 위해 머그잔을 전자레인지에 넣던 사야는 송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깜찍한 변명을 똑딱 잘라먹어 버렸다.'“그게 비즈니스였어? 난 저언혀 몰랐네, 그런 건 줄은. 우리 송 마담은 비즈니스도 참 사랑스럽게 해. 짝짓기 회사 사장님이라 그런가?”'[짝짓기라니! 넌 어쩜 작사가라는 애가 그렇게 품격 떨어지는 표현을 쓰니! 어이구, 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 어이구!]'“풉, 킥킥. 알았어, 그만 할게. 어디로…….”'어디로 나가면 되냐 물으려다, 문득 송 마담의 꿍꿍이가 의심스러워졌다. 혹시 또?'“송 마담. 확실히 엄마랑 점심 먹는 거 맞는 거지? 나갔는데 또 엉뚱한 신사 양반 앉아 계시기만 해! 송 마담 망신 확실히 시켜 주고 올 거니까!”'직업 특성상 이 세상의 솔로들은 다 엮어 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인데, 정작 딸이 아직 혼자인 몸이니 얼마나 속이 터질까.'이미 이리저리 속아 몇 번의 맞선을 봐야만 했던 사야는 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 무슨 선 자리를 점심때 잡겠냐는 어머니의 확언에도 쉬이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몇 번이나 협박조로 엄포를 놓은 후에야 약속 장소에 갈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