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아파트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던 거실의 소파에서 부스럭하고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이어 신음소리와도 같은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해원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던 몸을 틀어 벽에 걸린 시계를 향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앉아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기 위해 고개를 틀었지만 커튼까지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는 그 시계바늘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단지 낮은 시계추 소리가 더욱더 크게 귓가를 울렸을 뿐이었다.'해원은 그런 시계를 어둠에 쌓인 집안을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응시하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기운 없는 걸음으로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에 다가섰다. 불빛이 들어오며 고통스러울 정도로 시야가 환해지는 것에 해원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뺨을 한손으로 감싸고 다시 거실의 소파로 다가와 앉은 그녀는 자신의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노란 서류봉투를 침잠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이혼해.”''어젯밤 남편이 그것을 던져놓으며 했던 말이었다. ''“미안해. 하지만 너와 함께는 행복해질 수가 없어.”''그는 고통에 잠긴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해원은 멍하니 충격에 잠겨 그런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그와 결혼을 하고 3년, 자신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노력해왔지만 확실히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다.'처음 결혼을 할 때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억지에 못 이겨 그녀와 살을 마주하고 지금까지 사는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성의 없음 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을 뿐이다. 그녀나 그나 둘 다 집안에 떠밀려 했던 결혼이었던 만큼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원은 오랜 세월 그를 짝사랑 해왔기에 받아들였던 결혼이었고 그런 만큼 그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전부터 조금씩 자신을 돌아봐주고 미소 지어 주었다. 겨우 억지가 아니라 온화한 시선으로 자신의 곁을 그녀에게 내어주는 그런 남편이 되어가고 있었다.'해원은 이제야 행복해 질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꿈이 일순간에 깨어져 나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