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인기가요 1위! 클리어의 어게인! 축하 합니다!”'눈부신 조명 속 무대 위에서 폭죽과 환호성이 고막을 터트리듯 울려대고 있었다. 요즘 최고의 인기 아이 돌 그룹 <클리어>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데뷔한 지 세 달 만에 전국 방송차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평균 키 180cm의 식스 팩이 선명한 복근과 적당한 근육이 온 몸에 탄탄히 잡힌 클리어는 5명의 멤버로 구성된 요즘말로 짐승 돌 그룹이었다. 리더인 ‘인택’이 트로피를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 '“인택 씨. 축하드립니다. 소감 좀 말씀해주세요.”'“네. 감사합니다. 그 동안 사랑해 주신 모든 팬들께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고요. 곡을 주신 작곡가 선생님, 안무 인호 형, 다 감사드립니다. 특히 소속사 대표이시자 우리들의 정신적인 지주, 준영이 형, 무엇보다도 팬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네에 대단합니다. 저번 주에 이어 연속 3주째 1위를 지키고 있는 클리어의 앙코르 송을 들으면서 뮤직파워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에 만나요!”'클리어는 무대 위에서 팬들과 하나가 되었다. 팬들도 눈물을 흘리며 클리어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방청석에서는 클리어를 상징하는 하늘 색 풍선과 각 멤버의 이름이 적힌 검정색 카드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지금은…… 클리어의 세계다. '무대 밖에서는 MC를 봤던 철웅이 급하게 다른 그룹 에게 달려갔다. '“엔디. 잘 했어. 이번에는 너희들이 받을 줄 알았는데…… 클리어 인기가 아직까지는 더 갈라나보다. 다음번에 너희들이 1등 할거야. 힘내라.”'“에이 씨, 형. 이거 혹시 로비 한 거 아냐? 저 쪽 소속사에서? 분명 라디오나 인터넷에서는 우리가 더 인기라고 했어.”'라이벌 그룹 T의 리더인 정한이 불만을 토로했다. 철웅과는 같은 소속사로 선 후배 사이였다. 철웅은 밴드 가수로 지금은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팬들에게 잊혀 질까봐 소속사가 방송사측에 적당히 로비를 해서 음악 프로그램의 MC로 넣었다. 철웅을 MC로 세우기 위해 소속사에서는 상당한 금액을 각 방송사에 뿌렸었다는 소문이 연예계에 돌아다녔다. 하긴 철웅의 아버지가 음반 기획사 사장이어서 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인지 생각보다 철웅의 인기는 폭발적이지 못했다. 철웅은 항상 그게 불만이었지만 다른 가수들과의 불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후배들은 절대로 용납 할 수 없었다. 같은 소속사의 문제는 자신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오기 때문이었다. 철웅은 잔뜩 불만을 머금은 정한의 어깨를 치며 위로해주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 해도 기회는 있다. 괜한데 신경 쓰지 말고. 멤버들 술렁이지 않게 하고…….”'“알았어요. 형.”'그 때, 앙코르 송을 끝낸 클리어가 내려왔다. 무대에서와는 다른 지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 석 달 째 살인적인 스케줄을 버텨내는 중이었다. 그룹 T는 클리어가 지나가게 벽에 붙어 섰다. '“비켜, 지나가게.”'클리어의 멤버 중 랩과 댄스를 담당하는 은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재수 없어.” 'T의 멤버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린 채 내뱉었다. '“누구야, 방금 말한 새끼가.”'지나가던 은진이 멈춰 서고는 야수와 같은 눈으로 그룹 T를 쳐다보았다. 가뜩이나 스트레스로 예민해져 있는 은진은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한 대 칠 기세였다. 엔디가 나서며 은진 앞에 섰다. '“그냥가라. 어린 마음에 서운해서 그런다. 미안하다.”'은진은 엔디를 노려보며 땀에 젖은 셔츠를 찢었다. '“다음엔…… 그냥 안 둬.”'은진은 주먹을 꽉 쥐고 철웅을 노려보다가 다시 급하게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따라 클리어의 멤버들이 지나가고 맨 나중에 리더인 인택이 눈으로 인사를 하고 따라갔다. '“……새끼…….”'철웅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 한 욕이 흘러 나왔다. '클리어의 멤버들은 팬들의 환호 소리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뒤로 한 채 급하게 밴에 올라탔다. 마음 같아서는 실컷 찍어라 젠장 하며 서 있고 싶었으나 달려드는 팬들이 사고라도 나면 라이벌 소속사나 안티들에게 씹을 수 있는 기사를 줄 수 있어 던져지듯 차에 올라탔다. 게다가 지방에 잡혀 있는 공연과 행사에 시간을 맞추려면 인기를 즐기지도 못했다. 인기란 밖에서 볼 때나 느껴지는 것이지 안에서는 일하는 기계였다. 쌓여가는 피로와 통장에 찍힌 0000의 숫자로만 인기를 실감 할 뿐이었다. 그게 스타였다. 멤버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옷을 벗어 던지고 딱딱한 구두와 부츠를 벗고 의자 깊숙이 몸을 집어넣었다. 자고 싶다…… 눈꺼풀이 얼굴 전체를 뒤덮는 것 같았다. 인택은 멤버 중 나이는 두 번째로 많지만 그의 따뜻한 성품이 멤버들로 부터 존경을 받게 했고 만장일치로 리더가 되었다. 까칠한 은진조차도 동갑인 인택에겐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은진아,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날카로워? 그러다 다른 그룹하고 싸움이라도 나면…….”'“그만해. 알고 있어. 사고는 안 낼 테니까 걱정 하지 마.” '“그 얼라들이 잘 못 했제. 뭐, 은진 형님아 에게 재수 없다 했잖아. 나도 욱 하데.”'막내 테리가 끼어들었다. 이제 18살인 테리는 중학교 때 부터 부산에서 이름을 날리던 비 보이였다. 여러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라고 했지만 테리 부모님께서 이 소속사를 선택하셨다고 했다. 아들을 스타가 아닌 꿈을 이루게 해 주겠다는 말 때문이었다고 했다. '“안 그래요? 인택이 형님아.”'“그래도 가십거리를 일부러 줄 필요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럼 은진 행님아가 잘 참았네. 그자? 어? 근데 행님 옷이 이게 뭐꼬? 그 자슥이 이래했나?” '멤버들 모두 힐끗 은진의 가슴 쪽을 보았다. 은진도 가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땀에 젖은 무대의상이 홧김에 잡아당기자 힘없이 찢어졌던가 보다. 한 쪽 가슴이 다 드러날 정도로.'“이거 어떡하지? 매니저 형. 여벌 의상 있어요? 은진이 춤 춰야 하는데…… 클로즈업 하면 화면에 찢어진 게 다 보이겠는 걸?” '은진의 옷을 본 인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괜히 이거 보고 아까 그 애들 하고 싸웠다고 기사 나는 거 아냐?”'매니저도 은진의 옷을 힐끔 살펴보더니 얼굴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스타일리스트들은 그 곳에 안 와요?”'“오긴 하는데…… 같은 옷이 있을까? 연락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