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검은 물체. 남자의 형상을 한 물체는 그녀를 뚫을 듯이 보고 있었다. '『나에게 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느낄 수 있는 것은 타는 듯한 갈증과 뜨거운 열기. '『나에게 와.』'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발가벗겨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수치심이 일지 않았다. 그보다는 묘한 기분이 온몸에 퍼지며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가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었다. '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얼굴에 와 닿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손이 얼굴을 지나 목덜미를 쓸자 짜릿한 흥분이 일었다. 촉촉하고 유연한 그의 혀가 발끈 솟은 젖꼭지를 핥아 흥분으로 취하게 한 후 입 안으로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남자는 양손에 가슴을 가두어 꼼짝 못하고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젖꼭지를 탐했다. 견딜 수 없는 자극이 온몸으로 퍼졌다. 그의 한 손이 밑으로 내려가 은밀한 그곳을 거침없이 헤집고 들어갔다. 부드러운 꽃잎들이 그의 침입에 소리 없는 신음을 토했다.'영신의 손이 부드럽게 남자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매끄럽고 단단한 피부가 그녀의 손놀림에 더욱 긴장되었다. 영신은 대담하게 남자의 가슴을 입 안으로 넣었다. 작은 젖꼭지가 그녀의 입 안에서 단단하게 굳어갔다.'그녀는 바짝 굳은 젖꼭지를 혀로 휘감으며 남자를 보았다. 그의 몸이 흥분으로 흔들렸다.'갑자기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아쉬움에 그녀가 잡으려 했지만 남자는 다가오지 않았다. '『가지 말아요.』 '남자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리 없는 웃음소리는 진동처럼 그녀의 귀를 울렸다. 고통스러움에 귀를 막았다. 미칠 것 같은 갈증이 몰려왔다. 남자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더 멀어졌다.'『가지 말아요.』'남자가 멀어질수록 갈증과 열기는 심해졌다. 있는 힘을 다해 남자의 팔을 잡았다. 남자의 팔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열기보다 더 기분 나쁜 서늘함에 남자의 팔을 놓았다.'『가지 말아요.』'남자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온다면 뺏어간 수분을 몽땅 다시 찾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한 걸음. 한 걸음. '남자의 걸음은 슬로비디오처럼 느렸다. '드디어 바로 앞까지 왔다고 판단했을 때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양팔을 잡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붉은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너무나 무서웠다.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아악!” ''영신은 일어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달라붙은 듯 침이 삼켜지지 않았다. 손을 들어 가슴을 쓸어내리듯 짚었다. 아직도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꿈속에서 느꼈던 갈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녀는 타는 갈증에 주방으로 뛰어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급하게 마셨다. 그러나 아무리 마셔도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영신은 냉장고 위에 있는 포장지를 뜯어 빵을 입으로 구겨 넣다 이내 뱉어버렸다. 배가 고픔에도 먹을 수가 없었다. 뭔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리질을 치며 땀으로 젖어 축축한 느낌을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틀어 손으로 온도를 측정했다. '꿈일 뿐이야. '차가운 물은 곧 따뜻해졌다. 샤워를 하는 순간 아래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불컥.'뜨끈한 내용물이 아래로 흘러나왔다. 피가 물과 섞여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늘 이렇게 시작되는 생리. 강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뛰었다. 샤워를 하고 세면대 거울을 보았다.'푹 꺼진 눈,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빛나는 피부, 그와는 대조적으로 놀랄 만치 붉은 입술 그리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 사이로 반들거리는 검은 눈동자. 거울 속의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욕실을 나오는데 1층에서 데니가 올라왔다. '금발에 녹색 눈을 한 여섯 살 먹은 데니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아이였다. '이 집에서 지내게 된 첫날부터 데니는 그녀를 따랐다.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신, 전화 왔어.』'영신은 데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에서 아델이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아델은 데니의 엄마였다. '영신은 수화기를 받으며 분명 한국에 있는 엄마일 거라고 예측했다.'[영신이냐?]'정겨운 음성이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응.”'[목소리가 왜 그리 힘이 없어? 어디 아픈 게야?]'“아니. 피곤해서 잠시 잤어.”'[엄마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일 같은 거 안 해도 내가 다 보내줄 수 있으니까 편하게 생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