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이니. 한 팀장님도 은근히 센스 있다. 실망했다는 말 취소!”'“넌 무슨 애가 그렇게 줏대가 없냐?”'내가 면박을 주었더니 김연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나는 킹 여우밖에 모르는 장님인 줄 알았지. 이렇게 우리까지 떡 하니 챙겨 줄지 알았나, 뭐.”'맞는 말이었다. 김연희와 나, 단둘에게만 사탕을 준 카푸치노와 달리 한 팀장은 사무실의 여직원 모두에게 사탕을 돌렸는데 아예 기념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무뚝뚝의 대명사 장동건이었기에 다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그래도 킹 여우한테는 우리보다 더 큰 사탕 줬겠지?”'김연희가 또 김빠지는 소리를 해왔다. 쩝. 또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참, 언니. 주말에 시민공원에서 한 팀장하고 킹 여우 봤다 그랬지? 그럼 은규 씨 여자 친구도 봤겠네?”'“뭐, 뭐?”'나는 갑작스러운 김연희의 공격에 혀를 깨물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카푸치노의 여자 친구? 녀석 여자 친구가 있었어? 김연희의 말이 상당히 크게 다가올 줄 몰랐다. 생각보다 큰 상처에 심장이 헐떡헐떡 뛴다. 이건 킹 여우와 한 팀장을 발견했던 그 순간에 느낀 감정과는 또 색다르다. '“정미숙 대리가 봤다던데? 시민 공원에서 어떤 여자랑 손잡고 놀고 있었다고. 그 뭐라고 하더라? 보드? 그런 거 타면서.”'어디선가 김이 팍 새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이 씨, 그거 여자 친구 아니야.”'“그럼?”'“나도 몰라.”'시큰둥한 내 말에 김연희가 싱겁다며 투덜거렸다. 하기야, 그날 정미숙 대리가 나를 못 알아볼 정도였다면 내가 얼마나 폐인의 모습을 하고 갔는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폭풍우처럼 몰아친 파도가 잔잔해진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이나 갑작스럽게 놀랬더니 손이 덜덜 떨린다. 이럴 때는 단 음식이 최고다. '나는 카푸치노가 준 사탕을 왼손, 장동건이 준 사탕을 오른손에 쥐고 한참 동안 두 개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오른손에 쥔 사탕을 입으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