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은 이번에 수강신청 기간을 놓치는 바람에 같은 과 선배인 조교에게 부탁을 하러 과 사무실에 들어갔다. 방길의 인생의 원흉인 리아가 자신이 군대를 가면서 휴학을 신청하던 길에 그녀의 것까지 휴학 신청을 해 버린 탓에 방길은 본의 아니게 1년을 쉬게 되었다.'원래 직계 가족이 아니면 대신 휴학을 신청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아는 공문서 위조 및 사기를 곧잘 치고 다녔다. 특히 방길을 골탕 먹이는 것에는 탁월한 지적 능력을 발휘했다.'방길은 자신이 휴학이 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연한 것이 일단 자신은 신청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리아와 학교는 같았다. 하지만 학부가 달랐다. 그래서 학교가 같았더라도 많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런 리아를 2년 동안은 아예 안 볼 생각을 하자 방길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방길은 큰 선심을 베풀어 리아가 군대 가는 날 가족들과 함께 배웅을 해주었다.'그리고 어느 날보다 활짝 웃고 있던 방길에게 리아가 씩 웃으며 그녀의 손에 어떤 종이를 쥐어 주었다.'“이게 뭐야?”'“선물이야. 나 들어가면 펴 봐.”'리아의 부모인 강 여사와 우 계장 그리고 그들의 늦둥이 리설이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평소 늘 당하고만 살았던 방길은 내심 의심의 눈초리를 찌푸렸다. 하지만 설마 군입대하는 순간까지 그러겠냐는 생각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둘째아들 군입대하는 것을 지켜보던 강 여사와 우 계장을 뒤로하고 어느새 입소를 하러 들어가는 리아의 뒷모습을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방길은 조심히 그 종이를 펼쳐 보았다.'“이런 나쁜 놈!”'방길은 자신의 휴학 증명서를 손으로 와그작 꾸기며 절규했다. 그러자 그 말이 들렸는지 점처럼 작게 보이는 리아가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당시에는 리아의 장난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니 한 번쯤 휴학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길은 휴학 신청을 취소하는 대신 이번 기회에 못했던 공부를 해 보자는 생각에 일단 휴학을 신청한 것을 그냥 두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휴학 기간인 1년여 중 거의 대부분을 리설의 육아를 전담으로 맡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방길은 1년을 더 휴학 연장을 해야만 했다. 그동안 방길은 학원도 다니고 자격증도 따고자 노력을 해서 그중 건진 수확은 몇 개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을 빈둥거리는 데 소비한 결과 방길은 날이 갈수록 자신의 무게 근수를 추가시키고 있었다.'방길은 그런 자신의 살덩어리들을 손으로 잡아서 근 수를 가늠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방길은 이런 사태를 오게 한 원인인 리아의 이름을 살벌하게 입 속에서 씹었다. 하지만 방길은 리아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간 동안 나태한건 자신이었으니까. 그 생각에 방길은 이제 새 학기가 시작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3년여의 학교생활 동안 그다지 친한 선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방길은 아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띠웠다. 최대한 웃자. 웃는 낮에 침 못 뱉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방길이 과 사무실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런 다음 문을 열고 들어 한 발자국을 들이밀며 준비했던 웃음을 흘리며 들어갔다. 하지만 그 웃음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과 사무실에 꽉 들어찬 학생들의 뒤통수에 뿌려져야 했다.'‘뭐야,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방길과 같은 이유로 개강 첫날 과 사무실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한참 동안 사람들에게 치이던 방길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수강 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 원했던 일이 잘 마무리 되자 방길은 그제야 눈에 익숙한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의는 누구보다도 바른 방길이 반가운 선배의 얼굴에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아는 척하는 후배에게도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다만, 리아에 관한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선배, 진짜 리아 선배님과 같이 군대 다녀오셨어요?”'“뭐?”'“리아 선배님께서 그러시던데요? 군대 같이 갔는데 선배는 의가사제대 했다고 ”'리아와 같은 여행 동아리인 과 후배가 방길의 뒤통수를 강타하는 말에 그녀는 어이없어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정지자세가 되었다.'‘이 자식이, 근데 왜 그 자식은 님이고 나는 그냥 선밴 건데?’라고 절대 입 밖으로 말을 못 뱉는 방길은 후배가 얼빵한 표정으로 궁금해 하는 모습에 그저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사실 그 이유는 방길이 소심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선배가 과 사무실에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후배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방길은 장장 10여 분에 걸친 변명이 100%인 대화를 나눈 후 리아의 거짓말을 바로잡아 주었다.'“걔와 나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이란다. 알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