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태조(太祖) 20년(서기 72년) 봄 3월''고요한 산중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이런 외진 곳에선 보기 힘든 비단 두루마기를 걸친 여인이 남의 이목을 피하듯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인의 잰 발걸음에 따라 흰 비단에 박힌 자잘한 점무늬가 나무 사이로 어른거렸다.'화려한 장식을 한 얹은머리, 색기가 묻어나는 도톰한 눈두덩, 끝이 살짝 들린 콧날과 붉은 입술이 십 년 전까지는 꽤 미인으로 불렸을 법한 얼굴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정성 들여 칠한 분도 가늘게 치켜뜬 눈가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을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무언가를 찾듯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여인은 커다란 고목의 그림자 속에서 말과 인영 하나를 발견하자 작은 탄성을 내지르며 달려갔다.'“많이 기다렸어?”'“지난번 만남 이후로 내내 부인을 기다렸습니다.”'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품에 끌어당긴 사내는 오랜 시간 헤어졌던 연인처럼 뜨거운 입맞춤을 퍼부었다. 여인 또한 그에게 질세라 열렬히 그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 농밀한 접촉이 계속되는 동안 그의 손은 그녀의 두루마기를 젖히고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을 어루만졌다. 세 번의 출산을 겪은 그녀의 가슴은 다소 처지긴 했어도 사내의 한 손으로는 부족할 만큼 풍만했다. 투박한 손가락이 옆구리를 쓸어내리자 작은 헐떡임이 여인의 입술에서 새어나왔다.'누를 수 없는 색기와 신분에 따른 제약, 남편의 멀어진 관심은 그녀를 사내와의 정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자신을 퇴물 취급하는 남편에 대한 은밀한 이 보복을 그녀는 십분 즐기고 있었다.'사내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 도도하고 거만한 이 대부인(大夫人)이 젊은 사내와의 격렬하고 음탕한 정사를 즐긴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몇이나 될까. 눈을 피하다 보니 장소도 늘 이렇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 흥분했다.'어느새 땅 위로 눕혀진 여인의 몸에 그의 몸이 겹쳐졌다. 사내의 움직임은 상대를 애태우듯 느릿했다.'정오의 강한 햇살이 사그라진 숲에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비단과 살이 스치는 소리, 간간이 흘러나오는 적나라한 신음에 놀란 작은 산새들이 울음을 멈췄다.'비단치마 속으로 파고들어 간 그의 손가락이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졌다. 그 교묘한 자극에 그녀는 아랫도리를 사내의 손바닥에 비벼댔다. 그의 손길에 취해 신음을 내지르던 여인은 말 울음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자 그를 밀어냈다.'“오늘은 안 돼. 남편이 집으로 온다고 전갈을 보내왔어. 곧 돌아가야 해. 그 말만 하러 온 거야.”'그러나 만류하는 그녀의 손끝은 충족되지 못한 쾌락의 여운으로 떨리고 있었다. 노곤한 눈빛의 여인이 치맛자락을 끌어 내리자 사내는 느슨한 몸짓으로 나무에 기댔다.'“그 말씀은 좀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은데요.”'사내의 입가에 조롱하듯 미소가 걸리자 여인의 눈이 새치름하게 치켜졌다.'“네가 너무 성급히 달려들어서 말할 틈이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