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절벽 끝 말라 버린 목련나무에 기대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한때 가지를 하얗게 뒤덮었던 꽃들이 떨어지자 마지막 기운을 잃은 듯 나무는 급격히 말라 죽어갔다.'앉아 있는 사내의 검은 머리칼은 기묘하게도 하얗게 바랜 백발과 뒤섞여 있었다.'마지막 미명의 햇살에 아물어가는 붉은 생채기로 뒤덮인 그의 이마와 뺨이 드러났다. 그중 관자놀이에서 시작돼 왼쪽 눈 아래를 지나 뺨까지 찢긴 상처는 부상 당시엔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어 사내의 얼굴에 잔혹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사내와 좀 떨어진 곳에 서서 불안한 듯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선후…….”'누이의 부름에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보름째였다.'그날 이후로 선후는 해질 무렵이면 처참한 기억을 담고 있는 이곳으로 와서, 한 올의 빛도 남지 않을 때까지 아내를 삼킨 검은 강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술로 보내는 그였지만 정신을 차리면 반드시 이곳으로 올라왔다.'“해가 지는구나. 돌아가지 않으련?”'비하란은 애정과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으며 노을에 비친 동생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준수했던 선후의 얼굴은 그의 아내와 더불어 사라져 버렸다. 긁힌 자국들이야 곧 희미하게 없어질 테지만 왼쪽 얼굴에 남겨진 깊은 상처는 그의 얼굴을 망쳐 놓았다. 이제 붉게 아물기 시작한 상처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와 시선을 마주치기조차 꺼려했다. 그 잔혹한 상처가 황폐한 눈빛과 어우러져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집안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피해 다녔다.'아내가 물에 빠진 후 선후는 절벽 아래 강가는 물론 물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동원되었지만 아라의 몸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물살이 너무 빨랐을 뿐만 아니라 탁류라 시신을 찾는다는 게 불가능했다.'그러나 선후만은 포기하지 않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중까지 몇 번이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결국 그는 급류 속에서 뾰족하게 돌출된 바위에 부딪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세 명의 장정들이 뛰어들어서야 겨우 얼굴이 피로 뒤범벅된 그를 건져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혼절한 선후는 눈을 뜨지 않았다.'그날 밤 온몸이 녹아버리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높은 열에 시달리던 그를 보고 의원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혈육마저 포기할 수 없었던 비하란은 잠도 자지 않고 내내 선후의 곁을 지켰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자신의 동생이 홀가분하게 어머니의 곁으로 떠나 버릴까 두려웠다.'마침내 끔찍했던 사흘이 지나고 그의 열이 내렸을 때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고열로 인해 노인의 그것처럼 반백으로 변한 머리칼 따윈 그녀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동생이 살아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의식을 찾은 선후는 표정 없는 눈으로 누이를 보며 단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그녀는……?’'‘……찾을 수 없었어.’'그리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얼굴에 남은 깊은 상처는 그의 얼굴을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한쪽 눈까지 잃을 뻔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걱정하는 건 얼굴의 상처가 아니라 동생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였다.'시간이 흐르고 더 이상 아라의 시신을 찾을 수 없음이 명백해지자 선후는 자신을 극도의 상태로 몰아갔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폭음을 하고, 잠을 자지도 않았으며, 음식조차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퀭하니 초점을 잃고 뼈만 남을 정도로 수척해졌다.'비하란은 그가 술로 몸을 가누지 못해 행여 절벽에서 발이라도 헛디뎌 아내의 뒤를 따를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동생이 이곳으로 갈 때면 반드시 사람을 보내 뒤를 따르게 하거나 자신이 동행했다.'“저녁이라 강바람이 차구나.”'“저 물속은 더 춥겠지…… 뼈까지 얼어버릴 정도로…….”'이미 낮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로 낮게 울려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발음이 불분명했다. 동생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에 비하란은 오싹해졌다.'“선후…… 설마 이상한 생각을…….”'“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