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바다……. '그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 '''''' 제 1 장 ''''''위대한 바다의 지배자 트리톤 12세는 지배자 특유의 엄숙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인어들이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곳은 바로 ‘어둠의 바다’ 다. 그곳은 우리 인어들을 잡아먹는 괴물들이 사는 곳이란다.” ''“어둠의 바다라고요? 그런 곳도 있어요? 거기가 어디지요?” ''“절대 알아서도 안 되고, 알려 해서도 안 되는 곳이다. 약속해라, 마리나. 절대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 마리나는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한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목에는 소라 고동을 걸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엄으로 명하고 있었다. ''“왜 가서는 안 되는데요?” ''“마리나.” '' 트리톤 12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딸의 얼굴을 바라보자니 괜한 말을 꺼낸 것 같아 가슴 한쪽이 영 꺼림직 했다. 어쩌다가 꺼내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딸에게 하게 됐는지 자신의 입이 저주스러웠다. ''“너는 아직 어릴 뿐 아니라 우리 인어들의 능력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그 위험한 곳에 잘못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단 말이다. 알아듣겠느냐?” ''“그곳이 어딘지 알아야 들어가거나 말거나 하죠.” ''“마리나!” ''“알겠어요.” '' 엄중한 경고에 금세 시무룩해지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걱정과 불안이 교차했다. 그는 일부러 더욱 엄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약속해라, 마리나. 더 이상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알려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 마리나는 얼굴을 들어 아버지의 안색을 살폈다.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그 완고한 표정에 그녀는 스스로 꼬리를 내렸다. ''“네, 약속할게요.” ''“좋다.” '' 트리톤 12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밖에 없는 고집불통 딸에게서 일단 약속은 받아낸 것이다. 아버지가 방에서 사라지자 마리나는 새침한 공주에서 장난기가 가득 넘치는 장난꾸러기의 표정으로 금세 표정을 바꾸었다. 그녀는 방금 전 아버지가 나간 문을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죠. 그나저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어떡할까나?” '' 마리나는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거렸다. 갈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미지의 금지구역에 더더욱 가고픈 열망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좋아! 결정했어.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손바닥을 비비며 중얼거리던 마리나는 즉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책들과 문서들이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정보를 수집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 도서관의 육중한 문을 열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서적들이 그녀의 눈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마리나는 서서히 숨을 들이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 보자. 어둠의 바다라…….” '' 한 번 목록을 죽 훑어봤지만 도무지 찾는 것이 나오지 않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찾아봤지만 그 많은 책들의 홍수 속에서도 정작 그녀가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 그녀를 사로잡는 원색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책이지? 인어의 언어가 아닌데?” '' 호기심으로 빼어 든 한 권의 책 속에는 화려한 삽화가 가득 차 있었다. 희한하게도 생생한 그림 속 주인공들은 꼬리지느러미가 있어야 할 곳에 두 개의 막대기 같은 것을 단 기묘한 모습이었다. 마리나는 책장을 넘기며 유심히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혹시 말로만 듣던 인간들이 아닐까?” '' 마리나는 원래 찾으려 하던 어둠의 바다에 대한 것은 싹 잊은 채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야, 정말 다르다. 저런 막대기 같은 거로도 살아갈 수 있구나. 물 속이 아니어서 불편하지는 않을까?” '' 어느새 의자에 자리 잡은 마리나는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책에 빠져들었다. '' 꼬르륵. ''“배고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그런데 내가 여긴 왜 와 있는 거지?” '' 책 속에 파묻혀 있던 마리나의 정신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참 어둠의 바다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지? 무언가 이상해. 아버지가 그렇게 엄금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라면 그곳에 대한 자료가 없을 리가 없다고.” '' 아직은 어렸지만 제법 눈치가 빨랐던 마리나는 의외로 집요한 데가 있어서 한번 호기심이 일면 반드시 그에 대해서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한참 동안 도서관을 뒤적이던 그녀는 제풀에 지쳐 도서관 정 가운데 있는 커다란 인어 석상에 기대섰다. 아니, 그녀가 기대 선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각된 인어의 지느러미 중 하나였다. '' 스르륵. ''“엄마야! 이건 또 뭐야?” '' 갑자기 커다란 인어의 몸이 반쯤 빙글 돌더니 새로운 서재가 나타났다. 도서관 내부와는 사뭇 다른 그곳의 분위기에 마리나는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강하게 치솟는 호기심에 못 이겨 살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 서재 안은 아담했고, 화려하고 웅장한 도서관과는 상당히 분위기가 달랐다. 그곳에는 무언가 비밀스럽고 어둡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 명색이 서재인지라 여러 가지 서적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마리나는 배고픔도 잊고 다시 책들을 살펴보았으나 도무지 그 속에 쓰인 문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까 보았던 인간들의 문자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문자로 쓰인 그 책들은 마리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했기에 그녀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쳇! 