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포기해!’'얼마나 걸어왔을까. 경휘는 걸음을 멈췄다. 혹시나 그가 따라올까 곤두세웠던 감각은 겨울바람으로 무디어진 모양이었다. 아니, 이제는 완전히 포기를 했겠지.'경휘는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마치 술잔을 넘실대는 액체처럼 그녀의 눈물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찰랑댔다. 기대를 했는데…… 그가 따라와 주길 바랐는데…… 욕심이었나 보다. '까만 하늘, 어디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고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방향을 잃어버렸다. 어디가 어딘지 그저 춥고 외롭다는 생각뿐이었다. '“흐읍!”'눈을 꼭 감고 눈물을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눈물을 흘리며 청승을 떨긴 싫었다. '이제는 갔겠지, 자꾸 뒤돌아보려고 하는 자신을 추스르며 경휘가 차량이 속도를 높여 지나치는 도로에 시선을 줄 때였다. 완전히 포기를 한 순간, 빠른 발자국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쿵쾅, 쿵쾅! '경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멈춰선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와서 망설이는 건가. '‘설마 당신은 아니겠지?’'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를 생각하는 자신이 미련스러웠다. 그가 뭐라고 이토록 애를 끓이며 아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자박, 자박…….'천천히 걸어오는 듯한 선명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그를 기다리느라 애가 탄 그녀의 기다림을 끝내주기라도 하듯 몸이 크게 반동을 하며 휘청거릴 정도로 뒤에서 끌어당겨졌다. 한 남자의 품 안에 등을 기대며 경휘는 몸을 굳히다 이내 안도감으로 긴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가……지 마라.”'“사람 애를 왜 이렇게 태워요? 조금만 빨리 오지, 안 오는 줄 알고…… 흑!”'바보처럼 힘든 순간은 다 견뎠으면서 지금에야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질질 짜는 여자를 제일 싫어해 웬만한 일에는 눈물을 꾹 눌러 참는 성격인데, 갑자기 치솟은 눈물은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이 씨!”'경휘는 손등으로 눈물을 문질러 닦으며 그의 가슴에 머리를 콩 박았다. 그에 대한 서운함과 빨리 오지 않아 쌓인 원망의 표현이었다.'“미안. 얼굴 보고는 그 말을 차마 못하겠다. 내 비겁함,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약속할게. 그러니까 기회 다시 줄래?”'가슴이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경휘는 머리를 대고 있던 그의 가슴에 몸을 돌려 안겼다. 미친 듯이 뛰는 찬주의 심장박동이 그녀의 가슴까지 전해져왔다. 튕길까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휘는 솔직히 고백하는 그의 마음을 거부감 없이 덥석 받고 말았다. '“내가 너무 후해서 탈이야.”'“착한 거야.”'“나 절대 안 착한 여자라고요!”'“고맙다. 밀치지 않아서.”'“후해서 그렇다니까요!”'경휘는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그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이렇게 와준 것도 고마웠다. 아마 친구들이 봤다면 속도 없는 년이라며 욕을 퍼부을 텐데. 그나마 인적이 드문 갓길에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19금은 아니어도 18금정도 진도 나가도 될까?”'“18금?”'대답을 하자마자 경휘의 몸에 꼭 닿았던 그의 가슴이 멀어졌다. 찬주는 그녀의 양팔을 잡고 몸을 돌리게 해 시선을 마주했다.'“좋아한다.”'“됐네…… 읍.”'까칠하지만 따뜻한 입술이 와 닿는 느낌에 경휘의 촉촉하게 젖은 눈이 스르르 감겨들었다. 찬바람 속에 얼었던 경휘의 입술을 찬주가 부드럽게 핥았다. 마치 용서를 구하듯 더할 수 없이 부드러운 키스. 경휘는 잡힌 팔을 풀어 까치발을 뛰고 그의 목에 손을 둘러 깍지를 꼈다. 이 순간부터 절대 안 놓겠다는 약속처럼, 그들은 하나의 입이 되어 서로의 숨결을 나누었다. 찬바람에 얼었던 몸도, 그리고 그녀의 숨결도 그의 체온으로 따듯하게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