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뒷골목 어딘가 이었을 것이다. 빨간 벽돌이 울퉁불퉁한 담벼락에는 콘서트와 연극 포스터가 흥청거리며 뒤덮여있었다. 건물 비상구 한 쪽을 차지하고 타인시선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흐느적거리는 남녀는 키스에 정신이 팔려있고, 계단 모서리에 찢어져 너덜대는 청바지도,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타들어 가는 담뱃재의 아슬아슬한 낙하도 눈치 채지 못하고 전화통에 매달려 있다. 한 밤이라서 더욱 활기와 나른함이 공존하는 이곳이 해윤은 지독하게 생경했다. '클럽 화장실에서 우웨웩. 하루 종일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소리에 파우더를 얼굴에 보송하게 쳐대던 여자들은 비위가 상하며 인상을 구겼다. 아울러 변기에 대고 통사정하는 보이지 않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야…… 기집애야, 작작 마시던가, 작작 흔들던가? 아주 발악을 하더니, 고대로 다 뱉어 내냐?”' “웩. 우웩, 아, 나 죽을 것 같아. 엉,엉…… 나쁜 놈, 엉……엉.” '해윤이 힘든지 변기 옆에 털썩 주저앉아서 마스카라가 번지며 만들어 낸, 까만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여기가 중국 길림성이야? 아주 판다 나셨네. 쯧.” '다정이 해윤에게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아 건네주며 질렸다는 표정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흐, 흥…… 흥흥흥…….”' “야, 야, 코 풀다가 눈 튀어 나와. 그만 좀 하고, 집에 가자.”' “아니야. 그 나쁜 놈, 보란 듯이 내가 여기서 그 놈보다 백배는 더 잘난 남자 만날 거야. 진짜 그럴 거야. 다정아.” '비틀비틀 좁은 화장실벽에 등을 밀며 해윤이 일어났다.' “쯧, 그것도 제 정신일 때 만나야지. 완전 광년이 꼴을 해가지고, 끄응, 다 뱉어냈는데 뭐가 이렇게 무거워…….” '다정이 해윤을 업다 시피해서 문 밖으로 끌고 나가자, 화장을 고치던 여자들은 두 사람을 안됐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차였나 보네.”' “그러게, 안됐다. 우리는 차여도 술은 집에서 먹자.”' “그러자. 흉하다. 정말…….”''건조한 시멘트벽에 클럽2X의 네온사인이 허옇게 밝혀져 있었다. 클럽 안은 어두운데다 매캐했고, 꿈틀거리는 젊음의 욕망쯤으로 춤에 빠진 나른한 군상들이 사이키델릭한 조명에 의해 그 형체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자유로움을 방출하는 게 보였다. '고주망태에 인사불성이 된 해윤을 소파에 앉히고, 다정은 계산서를 들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곧 한 무리의 남자들이 해윤의 뒤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들어와 스테이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지혁아, 기왕 스트레스 해소하러 왔으면 구겨진 인상은 좀 풀지?”' “경민아, 지혁이는 원래 이런 클럽 안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너 때문에 억지로 따라온 거잖아. 넌 오늘 콘서트 장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뛰어놓고도 여길 또 오고 싶냐?” '태화는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흔들었고, 경민의 말투는 뺀질뺀질하기만 했다.' “그건 일이었고, 여긴 어디까지나 쉬러 온 거지. 형! 땀 냄새, 향수 냄새, 술 냄새, 이런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향이 스트레스 푸는 데는 최고거든. 태초부터 남자라는 동물한테는 말이야.” ' “됐다. 됐어, 네 나불거리는 입을 누가 막겠냐? 술이나 시켜.”' “오늘 콘서트 죽여줬다. 지혁아.” '태화가 핀잔을 주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경민은 지혁에게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지혁은 관자놀이를 지끈 누르며 단조로운 목소리를 냈다.' “……죽여주랴?”' “아, 친구야, 내 취미생활 이해 좀 해 주라. 어? 그러지 말고 우리 춤이나 추러 나가자.” '탐탁찮아 가늘게 눈을 뜨는 지혁의 손을 경민이 잡아 일으켰다.'해윤은 눈물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얼굴로 훌쩍거리며 쓰린 속에 깨지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다정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검은자위를 가린 눈물 때문인지,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친구가 보이지 않자 핸드백을 챙겨들었다. '그 우연한 한 순간이었다. 스테이지로 끌려 나가던 지혁과 친구를 찾으려고 발딱 일이서는 해윤이 부딪힌 것은. 눈앞에 새까만 별똥별이 까무룩 보이게 정통으로. 그런데 무안하게도 혼자 나동그라진 것은 건장한 지혁이었다. '해윤은 비좁은 클럽 테이블들 사이에 널브러져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저렇게 덩치 큰 남자가 나와 부딪혔다고? 그럴 리가! 아닐 거야. 술기운이 괴력과 무감각을 양성하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지혁은 여자가 자신을 맹하게 바라보다가 어이없게도 무시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열이 치받쳐 벌떡 일어나서 삿대질을 했다. ' “야……!”'해윤은 뒤통수가 따갑게 저를 부르는 소리에 술에 취하긴 했어도 부스스 돌아섰다. 자신을 향한 그의 길고, 마디 없는 손가락이 보였다. 그에 배싯 웃으며 ET와 우주의 교신을 하듯 검지를 가져다 맞추어 주었다. '여자의 어이없는 접속에 지혁은 순간 멍해졌다. 너는 뭐냐? 척 봐도 제 몸 하나도 온전히 가누지 못하도록 그녀는 잔뜩 취한 상태였다. 괜히 건드리면 시끄러워 질 것 같아서 조용히 외면하는데 그녀의 게슴츠레 희미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우냐? 다 큰 여자애가.'계산을 마치고 헐레벌떡 뛰어오던 다정은 친구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지혁을 위에서 아래로 한참을 훑어보았다. 그렇잖아도 컴컴해서 눈 비비고 다니게 생겼구만. 넌 웬 선글라스? 저쪽 1급수 가서 놀아라. 지금은 징글맞은 남자라는 동물들 상대할 정신이 없으시다. 비척거리는 해윤을 부축해서 계단을 올랐다.' “다정아, 어디 갔다 왔어?” ' “어디긴 어디야. 계산하고 왔지. 아휴,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