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과 수백 대의 차가 지나다니는 도심 한복판.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쭉 뻗어 있는 큰 사거리에 분홍색과 연 보라색으로 로맨틱하게 꾸며져 있는 카페가 하나 있다. 들어가기 전부터 가게 안에까지 곳곳에 놓여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인테리어는 마치 손님들을 동화 속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달콤하고도 맛있는 냄새가 끊이질 않는 카페, Minette(미네뜨). 수많은 잡지나 인터넷 기사에도 실렸으며, 종종 TV에 나오기도 하는 이 가게가 소이가 몇 달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곳이다. 시급 7500원이라는 흔히 찾아 볼 수 없는 급료. 거기다가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언니는 물론이고, 미네뜨를 찾는 손님들의 매너 또한 최고.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소이에게 요즘 들어 불만이 생겨났다. 바로 미네뜨의 사장인 이한에게 말이다. 아직 오픈 전인 가게 앞에 서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던 소이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움찔했다. 오싹함을 느끼며 돌아보니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건 바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들게 하는 원흉이었다. '“안 들어가고 뭐합니까?”'“아…… 안녕하세요, 사장님.”'“안녕 못하니까 길이나 좀 비키죠?”'까칠까칠. 소이가 오늘도 역시 까칠함의 절정을 달하고 있는 이한을 살짝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처음 만난 날. 즉 면접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상냥하게 대해준 적이 없는 나쁜 사장님. 잠겨 있던 가게 문을 열고 혼자 쏙 들어가 버리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이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 담긴다. 즐거운 월요일 아침부터 얼굴 찌푸릴 일을 만들어주다니, 대단한 분이세요. 유니폼을 갈아입는 내내 혼자서 투덜거리던 소이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달콤한 향에 주방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이한이 굉장히 즐거운 얼굴로 손님들에게 나눠줄 쿠키를 만들고 있었다. 정말 그녀를 대할 때와는 딴판인 모습. 소이가 넋을 놓고 바라보며 흐음, 하고 콧소리를 냈다.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이한은 주방에 있을 때가 가장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거기서 멍청하게 쳐다보지 말고 이리 와 봐요.”'이한이 소이의 시선을 느낀 듯 손을 까딱이며 그녀를 불렀다. 부르는 그 태도가 상당히 거슬렸으나 소이는 힘없는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다. 잘리고 싶지 않으면 말을 잘 듣는 게 최선이었기에 군말 없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시선은 이한이 아닌 바닥에 고정 시킨 채로 말이다. 이한이 한숨을 쉬고는 조리대에 기댄 채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소이의 이마를 툭 밀쳤다. 으…… 기분 나빠! 왜 자꾸 남의 머리를 툭툭 밀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말이 입 안에서 맴돌기만 한다. 소이가 이마를 문지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티를 안 내려고 해도 저절로 구겨지는 미간과 삐죽 튀어나온 입술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아, 해봐요.”'이한이 잔뜩 골이 난 소이의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정적을 깼다. 고개를 갸웃하며 두 눈을 깜박거리기만 하는 소이의 턱을 덥석 붙잡더니 살짝 벌어진 입 속에 무언가를 집어 넣어버린다. 얼떨결에 받아먹긴 했는데 좀 떨떠름하다. 소이가 우물거리며 남김없이 씹어 먹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 맛있다.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배시시 웃는 소이의 표정이 아까보다 한층 밝아졌다.'“배 찼으면 이제 나가서 테이블 닦아요.”'“우, 달랑 하나만 먹고 배가 찰 리가 없잖아요.”'“오늘 알바비 안 받는다고 하면 더 주고요.”'이한이 초콜릿 쿠키가 담긴 봉지를 허공에 흔들어 보이며 소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치 먹을 거로 애완동물을 길들이려는 듯한 그의 행동. 아침도 안 먹고 온 터라 쿠키를 더 먹고 싶기는 했지만 알바비를 깎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눈길을 거두고는 행주를 집어 들고 기운 없이 홀로 몸을 틀었다. 마감 때도 닦았던 테이블을 또 다시 열심히 닦으며 홀을 누비고 다니는 소이의 머리에 쿵, 하고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몸이 반으로 접힐 것만 같은 느낌에 소이가 허리에 힘을 주며 몸을 바로 세웠다. '“우리 귀염둥이.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귓가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듣기 좋은 목소리. 소이가 뒤로 돌아 키득거리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혜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한이 흡연 금지령을 내려서 피우지 못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싱긋 웃던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다. 혜영이 배를 움켜쥐며 ‘으억’ 하고 소리를 내지르더니 소이의 어깨를 덥석 붙잡는다.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조심스레 묻는 소이와 눈을 마주친 채 그녀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배고파.”'“네?”'“박이한한테 가서 쿠키 좀 얻어다 줘, 귀염둥이.”'소이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엎드려 버리는 혜영이다. 당혹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있던 소이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진다. 이걸 어쩌나 싶어서 골똘히 생각을 하던 그녀가 주방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짤 주머니를 손에 쥔 채 케이크를 장식하던 이한이 옆에서 서성이는 소이가 거슬리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하던 일을 멈추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케이크를 구경하던 소이의 고개가 냉랭한 시선에 저절로 들어 올려 진다. '“테이블 다 닦았습니까?”'“저, 그게요, 사장님. 혜영 언니가 쿠키 좀 얻어 오라고 하는데요. 아까 그거…….”'“안됩니다.”'“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주시지 그래요?”'소이가 단칼에 잘라 말하는 이한을 얄밉다는 듯이 노려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홱 돌아섰다. 편의점에라도 가서 비슷한 거라도 사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방을 나가려고 하는 그녀를 이한의 사나운 목소리가 멈춰 세웠다. 김소이 씨, 라고 퉁명스레 자신을 부르는 이한을 돌아보며 소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는 이리 오라는 말도 없이 손만 까딱거린다. 저 손을 확 부러뜨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느릿느릿 이한에게로 다가갔다. 고개를 앞으로 쭉 뺀 채로 자신이 만들고 있던 케이크에서 눈을 못 떼는 소이에게 이한이 아까 그 쿠키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엣, 하고 놀라는 것도 잠시. 소이는 설마 이 쿠키에 독이라도 묻힌 건 아닌가 싶어 봉지를 받지 않고 미심쩍단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안 받아요?”'“이거 그냥 주시는 거예요?”'“네. 대신에 혼자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