좋다 말았네. 이거 읽을 수는 있어야 할 거 아냐.” ''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마리나는 일일이 책들을 다 펼쳐 보았다. 혹시라도 삽화라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 그런 수고스러움을 알아준 것일까. 가장 오래돼 보이는 책을 뒤지자 그 속에서 한 장의 낡은 종이가 팔랑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이건 뭐지?” '' 마리나는 얼른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지도였다. 비록 지명이 쓰인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그녀가 알고자 하는 곳을 일러주는 곳이라고 육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비록 글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곳이 매우 익숙하다는 것에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을 암호로 어설프게 숨긴 것 같은 형상이랄까? ''“좋았어! 바로 이거야. 자, 그럼 행동개시 해 볼까?” '' 마리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물론 그 낡은 종이를 작게 접어 머리 장식 속에 숨긴 채로. '' 마리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우선은 아버지의 동태를 살폈다. 지나가는 시녀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아버지는 오늘 서쪽 바다의 풍랑 사태에 대한 뒤처리를 의논하느라 몹시도 바쁘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회였다. ''“좋았어! 이것은 내게 내린 기회야. 설마 아버지도 오늘 내가 그곳을 찾아 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겠지? 후후후.” '' 마리나는 서서히 궁전을 빠져나와 어두운 바다 저 멀리 헤엄쳐 나갔다. ''''''“뭐야, 정말 추운 곳이네. 바다가 이렇게 추웠나? 그나저나 어둡기는 또 왜 이렇게 어두운 거야?” '' 마리나는 어두운 바다 속을 헤치면서 쉬지 않고 종알거렸다. 아직 어린 인어인 그녀는 이런 추위에 익숙하지 않았다. 같은 바다 속이라고 해도 이곳은 그녀가 사는 곳과는 환경이 매우 달랐다. 인어들이 사는 바다가 영양이 풍부하고 어느 정도 햇빛의 영향권에 드는 환하고 따뜻한 난류가 흐르는 곳이라면, 지금 헤엄치고 있는 곳은 어둡고, 차가운 한류가 흐르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희한한 물고기들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그녀를 스쳐 지나가자 마리나는 갈수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인어 왕족이라지만 경험은 없는 그녀였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돌아가야 하나?” '' 더럭 겁이 난 마리나는 돌아가고 싶은 충동과 이제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고집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 사이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빠르게 돌진해왔다. ''“엄마야, 저게 뭐야?” '' 그녀 앞에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상어였다. 그녀는 태어나서 저렇게 크고 험상궂은 상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엄청난 몸집에 날카로운 이를 가진 상어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또한, 상어의 차가운 눈은 그녀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했다. 저절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지만, 한 가닥 자존심이 공포를 이기고 솟아나왔다. 마리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상어를 달랬다. ''“자, 자, 착하지? 어서 돌아가라.” '' 그러나 상어는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어는 보란 듯이 그녀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마리나는 초조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서히 입을 열었다. ''“어서 네 자리로 얌전히…… 꺄악!” '' 상어는 그녀의 힘이 실린 목소리를 듣자 예상과는 달리 과격하게 그녀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상어의 몸짓에 혼비백산한 마리나는 얼른 몸을 피했으나 상어는 유연하게 몸을 회전하며 다시 그녀에게 부딪쳐왔다. 그녀는 얼른 위로 솟구친 다음 상어의 지느러미를 쥐었다. 상어는 마리나가 자신에게 매달린 것을 알자 더욱 난폭하게 날뛰었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더욱 손에 힘을 주어 지느러미를 움켜쥐었다. 상어는 그녀를 떨어뜨리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바다 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럴수록 마리나는 죽을힘을 다해 상어를 더욱 붙잡았다. 이대로 상어를 놓쳐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띈다면 곧장 상어의 맛있는 식사거리가 된다는 생각에 더더욱 놓을 수가 없었다. '' 삐익～ 삑. '' 어디선가 들리는 가느다란 피리 소리에 상어는 몸부림을 멈추고는 천천히 어디론가를 향해 헤엄쳐 나갔다. 상어의 속도가 줄어든 것을 깨닫자 마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의 긴장을 풀었다. 눈이 몽롱하게 풀린 마리나가 마지막으로 기억한 것은 시커먼 그림자 하나였다. ''''''“넌 누구지?” ''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온 마리나는 귓가에 울리는 낯선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아악! 누구야!” ''“목소리 한번 우렁차군.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 눈만 깜빡거리던 마리나는 남자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바로 코앞에 낯선 남자의 얼굴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더욱 놀란 마리나는 다시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침대? 가만 침대라? ''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법 잘 꾸며진 방이었고 그 방 한가운데 자리한 침대에 자신이 누워 있었다. 또한? ''“당신은 누구죠?” ''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는 어느새 침대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마리나의 겁먹은 눈동자를 보자 피식 웃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