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이었다. 원체 야행성인 영채는 아침 8시에 눈을 한 번 뜨고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두 짝짜리 창문으로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으로 해결했다. 간밤엔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눈을 떴을 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흐릿해지는 의식 저 너머로 아주 잠깐 생각했지만 무겁게 엄습하는 잠의 무게에 이내 의식은 없어졌다.'-'-'* * *'-'한참을 돌아다닌다.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듯도 한 낡은 동네다. 집들은 전부 단층주택이고 어느 집은 슬래브를 얹었고 어느 집은 기와다. 오르막인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자 사람들이 보인다. '낮이고 성별이 구분되는데도 그들의 얼굴은 낯설다. 아니, 낯설다기보다 정확하게 이목구비가 확인되지 않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그들 역시 낯이 익은 듯도 하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인 듯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아는 체를 한다. 뭔가 지껄이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데 ‘나’가 대답을 한다. 그 역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들과 ‘나’는 함께 웃는다. '그러다 누군가 손을 잡아끈다. 친구다. 아주 친한 친구다. ‘나’는 이름을 부른다. 그 여자는 웃는다. 하지만 얼굴을 정확하게 그릴 수가 없다. '친구는 ‘나’를 이끌어 어느 집으로 들어간다. 자연스레 따라 들어간다. 역시 익숙한 듯도 한 어느 방으로 들어서자 몇몇의 사람들이 제각각 뭔가를 하며 ‘있다.’ 표현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나’가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정확한 행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제대로 보고 있고 그들이 익숙한데도 어째서 의식 속에는 명확하게 박히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뜬금없이 ‘나’의 입에서는 고함소리가 나온다. ‘나’가 화가 난 것이다.'-내 집에서 뭣들 하는 거야!'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 할 일에 분주하다. 조금 더 그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아마 ‘나’가 화가 나서 그럴 것이다. 모르는 집인데 내 집이고, 그들은 친구가 아니라 침입자인 것이다. 50대 남자는 방 가운데에 벌렁 드러눕는다. 무척 느긋한 표정이다. 다른 한 사람은 아주 옛날식 부엌에서 뭔가를 가지고 나오며 사람들에게 함께 먹자고 권한다. ‘나’가 기가 막혀 친구를 찾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여긴 내 집이라고! 함부로 남의 것에 손대지 마!'‘나’는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인가? 아마 그런 것 같다. 무척 무척 화가 난다. 이젠 분명하게 인식된다. 그곳은 나의 집이고 그곳은 내가 자는 방으로 쓰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은 거기에 있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며 ‘나’를 이끌었던 친구는 어디에 있나? '……그 여자는 누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