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어떻게…라니요?”'“결혼! 결혼 할 건가, 말 건가?”'청천벽력. 단도직입적이다. 수혁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강하다. 이런 첩첩산중에 홀로 시퍼런 안광을 뿜어내는 호랑이 같은 강한 눈빛을 마주하고 쉽게 아닙니다, 그저 연애만 할 뿐입니다. 라고 말했다가는 그대로 뗏장 곱게 뒷산의 땅 속에 묻히는 것도 한 순간의 일이겠다. '“결혼엔 생각이 없는 건가?”'“어르신, 지금은 그저 명랑과 교제를 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수혁이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구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남자치고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꽤 오래 버티는 군. 분명 지금쯤이면 다리가 저리고 힘들어서 땀을 뻘뻘 흘릴 때가 되었는데. 정구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 그에게 물었다. '“자네, 나이가 몇인가?”'“내년이면 스물다섯 됩니다.”'“내년이면…?”'한쪽 눈썹이 휙 올라간다. 명랑이 하던 저 묘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사 알 수 있었다.'“…예.”'“그럼 올해로는 스물넷이라는 말이군.”'“그렇습니다.”'젠장, 알량한 수법은 통하지도 않는다. 수혁이 인상을 찌푸리려다 말고 정구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는다. 그 웃음에 정구는 사내새끼가 여자를 많이 홀리겠어, 라며 쯧쯧 혀를 찼다. '“돌아가게.”'“예?”'“너무 어리네.”'“어르신!”'수혁은 문득 울고 싶어졌다. 정식으로 명랑과 사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부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르신, 잘 하겠습니다.”'“잘하고, 말고. 그냥 돌아가게.”'“어, 어르신!”'종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가 잠갔던 문의 락을 풀었다. 문을 열자마자 문에 바짝 귀를 대고 있던 명랑의 모친인 강 여사와 명랑, 그리고 여주가 쏟아져 내렸다. '“하하, 아부지. 엿 들으려고 한 게 아니라….”'명랑이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데려가라.”'“네?”'“내가 다 들었다만 아무래도 난 찬성할 수가 없다.”'“아부지, 그게. 강수혁! 너 아빠한테 뭐라고 했어.”'명랑이 살금살금 기다가 말고 수혁을 팩 노려보았다. 하지만 수혁의 눈이 너무나 침울하니 가라앉아 있어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고 다른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여주가 잠이 깼는지 눈을 비비며 아버지에게 대꾸했다. '“아부지, 그러시면 안 되죠. 울 누이는 벌써 저치한테 다 준 것 같은데요.”'“뭘 다 준다냐?”'명랑의 모친이 옆에서 여주를 부추겼다. '“뭐, 말 그대로 다요. 몸이며, 마음이며.”'“뭐? 모옴? 이명랑아!”'부친과 모친의 비명에 명랑의 얼굴이 흙빛으로 흐려졌다. 하여간 저 화상, 말을 할 게 있고 하지 않을 게 있지. 여주는 누나의 매서운 눈빛에 그제야 자신이 실수를 한 것을 알고 수습하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결혼해라.”'“아빠!”'“결혼해. 그 수밖에는 없다.”'수혁의 얼굴도, 명랑의 얼굴도, 더불어 여주의 얼굴까지 모두 사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