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내리치는 비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었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남자는 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결정을 죽어서도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출발하지.”'남자는 옆에 앉아서 그를 노려보는 사내의 시선을 의식하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당신 아내와 딸은 무사할 거야. 그러니까 허튼 수작은 하지 마라.”'남자의 퉁퉁 부은 얼굴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눈앞에 아내와 딸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단단히 결심한 듯 액셀러레이터에 올려진 발에 힘을 줬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옆에 타고 있던 사내가 차문을 열더니 몸을 날렸다. 이윽고 그가 몰던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앞서 오던 차와 충돌한 차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성당 밖에선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소년은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옷을 입은 채 성당 안 십자가 앞에 서서 분노를 내뿜고 있었다. 한참 동안 십자가를 올려다보던 소년이 소리를 질러 댔다.'“우리 부모님 내놔요. 당신이 데려갔잖아, 얼른!”'도저히 참기 어려웠던지 소년은 소매 춤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아프게 닦아 냈다.'“난 이제 당신을 안 믿을 거야. 신 같은 건 없다고.”'입을 앙다문 소년은 십자가를 한번 쏘아보곤 매몰차게 뒤돌아섰다.'“엄마…… 흐윽…… 보고 싶어.”'갑자기 들려온 울음소리에 소년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신도석 한쪽 끝에 작은 물체 같은 것이 눈에 띄자 조심스럽게 다가간 소년은 그것이 사람임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흐으흑…… 엄마.”'무릎에 머리를 박은 채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여자아이는 그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 보였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뒤로 늘어뜨린 아이의 등이 너무 슬퍼 보여 소년은 차마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다가간 소년은 몸을 낮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놀란 듯 소녀의 고개가 획 들렸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누구……?”'소녀의 큰 눈망울엔 울다 만 흔적이 매달려 있었고, 작은 입술 사이에선 두려움을 담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왜 여기서 울고 있니, 꼬마야?”'큰 눈을 데룩데룩 굴리던 소녀는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조금 더 큰, 그도 아직은 어린 애일 뿐이라는 걸 알고는 안도하듯 한숨을 쉬었다.'“왜 우는데?”'그제야 소녀는 다시 슬픔이 밀려오는지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엄마 아빠가…… 하늘나라로 갔어. 아아앙!”'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가만히 소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안았다.'“엄마…….”'소년은 그의 품에서 더욱 서럽게 울어 대는 아이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너도 나랑 같구나. 우리 엄마 아빠도 하늘나라로 가셨는데.”'중얼거리는 소년의 말에 소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더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오빠네 부모님도 안 계셔?”'“응.”'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오빠, 울지 마.”'“난 안 울어. 그러니까 너도 울지 마.”'“하지만 난 슬픈 걸?”'소년은 아직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소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더니 뭔가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손에 들린 걸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 불쑥 아이에게 내밀었다.'“가져.”'“어?”'“너 가지라고. 난 이제 이런 거 필요 없어.”'그것은 엄마가 그에게 주었던 묵주였다. 소년은 보기 싫다는 듯 그것을 소녀에게 쥐어 주었다.'“하지만…….”'“이제 울지 마. 이게 너한테 힘이 될 거야.”'“오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