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자 1학년과 2학년 교실이 있는 1층은 쏟아져 나온 병아리들로 인해 시끌벅적해졌다. 3학년부터 수업이 한 시간씩 늘어나기 때문에 아직 집에 갈 시간이 안 된 고학년들은 그저 부러운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집에 간다는 즐거움에 들뜬 저학년들은 그저 싱글벙글 조잘대기 바쁘다.'“난 구구단이 정말 싫어.”'벗어 놓은 하얀 실내화를 신주머니에 넣던 윤우가 얼굴에 닿은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투덜댄다. 선생님이 윤우에게만 특별히 내준 구구단 5단 외우기 숙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남들 다 외우는 구구단을 혼자 외우지 못해 숙제로 하는 건 창피한 일일 텐데 윤우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근데 승우야, 오늘 너희 집에 놀러 가면 안 돼?”'“응?”'시큰둥한 승우의 반응에 교문 옆으로 커다랗게 우뚝 솟아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흘깃 본 윤우가 입을 삐죽거린다. 요새 통 집 가서 놀자는 말을 하지 않는 승우에게 서운하던 참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맘때가 되면 집에 가서 아카시아 꽃 따먹고 놀자며 은근히 꾀더니 올핸 저렇게 아카시아 꽃이 절정을 이뤘는데도 도통 소식이 없다.'“가면 안 돼?”'“응? 으응.”'윤우는 미심쩍은 대답을 한 승우를 향해 눈을 얇게 떴다.'“왜에?”'“…….”'뭐라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한 승우의 시선이 움직이는 운동화 앞머리로 떨어졌다. 누런색 모래 위를 지나는 탓에 하얀 운동화에 흙먼지가 가득 앉았다. 이래서 교장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께서 운동장으로 다니지 말라고 한 모양이다. 말 들을걸. 돌아가는 길이 싫다고 이리로 왔다 가정부 아주머니만 귀찮게 만든 것 같다.'어른들 말을 들어 나쁠 거 하나 없는데…….'“나 아카시아 꽃 먹고 싶단 말이야. 학교에 있는 아카시아는 키도 크고 수위아저씨가 지키고 있어서 따먹을 수도 없잖아.”'윤우가 정면으로 아카시아 나무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정문 양쪽에 심어져 있는 아카시아 나무엔 절정에 오름을 뽐내듯 탐스러운 꽃이 열매처럼 풍성하게 피었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며 향긋함을 실어 왔다. 다시 한 번 군침을 삼키는 윤우와 달리 승우는 울컥 눈물을 삼켰다.'“우리 동네엔 너희 집에만 아카시아 나무가 있잖아. 그리고 별채 누나도 보고 싶단 말이야. 별채 누나가 요번 주에 놀러 오면 샌드위치 만들어 준다고 했단 말이야.”'“다음에…….”'“다음에 언제?”'“다음에…….”'“오늘 정말 안 돼?”'“다음에 가자. 난 오늘 엄마가 할아버지 제사라고 일찍 들어오랬어.”'묵묵하게 걷던 한결이 나서자 윤우도 더 이상 떼를 쓰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승우는 윤우의 떼를 제압해준 한결에게 고마웠지만 굳이 고맙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작은 가슴이 급격히 몰려든 고민으로 가득 차서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법을 잊어버린 모양이다.'“있잖아…….”'운동화 앞머리에 시선을 고정한 승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응?”'“너희 혹시 미……친개한테 물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어렵게 질문을 꺼내고 승우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윤우는 얼굴이 붉어졌다고 놀렸고, 한결은 승우의 질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왜?”'한참 키득거리던 윤우가 물었다.'“응? 그냥…… 궁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