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미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신음 대신에 폐가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심장은 두 배로 뛰고 있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그녀는 방어라도 하는 양 엉거주춤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정작 찬혁은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여태까지 앉아있던 의자에 붙박여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불퉁하게 내밀어진 그의 입을 보면서 그녀는 천천히 폐를 다시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가 그녀의 살인계획을 눈치 챈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실없는 안도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다시 동그래졌다. 책상 앞에 무릎을 굽힌 찬혁이 의자 밑으로 손을 집어넣는 중이었다. '“뭐하시는……?”'그녀의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찬혁의 작업은 끝났다. 푸쿡푸쿡 하는 희한한 소음을 내며 의자가 점점 높아졌다. 작업을 마친 그가 의자를 몇 번 힘주어 눌러보고는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 위로 번져갔다. '“이제 좀 낫군.”'비로소 그의 시선이 윤주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어려 있는 의문을 알아차린 듯 찬혁이 입을 열었다. '“의자가 너무 낮아서.”'짜증스러운 목소리 속에는 분명 그녀를 향한 불평도 들어있었다. 뭐야. 지금 불평하는 거야? 정 불편하면 지 의자를 갖다 쓰든가! 지금 한 시간째 서서 일하는 게 다 누구 탓인데! 그리고 어떤 뇌구조로 생각해야 의자가 안락하지 않은 게 내 탓이 되는 건데?'그 뇌구조는 금방 증명되었다. 못마땅한 시선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고 지나가더니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허리가 긴 편인가보지?”'하. 하. 하. 대한민국이 총기 흉기가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라서 참 다행이야. 또 한 건의 살인이 줄어들었잖아? 뭐, 몇 분 후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남의 자리를 차지한 주제에 다리 짧다고 빈정거리고 있는 이 몰지각한 인간을 소리 소문 없이 죽여 버릴 수 있는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버럭 치솟는 성질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참을 인자가 마흔 번쯤 동원되었다. 윤주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간신히 미소가 만들어졌다. 눈까지 그 온기를 전달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으로썬 이것만으로도 최선이었다.'그러나 그녀의 초인적인 노력과 의자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찬혁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확인한 순간부터 그의 인상은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가볍게 혀를 차며 의자를 획 돌려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울컥 하는 무언가가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평균은 되는데요.”'그의 시선이 엄청난 속도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정리가 다 끝난 서류를 책상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서류를 집어 들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물론 사장님이 ‘선호’하시는 모델 정도의 사이즈는 아닙니다만.” '젠장. 너무 티 나게 빈정거렸다. 윤주는 벽으로 달려가 머리를 박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서류를 들여다보는 척했다. 차라리 살인 계획을 몇 백가지 정도 더 짜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텐션이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경멸을 감당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찬혁이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윤주는 어떻게든 표정을 유지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시 미소를 지을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럴지도.”'의외로 순순한 대답이 돌아오자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방금 전까지도 얼음조각같이 차갑던 찬혁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뭐가 저 남자의 기분을 나아지게 만든 거지? 여전히 그녀를 향한 시선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기 때문에 윤주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서류에 몰두하는 척하는 그녀의 귓가로 찬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아, 모델 이야길 하니까 생각났는데, 박진욱 씨가 전화했더군. 윤주 씨와는 통화 끝냈다던데. 협조해달라고 하기에 별 문제 될 것 없으니 진행하시라고 말해놓았어.”'박 선생님이 사장과 친한가? 어떻게 사장의 개인 번호를 알고 전화를 했다는 거……!