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서히 결말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달칵, 하고 마이크의 전원 올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울렸다.'“다음은 피고 측, 최종 변론하시기 바랍니다.”'나지막한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깔끔한 제복 차림을 한 이가 천천히 일어서서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자고로 세상에 목숨을 가지고 태어나 사람이라는 종에 속한 생물치고 타인과의 사회적인 교류 없이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리입니다. 진실이 아닌 진리, 이것은 마치 하나의 법칙과도 같은 효력을 발생하는 명제로서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현대사회란 남과 더불어 살아야만 그 명맥을 보존하고 유지하여 후세로 물려줄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지요.”'변론인의 손에 쥐어진 변론 메모가 팔랑- 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피고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그이의 시야를 따라가며 긴장된 숨을 삼켰다.'“존경하는 재판장님 이하 방청객 및 관계자 여러분, 혹시 요즘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말들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은 호기심에 방청석에 자리한 몇몇이 자세를 약간 앞으로 당겨냈다.'“출산율 저하, 독도 문제, 한류 현상 등등, 일일이 손꼽아 헤아려 보자면 참으로 많겠습니다만 제가 재판장님뿐만 아니라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의 앞에 내드리고 싶은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집단 따돌림 현상이라는 겁니다.”'변론인이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집단 따돌림의 원 표현은 이지메, 일본 말이지요. 그것이 바다를 건너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왕따’라는 은어적인 껍질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왕따란 그리 드문 말이 아니며 흡사 고유명사적 성질까지 갖춰 정착화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법정 안의 모든 이목이 변론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로써 분위기는 적절하게 타고 있는 셈이었다. 변론인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이 엄숙한 법정에서 굳이 상식을 들먹일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선 적어도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계시니 아실 거라 믿습니다. 집단 따돌림은 그에 걸 맞는 대가를 받아 마땅한, 그 동기와 목적이 아무리 공익을 위하고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그것을 면책의 핑계로 삼을 수 없는, 법적인 처벌 장치만 없다 뿐 그야말로 명확한 ‘범죄’라는 것을 말입니다. 단순한 행위 하나로도 대상이 되는 이로 하여금 극도의 공포심 조장 또는 불안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폐화로 이끄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심할 경우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그런 사례들을 찾아보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게 된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변론인의 시선이 원고 석에 줄줄이 앉아 있는 네 사람에게로 강렬하게 꽂혔다. 저마다 눈길을 바쁘게 피하며 딴청을 부리는 게 똑똑히 보였다.'“이른바 왕따 현상의 가장 악질적인 면이 과연 무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다수가 소수를 억압한다는 본질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요. 집단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던가, 또는 집단의 존재성에 큰 해악을 끼쳤다던가.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아무리 그런 사유가 있다 해도, 집단이 임의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일엔 절차와 합법성이 뒤따라야 합니다.”'변론인의 막힘없는 서술에 원고 석은 점점 더 불편해 하는 기색을 짙게 띠어가고 있었다.'“지금 여러분들 앞에 피해자임을 자처하며 앉은 이들을 보아주십시오.”'변론인의 손끝이 정확하게 원고 석을 향했다. 순식간에 법정 안을 꽉 채운 이들의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이제 원고 석을 차지하고 앉은 이들은 그야말로 가시방석 위에 앉은 듯 전신을 꿈틀대기 시작했다.'“꼭 왕따를 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었음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은 한 사람을 완벽하게 괴롭혔습니다. 한술 더 떠 다른 집단의 일원을, 그것도 인원수와 계급에 있어서의 우위를 무기 삼아 코너로 몰아넣고 린치를 가했습니다. 거기엔 어떤 합법성도, 적법한 절차도 없었습니다. 순전히 무단으로 그런 짓을 행하고도 저들 중 과연 누가 뻔뻔스레 자신의 무죄를 외칠 수 있단 말입니까?”'원고 석을 향해 정면으로 서 있던 변론인의 시선이 판사 석 쪽으로 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