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다듬은 여인의 눈썹처럼 가늘게 휘어진 초승달이 부끄러운 듯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짧은 봄의 건조한 바람이 벽의 조각 문양 사이로 새어 들어와 넓은 방의 얇은 휘장을 날렸다. 육중한 문이 닫혀 있는 한 곳을 제외한 삼면에는 특이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다른 내실과 연결된 뻥 뚫린 통로가 나 있었다. '닫힌 문과 마주하고 있는 통로는 분수가 있는 정원으로 연결되었다. 기둥이 세워져 있는 방의 모서리에서 졸졸졸 흘러들어온 물은 바닥에 파여 있는 물길을 따라 방 안을 휘돌다 정원을 향해 빠져나갔다. '한밤의 고적함이 내려앉은 정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다섯 사람이 누워도 될 정도로 커다란 비단 방석이 깔려 있었다. 검자줏빛 방석 위에 팔꿈치를 괸 채 비스듬히 누운 중년인은 감고 있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잘라의 방에 그 외에 다른 이의 기척이 느껴졌다.'‘기어이…….’'중년인은 한숨을 조용히 감췄다. 그의 짐작대로 정원이 내다보이는 아치형 통로 아래 한쪽 무릎을 흙바닥에 대고 앉은 사내가 그림자처럼 자리해 있었다. 마치 밤공기 속에 녹아내린 혼령처럼 나타난 사내.'눈에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하듯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서로의 내심을 재어보듯이.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기어이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군.”'중년인은 매서운 눈매를 한껏 부라리며 질책하듯 말을 뱉었다. 바닥을 내려 보고 있던 사내의 머리가 황송하다는 듯 더 깊숙이 숙여졌다.'“고집불통!”'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중년인은 정원과 건물의 경계선인 통로로 걸어 나왔다. 위협하듯이 사내 앞에 선 그는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사내를 쏘아봤다. 그러나 중년인은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위협에도 사내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 회유도 소용없었다. 진귀한 보석과 기름진 땅, 막강한 권력, 아리따운 미녀로도 붙잡을 수 없는 고지식한 사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성격이 자신의 신임을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뒤를 맡길 수 있는 다시없을 수하이자,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우. 지금껏 단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지금껏 무엇도 요구한 적이 없던 그가 마침내 마음을 굳힌 것이다.'“어디로 가려 하느냐?”'“따로 정한 곳은 없습니다. 그저 바람이 부르는 대로 따라갈까 합니다.”'사내의 대답에 중년인은 짧게 혀를 찼다. 천생 한곳에 뿌리내릴 인생이 아닌 것을……. 억지로 붙잡아놓은 인연의 끈이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중년인은 발걸음을 돌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쿠션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상자를 열어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중년인은 사내의 얼굴 앞에 불쑥 쥐고 있던 물건을 내밀었다.'“받아라.”'잠비야였다. 검집에도 손잡이에도 아무런 문양도 들어가지 않은 단순하고 수수한 잠비야. 단지 전체적으로 새하얗다는 것이 색다르다면 색다를까. 검집만이 아니라 손잡이까지 백옥처럼 희어 베이기나 할까 의심스러웠다.'“이건…….”'“너와의 인연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내가 준비한 것이다.”'“하오나…….”'“더는 아무 말도 말라.”'위엄이 가득 담긴 어조로 잘라 말한 중년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뒷말을 이었다.'“네 의지를 존중해 너와 네 일족이 떠나는 것을 허락하기는 하나, 이곳과 완전히 인연을 끊을 수는 없는 법. 이곳은 너와 네 일족이 태어나고 자라 함께 이룩한 나라가 아니더냐. 할 일 다 끝냈다며 매정하게 떠난다고 해서 나조차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자신이 내쫓을 수는 있어도 자신이 버림받을 수는 없다는 중년인의 투덜거림이었다. 사내는 말없이 고개만 좀 더 숙였다 들었다.'“완전한 외유는 없도다. 네 일족은 여전히 나의 오른팔이니. 그것을 잊지 말라는 증표로 그 잠비야를 주는 것이다. 절대로 잊지 마라. 어디를 가든 너와 네 혈족은 이 땅의 일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