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떠들썩하게 울려 퍼지는 ‘함 사세요!’라는 말을 무시하고. 문제는 이놈의 호기심이다. 평소에는 제정신이다가도 뭔가에 꽂히면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부터 옮기는 단점은 이제 고쳐지기를 포기해야 할 듯하다.'“내 소리 못 들었어요!”'난데없는 남자의 버럭 소리에 그녀는 머릿속의 회로가 죄다 엉켜 버렸다. 그저 무시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뿐인데, 빌어먹게도 벌써 다리는 제멋대로 움직였다.'“저 말인가요?”'경휘는 손가락으로 제 가슴을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남자는 기가 막힌 듯 한동안 쳐다보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그럼 지나가는 사람, 또 있습니까?”'“왜 절 부르시죠?”'퉁명스럽게 대꾸를 하며 경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남자를 쏘아보았다. 나름 위압적으로 뇌까렸지만 남자는 전혀 기죽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호라, 이것 봐라?’ 하는 듯 눈에는 호기심이 슬쩍 비치다 사라졌다.'“친구 좋은 일에 불려 나와서 버럭 소리 지르는 예의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노처녀 히스테리입니까?”'뭐, 뭐가 어쩌고 어째?'노……처녀 히스테리?'침착하기 위해 산소가 절실히 필요하다. 경휘는 코를 벌름거리며 탁하디 탁한 공기를 코 안으로 한껏 흡입했다. 이제 겨우 방년 25세 접어든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고 노…… 무엇이라고?'경희는 화가 나서 냅다 쏘아붙이려다 입술을 꽉 붙였다. 말해 봤자 공연히 남의 집 좋은 일에 시비 거는 흉한 여자 꼴이 아닌가. 끓어오르는 화를 누그러뜨리듯 경휘는 서서히 호흡을 골랐다. '참고, 집에 가자!'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지만, 참아야 한다. 경휘가 막 움직이려는 순간, 남자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염탐하러 나왔으면 노래해 봐요!”'“염탐이요? 그리고 노래를 내가 왜 해요!”'“함 안 받을 겁니까?”'참, 얄밉게도 깐죽거린다. 자신과는 하등 상관도 없는 남의 집 행사에 그녀가 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막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녀를 붙들고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앞에 서 있던 청사초롱을 든 또 다른 남자 하나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와우, 제대론데?”'저건 또 뭔 소리래?'“몇 기냐?”'불쑥 튀어나온 질문에 그녀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청사초롱을 든 남자를 바라보았다. 몇 기라니?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머리가 복잡했다. '“서현이랑 같은 기수냐?”'“서, 서현이요?”'‘서현이는 또 누구야?’'골이 지끈거렸다. 괜히 호기심에 얼쩡거리다가 봉변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는 그냥 무시하고 등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뿐이다. 경휘는 대답을 기다리는 두 명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다 집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어디 가요?”'그녀의 행동이 의아했는지 내내 반말로 지껄이던 남자가 나름 최대한 예의를 갖춰 그녀를 향해 물었지만, 경휘는 대꾸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다만, 머리를 갸웃하고는 손가락을 귀 옆에다 대고 빙빙 돌렸다.'‘날씨가 추워서 세트로 미쳤나?’'그나저나 ‘함 사세요!’라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잊었는지 남자들의 걸걸한 외침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경휘는 슬그머니 다시 고개를 치켜드는 호기심을 억지로 누르며 집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편해서 입고 출근한 면바지와 두툼한 외투 사이로 한겨울의 바람이 파고들어 걸음이 빨라졌다. '싸늘한 날씨 탓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누군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옆구리 덥혀줄 남자 친구 하나 없는데, 누군 시집가고!'암튼 불공평한 세상이다. '평소에는 쥐 죽은 것처럼 조용한 동네인데, 떠들썩하게 함 받으라는 소리에 관심을 보였다 봉변만 당했다. 경휘는 집 앞의 초인종을 누르곤 자기 영역에 도착한 안도감에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화가 나는 것은 나는 것이고,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다. '“좋단다.”'그녀에게 시비를 걸며 깐죽거리던 남자는 앞집에서 나온 여자들을 바라보며 호기롭게 웃고 있었다. 어스름하긴 했지만 아직 환한 기운이 남아 있어 그의 표정이 훤하게 보였다. 입까지 쫙 벌리고 뭐가 좋은지 껄껄거리는 남자의 모습이 얄미웠다.'사람을 잘못 보고 실수를 했으면 사과라도 할 것이지!'지금쯤이면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을 알 만한데 사과는커녕, 아예 실수를 한 그녀에게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괜히 구시렁거리면서도 쉽사리 함 받는 모습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부럽다. 누구는 시집도 가고……. 옆구리가 솔잖게 시려왔다.'“안 들어오고 뭐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